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여자 배구 대표 팀 ⓒ FIVB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1960년대 중·후반 부산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닌 글쓴이에게는 큰 꿈이 있었다. 휴대용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갖는 것이었다.

참고서 가격 부풀리기 등 여러 해에 걸친 비자금 조성 과정을 거쳐 드디어 손에 넣게 된, 손바닥만한 트랜지스터 라디오. 그때 그 기쁨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벅차다. 이 기기의 용처는 오로지 하나,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중계방송을 수업 시간에 듣는 것이었다. 이어폰 줄을 교복 팔뚝 안으로 밀어 넣어 빼고 손바닥으로 가리면서 복싱, 농구 중계를 들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산 선진 음향 기기(?)는 일본 도시바 제품이었다. 그 무렵 부산 국제시장에서는 일제 밀수품을 쉽게 구매할 수 있었다. ‘TOSHIBA’는 까까머리 소년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큰 회사였다. 이 세상 모든 물건을 만들 수 있는.

그런데 그 회사, 도시바 소식을 정말 오랜 시간이 흘러 듣게 됐다. 미국 원자력 발전 사업 거액 손실로 부채가 자산을 웃도는 채무 초과에 빠진 도시바가 지난 1일 도쿄증권거래소 2부로 강등됐다는 것이다. 게다가 2017년 회계 연도가 끝날 내년 3월 말까지도 채무 초과를 해소하지 않으면 증시 상장마저도 폐지된다고 했다. 일본 유명 전자 업체로는 지난해 샤프에 이어 두 번째 2부 강등이라고 한다. 전자 제품 강국 일본이 무너지기 시작한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이 흘러 스포츠 기자가 된 ‘트랜지스터 소년’에게는 특별하게 다가온다.

스포츠를 비롯해 이 세상 모든 분야에 영원한 강자는 없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스포츠에도 영원한 강자가 없다는 사례를 몇 가지 살펴본다.

한국은 1967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열린 제5회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한 경기력이었기에 그 무렵 아시아 무대에서는 초강국이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일본을 81-60으로 꺾었고 일본은 5위에 그쳤다.

그런데 세계선수권대회 준우승의 주역 박신자가 은퇴한 가운데 열린 1970년 제3회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쿠알라룸푸르)에서 한국은 일본에 55-58로 져 준우승에 그쳤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98-8, 쉽게 믿을 수 없는 스코어로 월남(통일 전 남베트남)을 꺾는 등 수준급 경기력을 자랑했지만 불과 3년 만에 세계선수권대회 2위에서 아시아선수권대회 2위가 됐다.

한국 여자 농구가 겪은 세대교체 후유증은 꽤 컸다. 1975년 콜롬비아에서 열린 제7회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일본에 62-89로 대패했다. 이 대회에서 일본은 준우승했고 한국은 5위에 그쳤다. 8년 만에 순위가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이후 박찬숙의 등장으로 한국은 1979년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제8회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 준우승,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은메달 등으로 일본에 앞섰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에는 다시 일본에 밀리고 있다. 지난달 인도에서 열린 제26회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는 직접 맞붙진 않았지만 일본은 준결승에서 한국을 81-64로 크게 이긴 호주를 결승에서 만나 74-73으로 따돌리고 대회 3연속 우승에 성공했다. 이 대회에는 출전하지 않았지만 '일본판 박찬숙'이라고 할 만한 도카시키 라무(191cm 시애틀 스톰)가 일본 여자 농구의 수준을 끌어올렸다고 볼 수 있다. 

아시아선수권대회 최다인 12차례 우승으로 11차례인 중국과 호각세인 한국 여자 농구지만 198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강세가 사라진 지 꽤 됐다.

스포츠에 영원한 강자가 없다는 사례의 고전(古典)은 ‘버마 축구’다. 오늘날의 미얀마인 버마는 한때 아시아의 축구 강호였다. 한국은 1970년 방콕 아시아경기대회 때 축구 종목에서 처음으로 우승했다. 이때 한국과 공동 우승한 나라가 버마다. 버마는 1966년 역시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단독 우승했다. 한국은 이 대회에서 예선 탈락했다. 이때 한국은 세대교체기였는데 태국에 0-3, 버마에 0-1로 졌다.

1950~60년대 동남아시아의 축구 강호로 이름을 날리던 버마는 1968년 서울에서 벌어진 제10회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우승을 계기로 더욱 꽃을 피운다. 버마는 결승에서 말레이시아를 4-0으로 크게 물리치고 처음으로 단독 우승한 뒤 이 대회에서 3연속 우승했다. 이 대회 전까지 버마는 한국, 이스라엘 등과 공동 우승만 4차례 했다.

버마는 1972년 제2회 박대통령배대회 결승에서 인도네시아를 3-2로 꺾고 우승하는 등 1970년대 중반까지 아시아의 축구 강국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 무렵 국내 축구 팬은 몽몽틴, 몽에몽 등 버마 선수 이름 한둘은 외우고 있을 정도였다.

한국이 말레이시아에 0-1로 발목이 잡혀 본선 진출의 꿈을 날려 버린 1972년 뮌헨 올림픽에 버마는 말레이시아, 이란과 함께 아시아를 대표해 본선에 올라 소련과 멕시코에 0-1로 지고 수단을 2-0으로 꺾는 등 선전했다. 그러나 버마 축구에 대한 국내 팬들의 기억은 거기까지다. 2017년 8월 현재 미얀마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157위다. 아시아에서조차 30위다. 아프가니스탄보다 아래다.

한국 스포츠로서는 잠시 열세를 뒤집은 기분 좋은 일이 벌어졌다.

한국은 17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열린 2017년 FIBA(국제농구연맹) 아시아 컵 8강 필리핀과 경기에서 118-86으로 크게 이겼다. 김선형(21점 4어시스트)과 오세근(22점 5리바운드)이 공격을 이끈 가운데 최준용과 이정현의 3점슛이 잇따라 터졌다. 박찬희는 어시스트를 9개나 기록했다.

한국은 1969년 방콕에서 열린 제5회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필리핀을 95-86, 일본을 75-66으로 꺾는 등 8전 전승으로 아시아 정상에 올랐다. 그런데 이 대회 전까지 한국은 1962년 자카르타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68-84, 1965년 아시아선수권대회(쿠알라룸푸르)에서는 50-59, 1967년 아시아선수권대회(서울)에서는 80-83으로 지는 등 필리핀에 열세를 면치 못했다. 1950~60년대 한국 남자 농구는 아시아 3, 4위권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는 1982년 뉴델리 아시아경기대회에서 132-99, 1987년 아시아선수권대회(방콕)에서 105-88로 필리핀을 꺾는 등 우세를 이어 갔다. 뉴델리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중국을 85-84로 물리치는 등 결승 리그 7전 전승으로 우승했다.

1990년대에도 한국은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우승 한 차례(1997년 리야드 대회)와 준우승 3차례(1991년 고베 대회 1995년 서울 대회 1999년 후쿠오카 대회) 등으로 필리핀보다 앞선 경기력을 자랑했다.

그렇지만 2010년대 이후 상황이 뒤집어졌다. 2013년 마닐라 대회 준결승에서 필리핀에 79-86으로 졌다. 2015년 창사 대회에서는 직접 맞붙지 않았지만 필리핀은 준우승, 한국은 6위에 그쳤다. 열세~우세~열세가 이어지다 17일 새벽 통쾌한 역전에 성공한 것이다.

한국은 16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2017년 제19회 아시아배구연맹(AVC) 여자선수권대회 준결승전에서 태국에 세트스코어 0-3(20-25 20-25 21-25)으로 졌다. 한때 각종 국제 대회에서 한국에 ‘승점 자판기’ 노릇을 하던 태국에 한 세트도 빼앗지 못하고 완패했다. 경기 내용도 밀렸다. 태국은 최근 강세에 힘입어 한국과 상대 전적을 8승27패까지 끌어올렸다.

1989년 홍콩에서 열린 제5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태국을 3-0으로 이겼다. 세트별 스코어는 15-3, 15-4, 15-2였다. 이때는 사이드 아웃제였다. 고등학생과 중학생 경기 수준이었다. 1999년 또다시 홍콩에서 벌어진 제10회 대회에서는 한국이 역시 3-0으로 태국에 승리했는데 세트별 스코어는 25-9, 25-19, 25-15로 어느 정도 경기가 이뤄졌다.

이어 2005년 타이칭(중국) 대회에서 한국은 풀세트 접전 끝에 태국에 3-2로 이겼다. 두 나라 사이 경기력에 큰 변화가 나타났다. 한국은 이 대회에서 4위, 태국은 6위를 기록했다. 2007년 라콘 랏차시마(태국) 대회에서 한국은 풀세트 접전 끝에 2-3으로 태국에 졌고 태국은 3위, 한국은 4위로 순위가 뒤집어졌다. 이 대회 때 비로서 배구 팬들은 ‘태국이 언제 여자 배구를 이렇게 잘했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태국이 야금야금 따라붙고 있다는 걸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태국은 2009년 하노이 대회, 2013년 라콘 랏차시마 대회에서 정상에 오르면서 아시아의 여자 배구 강국으로 자리를 잡았다.

한국은 17일 2017년 대회 3위 결정전에서 중국을 세트스코어 3-0으로 잡았고 태국은 결승에서 일본에 풀세트 접전 끝에 2-3으로 졌다.

대회 통산 성적은 태국이 우승 두 차례와 준우승 한 차례, 3위 세 차례로 준우승 7차례, 3위 9차례의 한국에 앞섰다.

그러나 스포츠에 영원한 강자는 없다. 여자 배구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패배의 아픔을 곱씹고 있지만 태국을 잡고 중국 일본을 앞질러 아시아의 강호 자리를 되찾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태국에 눗사라 톰콤이 있다면 한국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동메달을 이끈 유경화-유정혜 더블 세터 콤비가 있고 1994년 세계선수권대회 4강의 주역 이도희가 있다. 이들 외에 1970~80년대에는 윤영내 이운임 임혜숙 등 아시아 정상급 세터들이 줄지어 나왔다. 세터 강국으로 불릴 만했다. 머지않아 되살아날 한국 여자 배구의 전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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