[이성필의 언중유향]9월 유럽 원정 A매치 기회, 경제 논리에 밀리나

2022-08-08     이성필 기자
▲ 2020년 11월 오스트리아에서 열렸던 멕시코, 카타르와의 평가전. 지난 1월 터키 안탈리아 전지훈련을 제외하고 실질적 유럽 원정 평가전은 멕시코, 카타르전이 마지막이다. ⓒ대한축구협회
▲ 2020년 11월 오스트리아에서 열렸던 멕시코, 카타르와의 평가전. 지난 1월 터키 안탈리아 전지훈련을 제외하고 실질적 유럽 원정 평가전은 멕시코, 카타르전이 마지막이다. ⓒ대한축구협회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2022 카타르월드컵 본선이 석 달 조금 넘게 남았다. 사상 첫 겨울 월드컵으로 인해 6월 A매치 기간이 이례적으로 길었고 9월 2연전이 최종 모의고사 성격이 됐다. 

지난달 일본에서 치른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에서 중국, 홍콩을 각각 3-0으로 이기고도 일본에 0-3으로 완패하며 플랜B, C 구사에서 필요한 옥석고르기라는 목표에 상처가 생겼다. 

대회를 앞두고 파울루 벤투 감독은 중국과 일본이 연령대를 낮춰 나서겠다는 소식이 감지되자 대한축구협회에 23세 이하(U-23) 대표팀이 나서는 것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옥석고르기'라는 목표를 내세웠지만, 일본전 패배 후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다 내상만 입었다. 본선 준비 전략에서 중요한 '사령탑 신뢰'를 일부 잃은 셈이다. 

물론 본선에서 좋은 성과를 낸다면 일본전 참사는 하나의 과정으로 치부하고 끝나면 되는 일이다. 그러나 아시아 라이벌 일본과 점점 더 격차가 벌어지는 것은 축구인들 사이에서 강력한 문제로 자리 잡았다. 

익명을 원한 A대표팀 출신 감독은 "벤투 감독이 카타르월드컵을 치르고 한국을 떠난다면, 무엇을 남겼는지 알아야 할 것인데 빌드업이라는 전략은 여전히 의구심을 안고 있는 것 같다. 함께 월드컵에 나서는 일본을 상대로 약점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물론 선수 점검 체계나 훈련 틀은 선진화됐다. 이를 잘 살려 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세계와의 격차를 좁히려면 결국 축구의 중심에서 깨져도 도전해야 한다는 외침과 마주하게 된다. 특히 카타르월드컵 본선을 앞둔 올해 환경은 상당히 특수하다는 점에서 이런 외침을 외면하기는 더 어렵다.

한국은 우루과이, 가나, 포르투갈과 H조에 묶였다. 세 팀 전력 상당수는 유럽 프로리그 무대를 누비고 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관찰하기 쉽다는 점에서 전략을 세우는 벤투호에는 감사한 일이다.   

유럽 주요 리그는 월드컵 공식 개막전 일주일 전에 일시 멈춘다. 해외파, 그중에서도 유럽파의 비중이 상당한 벤투호 입장에서는 11월 초 불완전체로 대표팀을 소집해야 한다. 어떤 형식을 취할지 모르지만, 이전 월드컵과 비슷하게 20명 이상을 모아 놓고 훈련 후 평가전을 치른 뒤 최종 탈락자를 정해 해외파와 결합이 예상된다.  

일정상 불가능하다고 봤던 출정식 성격의 평가전은 대한축구협회가 상업적 가치를 크게 고려하면서 하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일정에 없던 '서비스 A매치'가 추가되는 셈이다. 자연스럽게 9월 A매치는 현재 선수단 구성에서 최정예로 꾸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손흥민(토트넘 홋스퍼), 김민재(나폴리), 황희찬(울버햄턴), 이재성(마인츠05), 황인범(올림피아코스) 등은 각자 소속팀 사정에 따라 최소 리그 8경기에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조별리그 2경기를 더해 10경기를 치르고 합류하게 된다. 

국내파는 파이널 라운드 직전인 33라운드까지 치열한 순위 다툼을 벌이다가 합류한다. 그렇지 않아도 주중-주말-주중 경기가 반복되면서 체력이 방전되기 직전 수준이다. 아시아 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녹아웃 스테이지(16~4강) 휴식기가 잠시 있으나 어디까지나 주중 경기 한번을 거를 뿐이다. 순연 경기가 있는 팀들은 회복 훈련만 하고 리그를 치른다. 

선수들의 체력적 능력이 제각각인 상황에서 9월 A매치를 국내에서 치르는 것은 국내파 중심의 대표팀 구성이라면 괜찮은 선택이다. 이동이 없으니 그나마 피로 해소 시간을 번다. 하지만, 유럽파가 뼈대가 된다면 10시간 넘는 비행을 하고 귀국해 2연전을 치르고 다시 돌아가는 것에 대한 고민이 따르게 된다. 이는 11월 본선 직전까지 피로 누적으로 이어져 컨디션 유지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아무리 상대팀이 장시간 비행으로 한국에 온다고 하더라도 빡빡한 계약 체계가 아니라면 1.5군급 구성인 경우를 많이 봐왔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매우 나쁜 예로 6월 이집트가 모하메드 살라(리버풀)의 부상을 이유로 주요 선수를 빼고 온 것을 똑똑하게 목격했다. 

벤투 감독은 대외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유럽 원정 평가전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팀 사정에 밝은 한 축구계 관계자는 "벤투 감독은 월드컵 본선 대응 계획을 세울 당시 유럽 원정 평가전이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고 수뇌부에 알린 일이 있다. 다른 경쟁국들도 유럽 A매치를 필수라 보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충분히 합당한 요구다. 독일, 스페인, 코스타리카와 죽음의 조에 묶인 일본의 경우 9월 A매치 2연전을 미국(23일), 에콰도르(27일)와 유럽에서 치르기로 일찌감치 정리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상황에서 수익에 크게 문제가 생겨 상업적 가치(=수익)를 더 원하는 축구협회가 국내 개최에 무게를 두면서 '대표팀 전력' 점검이 아닌 '돈벌이' 가치가 더 앞서는 모양새다. 6월 A매치 4연전 매진 사례에 7월 토트넘 홋스퍼의 프리시즌 한국 투어 경기에서 본 축구 열기를 더 안고 가고 싶은 의지도 읽힌다. 

약간의 변화는 있을까. 축구협회 한 고위 관계자는 "A매치를 잡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여러 변수와 상황을 다 고려해야 한다. 유럽 원정 평가전도 분명 중요한 옵션이다"라고 설명했다.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전략적 판단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에서 대표팀 경기력 향상이라는 중기적 목표와 이익 추구라는 단기적 목적의 갈림길에 선 한국 축구다. 이전 월드컵 예선처럼 국내 한 경기, 유럽 한 경기로 나누더라도 유럽 원정 평가전을 그냥 놓고 보내기에는 아쉬움이 크다.  

차라리 역발상으로 한국이 없는 대신 제3국 간 경기 유치는 어떨까. 유럽 주요 리그에서 뛰는 스타 선수에 대한 눈을 뜬 팬들을 믿고, 특히 토트넘-세비야전에서 (손흥민이 있기는 했었지만) '한국 없는' 상업적 시장의 가능성을 확인했으니 말이다. 무산 됐었지만, 지난 6월 브라질도 한국과 더불어 고양에서 세네갈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