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20년째 ‘0.3%’…한국 체육예산은 왜 멈춰 있을까

2025-11-13     정형근 기자
20년 전부터 한국의 체육 예산은 국가 전체 예산의 0.3%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있었다. 

[스포티비뉴스=정형근 기자] 2026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콘텐츠 산업은 26.5%, 문화예술은 10.9%, 관광은 9.5% 전년 대비 증액됐다.  

반면 체육 예산은 고작 ‘0.3%’ 증가하며 1조 6,795억 원에 머물렀다. 증가율만 놓고 보면 사실상 ‘동결’ 수준이다. 생활·학교체육 예산은 오히려 삭감됐다. 대한체육회 예산 2,790억원 중 생활체육 예산은 전년 대비 95억 원 줄어든 410억 원이다.   

놀라운 건, ‘0.3%’라는 숫자가 20년 전부터 등장했다는 점이다.

2005년 대한체육회장 선거 당시 “체육예산이 국가 전체 예산의 0.3%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일었다. 당시 한 후보는 “체육예산을 국가 전체 예산의 1%까지 늘리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2026년 국가 총예산(728조 원) 대비 체육 예산(1조 6,795억 원)의 비중은 ‘0.23%’에 불과하다. 이 수치는 한국에서 ‘체육’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지표다.

지난달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간사는 문체부를 강하게 질타했다.

“내년 정부 예산안을 보면 체육은 0.3%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증액됐다. 국민의 건강을 책임져야 할 부처가 이게 말이 되나. 학부모의 95.7%가 찬성한 주말체육학교 프로그램 예산 141억 원은 중복 사업이라며 또 빼앗겼고, 생활체육 예산 411억 원은 지방이양사업으로 내려보내면 도대체 무슨 사업을 하라는 것이냐. 문체부가 왜 존재하나. 그러면서 문체부가 국민의 체육을 책임진다고 할 수 있나.”

임 의원은 스위스 로잔사무소 폐쇄와 장흥 체육인재개발원의 운영 중단 문제를 거론하며 “공공사업으로 세운 시설에 대해 예산을 지원하지 않는 것은 부처의 책임 회피”라고도 지적했다.

문화체육관광위 더불어민주당 간사 임오경 국회의원 ⓒ임오경 의원실

문체부는 이름처럼 ‘문화·체육·관광’을 포괄하지만, 실제 행정 구조는 ‘문화 중심형’으로 작동한다. 고위급 인사의 상당수가 문화·콘텐츠 출신이며, 체육국은 후순위에 놓여 있다. 

문체부의 정책 비전이 ‘K-컬처 세계화’와 ‘콘텐츠 산업 육성’에 맞춰져 있는 동안 체육 분야는 예산 우선순위에서 후순위로 밀려났다. 체육 분야에는 전문체육과 생활체육, 장애인체육, 스포츠산업 등 다양한 정책 축이 있지만,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체육 복지’ 영역은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다.

서울대 체육교육과 김기한 교수는 “문화·예술에는 바우처 사업과 같은 복지사업 예산이 전통적으로 많이 있다. 그런데 체육 분야의 복지 사업은 타 부처의 사업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스포츠 인센티브처럼 일반 국민의 스포츠활동을 직접 지원하는 체육 복지 예산을 적극적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기존의 전문체육과 생활체육(시설 및 인프라, 프로그램, 지도자, 대회 등), 스포츠 산업도 더 적극적으로 예산을 확대해야 한다. 체육 예산이 확대되면 의료비 등 사회적 비용이 절감되는 긍정적 외부효과가 발생한다. 국민의 체육활동 참여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이 설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체육은 의료비 절감과 청소년 신체 발달, 지역 공동체 회복 등 사회 전 분야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체육은 단순한 여가가 아니다. 국민의 건강을 지탱하고 사회의 활력을 유지하는 국가적 인프라다. 고령화 사회의 의료비 절감, 지역 공동체 회복, 청소년 발달 등 경제·복지 전 분야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전문가들은 체육을 ‘투자 항목’으로 재정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성과 지표도 메달이나 대회 성적이 아닌 국민 체육 참여율, 비만도(BMI) 개선, 의료비 절감액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임오경 의원의 질타는 단순한 감정 표출이 아니다. 20년 넘게 반복된 ‘0.3%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 체육 재정 구조 전반에 대한 경고다. 

이제 필요한 것은 방향 전환이다. 체육을 계속 주변부 정책으로 남겨둘 것인지, 아니면 국민 건강과 공동체를 지탱하는 국가적 인프라로 재배치할 것인지. 그 선택이 향후 10년 한국 체육의 우선순위를 결정하게 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문화 중심’ 행정의 벽을 넘지 못한다면 2035년에도 기사의 제목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체육 예산, 여전히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