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라는 말은 우리에게 모욕" 프로리그 없는 체코가 어떻게 올림픽을 노릴까

2025-11-10     신원철 기자
▲ K 베이스볼 시리즈를 마치고 한국 야구 팬들에게 인사하는 체코 야구 대표팀. 체코는 내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를 넘어 2027년 프리미어12, 2028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까지 꾸준히 최고 수준 국제대회 참가에 도전한다.
▲ 체코전 승리 후 세리머니하는 한국 선수들 ⓒKBO 공식 SNS

[스포티비뉴스=신원철 기자] 오타니 쇼헤이가 지금의 야구 실력을 그대로 갖고 체코에서 태어나 야구선수가 됐다면 어땠을까. 현세대 유일무이의 존재라고 해도 체코에서 전업 프로야구 선수가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체코에는 KBO리그나 메이저리그 같은 프로야구 리그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오타니라도 체코에서 태어났다면 다른 직업을 가진 채 자국 리그 '엑스트라리가'에서 야구를 병행하지 않았을까. 

8일과 9일 고척스카이돔에서 '류지현호' 한국 야구 대표팀과 맞선 체코 대표팀 구성원 또한 대다수가 그렇게 직업을 가진 채 야구를 하고 있다. '본업'이 아니라 '직업'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들의 인생에서 야구가 부수적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사이면서 유소년 대표팀부터 차근차근 야구 지도자 경력을 쌓아온 파벨 차딤 감독은 자신을 의사이자 감독, 세 아이의 아버지로 소개하면서 "머릿속은 하루종일 야구 생각이다. 집에는 비밀"이라고 했다. 

'체코의 오타니'이자 소방관 야구선수 마르틴 슈나이더는 2년 전 체코 언론과 인터뷰에서 자신들을 '부업 야구 선수'로 바라보는 시선에 반발하며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아마추어라는 표현은 우리에게 모욕적인 의미다. 우리는 우리의 환경 속에서 프로처럼 야구하려고 노력한다. 사람들이 이점을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우리도 다른 프로 선수들처럼 (야구에)최대한 많은 시간을 쓰려고 노력한다.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 가족과 함께하지 않는 시간을 모두 야구에 쓴다."

사실 직업 프로야구 선수가 아니라는 것이 이들의 잘못은 아니다. 환경의 영향이 더 크다. 투수 마렉 미나릭, 포수 마르틴 체르벤카 등은 이런 환경을 극복하고 마이너리그에서 야구 경력을 쌓기도 했다. 체르벤카는 메이저리그 데뷔에는 실패했지만 마이너리그에서만 617경기를 뛴 프로야구 선수였다. 올해 엑스트라리가에서 30경기 15홈런으로 홈런왕을 차지했고, 타율은 0.400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대만, 일본과 평가전에서 홈런과 적시타로 체코의 타선을 이끌기도 했다. 이번 'K 베이스볼 시리즈'에는 딸 출산으로 참가하지 못했다. 차딤 감독은 9일 평가전 두 경기를 마친 뒤 체르벤카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최근에는 미국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진학해 미국에서 야구를 배우는 체코 선수들이 나오는 추세다. 외야수 마렉 흘룹이 대표적인 경우다. 흘룹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을 졸업한 뒤 독립리그를 거쳐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1년 남짓 뛰다가 최근 방출됐다. 

▲ 체코 유망주 투수 마이칼 코발라(왼쪽)와 마이너리그 617경기 출전 경력을 보유한 마르틴 체르벤카. ⓒ 체코 야구협회 홈페이지

사실 위 사례는 예외에 속한다. 체코 대표팀은 여전히 많은 이들이 따로 직업을 가진 야구선수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취미생활처럼 성인이 돼 야구를 시작한 경우는 없다. 체코는 수년 전부터 대표팀을 국제 무대에서 경쟁력 있는 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협회 차원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프로야구 리그가 없는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연령별 대표팀이다. 차딤 감독은 2012년 21세 이하 대표팀을 시작으로 사령탑 경력을 쌓고 2021년 처음 성인 대표팀을 맡았다. 협회에서는 홍보팀 직원이면서 팀에서는 왼손투수인 루카스 에르콜리는 이전에도 한국에 온 적이 있다. 2012년 서울에서 열린 18세 이하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대회에 참가했기 때문이다. 에르콜리뿐 아니라 지금 대표팀 구성원 상당수가 청소년 시절부터 차딤 감독 아래서 야구를 했다. 주장 마르틴 무지크의 "12살부터 야구했다"는 말은 취미생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체코의 다음 목표는 2026년 WBC 선전과 2027년 프리미어12 본선 진출, 그리고 2028년 LA 올림픽 출전이다. 차딤 감독은 9일 경기를 마친 뒤 '2028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언급했다. 그는 1-11 대패에 대해 "젊은 투수 3명이 등판할 예정이었다. 그 선수들이 빅이닝을 허용하며 대패하게 됐지만, 모두 우리가 2028년 올림픽을 보고 육성하는 선수들이다. 그 투수들에게 큰 경험 됐을 거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체코는 10대 유망주 투수들의 구속을 끌어올리는 협회 차원의 장기 프로젝트에 'LA 28'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번 K 베이스볼 시리즈에는 필립 콜만(20) 마티아시 트르츠카(20) 온드레이 보스타텍(19) 다비드 크르체크(19) 등 LA 28 프로젝트 참가 선수 5명이 대표팀에 뽑혔다. 지금은 한국에 한 수 아래 상대로 여겨지지만, 3년 뒤에는 메달을 놓고 함께 경쟁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