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용단일까, 패착일까. 크리스털팰리스가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 역사에 불명예스러운 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팰리스는 부임 후 77일, 2017-18시즌 단 5경기 만에 새로 영입한 프랑크 더부르(47) 감독을 해임했다. 리그 경기로 따지면 4경기였는데, 이 4경기에서 모두 패했으니 근거가 없는 경질은 아니었다. 4전 전패 과정에서 한 골도 넣지 못해 원성이 자자했다.

더부르 감독은 네덜란드 축구계의 전설이다. 아약스에서 UEFA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뤘고, FC바르셀로나에서 라리가 우승을 경험했다. 네덜란드 국가대표로 112경기 13골을 기록하며 1998년 프랑스 월드컵 4강, 유로2000 4강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자신이 축구를 배운 아약스에서 유소년 감독으로 지도자 일을 시작한 더부르 감독은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코치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준우승을 경험했고,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아약스 1군 감독을 맡아 4번의 리그 우승을 이루며 착실하게 성장해나갔다. 

네덜란드 밖으로 나온 이후 고난의 연속이다. 2016년 여름 이탈리아 클럽 인터밀란에 부임했으나 14경기 만에 경질됐다. 2017년 여름에 프리미어리그 무대에서 재기를 노렸으나 개막 후 한달 여 만에 해고 통보를 받았다. 더부르 감독은 두 번의 해임에 대해 자신의 축구 색깔을 입힐 시간이 부족했다고 항변한다.

번리에 0-1 패배를 당한 이후 가진 공식 인터뷰는 더부르 감독이 가진 생각을 투명하게 읽을 수 있다. 

 “오늘 경기에서 이길 자격이 있는 한 팀을 꼽아야 한다면 우리였다. 하지만 축구는 때로 응당 받아야 할 보상을 받지 못할 때가 있다. 우리 자신을 비난할 수도 있다. 우리는 골을 헌납했고, 100% 완벽한 기회에도 득점하지 못했다.” 경기 총평을 살펴보면, 내용은 좋았으나 마무리가 부족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더부르 감독은 4연패라는 결과보다 개선되고 있는 내용에 집중해 달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플레이를 했다. 가끔은 롱볼도 시도했다. 때로는 그라운드를 활용했다. 우리는 스스로 기회를 만들었다. 경기를 통제했다. 그렇다면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

더부르 감독은 연패를 끊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자신했다. 

“이런 플레이를 매주 할 수 있다면 보상을 얻으리라 생각한다. 축구는 골을 만드는 경기다. 우리는 그 점에서 더 나았다.”

하지만, 팰리스는 더부르 감독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더부르 감독은 부임 후 스리백을 시도하며 점유율 축구를 접목했으나 어색했다. 힘 좋은 번리와 경기에는 4-3-3 포메이션으로 전환하며 이청용, 요안 카바예, 제프리 슐러프 등에게 새로이 기회를 줬다. 변화를 위한 노력이 엿보였다. 

▲ 부임 77일, 리그 4경기 만에 경질된 더부르 감독 ⓒ게티이미지코리아

영국 미디어 스카이스포츠는 축구 통계 업체 OPTA의 데이터를 근거로 더부르 감독의 팀이 발전 중이었다고 분석했다. 이를 근거로 팰리스의 결정이 섣불렀다는 의견을 밝혔다. 허더즈필드와 첫 경기부터, 팰리스는 확실히 전력상 우위에 있는 리버풀과 경기를 제외하면 슈팅 숫자, 결정적 기회, 득점 기회 및 상대 페널티 박스 안에서의 볼 터치 기록이 모두 상향됐다. 반면 실점 위기는 시간이 갈 수록 감소세였다. 시간이 가면 나아질 것이란 더부르 감독의 말에 근거가 있었던 것이다.

*크리스털팰리스의 2017-18시즌 초반 4경기 추이
경기: 허더즈필드-리버풀-스완지-번리
슈팅수: 14 → 4 → 16 → 23
결정적 기회: 2 → 2 → 0 → 4
전체 기회: 8 → 4 → 23 → 14
상대 박스 안 볼터치: 23 → 9 → 20 → 30

감독 교체는 상황 반전을 위한 극약처방이다. 번리와 경기에서는 킥오프 후 170초 만에 나온 이청용의 백패스 실수로 인한 실점 외에 대체로 좋은 경기를 했다. 전술, 전략의 실수 보다 개인의 실수로 갈린 경기였다. 그런 점에서 더부르 감독에겐 어느 정도 가혹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주제프 과르디올라 감독이 지난 시즌 맨체스터시티에서 감독 경력이 시작된 이후 처음 ‘무관 시즌’을 보낸 것처럼, 프리미어리그에 전술 혁신을 추구하는 지도자들에겐 시간이 필요하다. 팰리스가 더부르 감독과 계약을 결정했다면, 더 참을성을 보여야 했다. 

팰리스는 언제나 잔류가 급한 팀이라는 기질상, 인내심을 보이지 못했다. 더부르 감독의 지난 77일은, 그가 팰리스 감독으로 한 마지막 인터뷰처럼, ‘받아야 할 보상을 받지 못한 채’ 마무리되고 말았다. 이 결정이 몰락의 전조가 될지, 반등의 기점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더부르 감독의 말처럼, 축구의 세계엔 노력의 보상이 늘 정당하게 내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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