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태용 감독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유현태 기자]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4일 파주 NFC에서 제 6차 기술위원회를 열고 공석인 국가 대표 팀  새 사령탑에 신태용 전 U-20 대표 팀 감독을 선임했다. 기술위원회는 오전 9시부터 시작한 회의가 긴 시간을 거쳤고 오후 2시 브리핑 결과가 발표됐다. 최종 선택은 2016년 리우 데 자네이루 올림픽과 2017년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을 연이어 책임진 신태용 감독이었다.

신 감독은 6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취임 기자회견에서 "계약 기간보다 한국이 9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해야 된다는 생각이 앞섰다. 2경기에 올인 해야 한다. 월드컵에 나가게 되면 더 좋은 계약 기간이 따라올 수 있다. 월드컵에 가서 더 좋은 성적을 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신 감독의 계약 기간은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본선까지다. 그는 2번이나 '고난의 소방수' 생활을 거쳤다. 신 감독을 단순히 '급한 불 끄기'에 이용할 것이 아니라, 2022년 카타르 월드컵까지 한국 축구를 이끌 지도자로 세우는 것은 어떨까.

# 비전을 보여준 지도자

신 감독은 급한 불 끄기에 익숙하다. 급작스레 2번이나 지휘봉을 잡고 국제 대회에 참가했다. 

처음은 리우 올림픽이었다. 리우 올림픽을 한창 준비하던 2015년 2월 고 이광종 감독이 백혈병 진단을 받으면서 후임으로 신 감독이 나섰다. 빠르고 매력적인 공격 축구로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거두고 리우 올림픽 본선에 갔다. 본선 조별 리그를 2승 1무로 통과했지만 8강전에서 온두라스에 0-1로 분패했다.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경기력은 좋았다.

다음은 올해 열린 U-20 월드컵이었다. 지난해 11월 안익수 감독 후임으로, 불과 대회 개막을 7개월 앞두고 지휘봉을 잡았다.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공격적 전술을 이식했다.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조별 리그는 2승 1패로 수월하게 통과했지만, 16강전에서 포르투갈을 상대로 적극적인 공격을 펼치다가 무너졌다.

아쉬운 결과를 받은 U-20 월드컵이지만 신 감독이 얻은 것도 있었다. 기니와 아르헨티나전에서 단단한 수비를 펼쳤다. 안정적인 수비력으로 '이기는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것도 보였다. 하필 녹아웃 스테이지 첫 판에서 개인 기량이 뛰어난 포르투갈을 상대로 공격 축구를 선택한 것이 패착이었다.

신 감독은 두 번의 국제 대회에서 '신태용 축구'가 무엇인지 보여줬다. 어영부영 선수 개인 기량에 유지하거나 운으로 따낸 결과가 아니다. 신 감독이 하고 싶은 축구는 뚜렷했고, 전술적 색채를 유지하면서 이룬 결과다. 김호곤 기술위원장이 "신태용 감독이 올림픽과 U-20 월드컵에서 큰 성공을 하진 못했지만 충분히 성과는 냈다고 생각한다"라고 평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더구나 2번 모두 소방수로 '등판'해 거둔 성과다. 시간을 두고 조직력을 다졌다면, 장기적으로 선수들의 발전을 노렸다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었다. 

▲ 20세 대표 팀을 이끌었던 신태용 감독 만큼 세대 교체에 적합한 감독이 있을까. ⓒ한희재 기자

# 연령별 대표 팀 경험, 2018년 이후에도 필요하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다. 등 떠밀려 맡은 올림픽과 U-20 월드컵 경험도 이젠 자산이 됐다. 리우 올림픽 팀은 권창훈, 이창민, 황희찬, 류승우 등이 주축을 이뤘다. 손흥민, 장현수, 석현준이 와일드카드로 합류했다. 현 A 대표 주축인 선수들 그리고 4년 뒤를 책임질 선수들이 리우 올림픽 팀에 대거 포진했다.

U-20 월드컵 땐 백승호, 이승우, 조영욱, 이상민 등 어린 재능들을 지도했다. 앞으로 10년 이상 한국 축구를 이끌 인재들이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과 그 이후까지 생각해 적절한 유망주를 발탁하기 위해서도 신 감독 이상 가는 적임자가 없다.

기존 A 대표 선수들도 잘 파악하고 있다. 신 감독은 원래 슈틸리케호에서 코치를 지냈다. 현재 대표 팀 선수들을 잘 알고 있다. 김호곤 기술위원장도 "현재 대표팀 문제는 선수들과 지도자의 소통이라고 봤다. 선수들 능력과 기량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신태용 감독이 전에 코치로 있었기 때문에 이른 시일 안에 팀을 추스릴 수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신 감독이 연령별 대표를 거치며 경험을 쌓았다. A 대표에 발탁할 만한 전 연령대를 모두 지도했다. 신 감독과 함께 올림픽, U-20 월드컵에 참가한 선수들 모두 신 감독의 지도력을 인정하며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형님' 리더십 때론 '삼촌' 리더십으로 팀을 이끌었다. '세대 교체' 혹은 '젊은 피 수혈'이란 목표에도 가장 적합한 인물이다. 오히려 내년 러시아 월드컵 이후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 '본보기' 뢰브, '반면교사' 홍명보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표현했다. 과거를 미루어 잘된 것은 배우고, 잘못된 것은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곧 발전이다.

지난달 막을 내린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독일은 한국 축구계에 좋은 모범이 될 수 있다. 독일의 사령탑 요아힘 뢰브 감독은 유로 2008부터 팀을 맡아 10년째 팀을 이끌고 있다. 10년 동안 독일은 전술적 일관성을 유지했다. 그리고 꾸준한 성과를 냈다. 유로 2008 준우승, 2010년 남아공 월드컵 3위, 유로 2012 4강,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우승, 유로 2016 4강까지 메이저 국제 대회에서 4강 이상의 성과를 올렸다. 꾸준한 경기력은 '전차 군단' 독일의 최대 장점이다. 뢰브 감독은 이제 국제 대회에서 익숙한 선수들을 제외하고도 국제 대회 우승을 차지할 정도가 됐다. 새 얼굴 발탁에도 적극적이었다.

시계를 3년 전으로 돌리면 '반면교사'로 삼을 지도자를 발견하게 된다. 바로 홍명보 감독이다. 홍 감독은 불운했다. 위기의 순간 소방수로 지휘봉을 잡았다가 부진한 경기력과 결과 때문에 뭇매를 맞았다. 홍 감독의 실수를 인정하더라도 상황이 만든 장애물이 홍 감독의 실패를 더욱 크게 만들었다.

문제는 홍 감독의 '낙마' 이후다. 홍 감독은 지도자로서 성장하고 있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이란 성과를 냈다. A 대표에서 활용할 수 있는 소중한 지도자였다. 그러나 섣부르게 지휘봉을 맡겼다가 모든 책임을 고스란히 안았다. 한국 축구는 지도자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결과를 내지 못하면 회생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문제다.

▲ "이전과 다르게 손흥민을 활용하겠다." 신태용 감독은 손흥민을 잘 아는 지도자다. ⓒ한희재 기자

# '언 발에 오줌누기'식 대응은 그만, 장기 집권을 허하라

구조적으로 신 감독을 지원하는 방법이 있다. 러시아 월드컵까지 '소방수'로 기용하는 대신, 장기적 차원에서 A 대표 팀을 맡기는 것이다. '신태용 축구'를 이식하기엔 1년이란 지극히 짧은 시간이다. 거대한 위기 속에 신 감독이 무언가 시도할 기회는 사실상 없다. 이미 한국의 주축 선수들은 유럽 무대를 누비고 있다. 2002년처럼 합숙 훈련을 진행할 수도 없다. 앞서 언급했던 대로 축구적 비전을 보여줬고, 전 연령대 선수들을 두루 파악하고 있다는 점은 누구도 갖지 못한 장점이다.

신 감독은 분명 한국을 월드컵으로 이끌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1년 동안은 '성적'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결과를 내지 못했을 땐 아예 대표 팀 감독과 멀어져 버릴 수도 있다. 홍 감독의 예는 신 감독의 '실패' 이후 지도자 생활이 순탄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방증한다.

신 감독에겐 시간이 필요하다. 두 번의 소방수 생활에서 '짧은 기간' 동안 자신의 축구를 보여줬다. 단기간에 성과를 냈다고 해서 계속 '미봉책'으로 쓸 순 없다. 이제 신 감독의 역량을 믿고 장기적 '계획'을 맡기는 과감한 선택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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