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의 성적과 경기력으로 드러난 위기는, 대한축구협회의 위기 관리 능력과 대응력에 대한 질타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일이 지난 한 달간 진실공방 속에 책임론으로까지 번진 거스 히딩크 감독 논란이다. 이러한 부정적 흐름은 비난의 화살을 넘어, 한국 축구, 대표팀 경기에 대한 냉소와 무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19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쇄신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성이 없었다. 성찰보다 해명에 가까웠다. 여론의 논란과 의심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다. 스포티비뉴스는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실타래를 풀어야할지 모를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처한 한국축구의 문제를 진단하고 축구가 다시 국민의 희망과 기쁨으로 부활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는 시리즈를 기획해 5회에 걸쳐 보도한다.

[한국축구 긴급진단]

① ‘국민 안줏감’ 전락한 한국축구, 소통 없는 협회장 리더십이 화 키웠다

② 경험 없는 기술위-퇴보한 대표팀 : 인재 낭비-시간 낭비-돈 낭비

③ 속수무책 행정력 : 실무 모르는 회장단, 현장과 괴리된 의사 결정

④ 위기의 K리그, '협회'와 엇박자에 설상가상

⑤ 전문가 제언 : 정몽규 회장의 혁명적 결단이 필요하다

국가대표팀의 부진, 대한축구협회에 대한 신뢰 상실로 한국 축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 한국 축구의 근간이라는 K리그는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축구협회를 향한 부정적 이미지는 K리그에도 비슷하게 드리웠다. 심판 매수 사건의 미진한 처리에서 팬들의 불신이 증폭됐다. 전북 현대는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승점 9점 삭감 처분을 받고 유야무야 넘어갔지만, 아시아축구연맹(AFC)은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박탈했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고, 심판 판정과 리그 운영에 대한 불만으로까지 확대됐다. 

K리그가 팬들의 외면 속에 '그들만의 리그'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2017시즌 K리그 클래식 34라운드 종료까지 평균 관중수는 6513명이다. 2016시즌 7854명, 2015시즌 7728명에 비해 줄어들었다. 경기력이 떨어지고 AFC 챔피언스리그 무대 부진까지 이어지면서 팬들은 감소했다. 대한축구협회와 엇박자, 국가대표팀의 부진 속에 K리그는 더 크게 요동치고 있다.

성장해도 부족할 K리그는 해가 갈수록 인기가 시들고 있다. 프로연맹은 장기적 차원에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당장 해결은 쉽지 않고, 위기 탈출은 점점 어려워지고만 있다. K리그는 팬들의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부터 쏟아야 한다.

◆ 경기력 저하 논란…잇단 해외 진출과 ACL 부진

K리그의 가장 큰 문제는 경기력이 저하됐다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이어진 '해외 유출'은 이번 시즌에도 여전했다. 김보경(전 전북 현대)이 J리그 세레소 오사카로, 황일수(전 제주 유나이티드)가 중국 슈퍼리그 옌벤 푸더로, 문창진(전 강원FC)가 아랍에메리트연합 알 아흘리로 떠나는 등 K리그 정상급 선수들이 해외로 떠났다. 간판 선수들이 떠나면서 직접적 경기력 저하, 그리고 팬들의 박탈감까지 겹쳤다.

ACL 부진은 경기력 저하를 입증하는 근거가 됐다. 2016년 전북 현대의 우승을 비롯해 K리그 팀들은 지난 10시즌 동안 4번의 우승과 2번의 준우승을 차지했다. 아시아 무대에서 거둔 성과는 점점 투자가 줄어드는 K리그의 자존심과 같았다. 하지만 이번 시즌엔 그마저 깨졌다. 제주 유나이티드를 제외하고, FC서울, 울산 현대, 수원 삼성까지 모두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제주마저 16강에서 우라와 레즈에 패했다. 8강에 한 팀도 못 오르는 극도의 부진 속에 중국과 일본의 잔치를 지켜봐야 했다.

승강제 도입으로 K리그의 발전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아직 현실이 되지 못했다. 2부리그인 챌린지는 1부리그 클래식에 비해 관심도와 경기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부정적 인식이 많다. 프로 선수들 자체는 늘었지만 수준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한다. 이미지 역시 '2부 리그'라는 딱지가 붙어 있다. 수도권의 한 챌린지 구단 관계자는 "그나마 서울과 가까워 관심을 받아 다행이다. 클래식에 비해 확실히 관심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클래식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돌아가다 보니 챌린지의 발전은 쉽지 않다.

◆ 리그 운영에 대한 신뢰는 여전히 먼 일

K리그 운영이 투명하지 않다는 인식도 팬들의 발걸음을 돌리게 하고 있다. 지난해 전북 현대의 모 스카우트가 심판을 매수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공정하게 경쟁한다는 스포츠의 존립 가치조차 흔드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전북은 고작 승점 9점 삭감 징계를 받았을 뿐이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심판 매수'라는 큰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한국프로축구연맹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이 많아졌다. 여기에 오심 논란까지 따르면서 K리그의 신뢰도는 바닥을 쳤다. 이번 시즌도 시작부터 판정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특정 구단에 유리한 판정이 내려지고 주로 시민구단들이 손해를 본다는 인식이 있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VAR을 조기 도입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판정의 질을 높이고자 도입한 VAR 운영도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한 K리그 구단 관계자는 "도입 취지에는 적극 동감한다. 하지만 도입 자체가 판정 문제를 해결하는 것 같진 않다"면서 "운영 기준과 규정을 잘 정해야 한다. VAR 도입으로 판정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구단 관계자 역시 "연맹 측의 해명을 들으면 명확한 기준이 아니라 해명을 위해 근거를 제시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며 기준을 확실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측에선 "VAR의 근본 취지는 오심을 최소화하는 것이지만, VAR을 진행해도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매라운드 6명이 참가하는 평가회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현재의 미숙한 운영도 앞으로 좋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VAR 도입은 만병통치약이 아니었고 아직도 더 나은 경기 운영을 위한 몸부림은 이어지고 있다.

◆ 투자도 없고, 수익도 부족한 K리그…실효성 떨어진 통합 마케팅

K리그의 재정 문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주도로 국가대표팀 경기와 K리그 중계권을 함께 파는 '통합 마케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성격이 다른 두가지(대표팀, K리그 경기)를 하나로 묶어두다 보니 둘 다의 정체성에 혼란이 생기고, 각자의 중장기적인 발전 전략을 수립하는 데도 문제가 생겼다. 대표팀이 승승장구할 때 K리그는 대표팀 곁에 붙은 곁다리 정도로 취급되고, 대표팀이 어려움에 빠지면 그 악영향이 증폭돼 K리그로 넘어오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K리그 구단 고위 관계자는 "K리그와 대표팀 경기를 묶어 협상을 하면서 K리그의 중계권 액수는 어느 정도 해결됐다"면서도 "그러나 중계를 쉽게 접하기 어렵고 대중에 노출도 잘 안된다"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K리그 자체의 판이 작아지고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그는 "K리그의 가치가 떨어진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국가대표팀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당장 K리그가 국가대표팀 효과로 중계권을 판매했지만 해결책은 아니라는 뜻이다. 국가대표팀을 향한 여론이 최악으로 치닫는 가운데, K리그가 독립적인 위치를 잡지 못한다면 공멸을 피할 수가 없다.

또 다른 K리그 클래식 구단의 고위 관계자는 "구단은 관중 입장, 광고, 중계권에서 수익을 얻는다. 현재 그 3가지 중 K리그에서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 있나. K리그는 대단한 위기"라고 말했다. 관중 감소는 수익을 내는 3가지 측면 모두에 영향을 미친다. 팬들이 많이 찾고 지켜 봐야 광고 수익도, 중계권료도 상승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그는 "중계권 협상도 협조는 필요하지만 협회와 연맹이 각자 독립적인 모델을 세우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국가대표팀과 K리그는 특성에 따라 다르게 다뤄야 한다는 의견이다.

◆ 협회와 엇박자에 K리그의 문제 커진다

협회와 엇박자는 K리그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대한축구협회를 향하는 불신, 국가대표팀 경기력 부진도 K리그엔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국가대표팀마저 무너지면서 K리그를 포함한 한국 축구 전반을 향하는 시선까지 나빠지고 있다. 최근 대한축구협회 직원들이 법인카드를 부적절하게 사용하는 등의 악재가 공교롭게도 대표팀 성적하고 맞물렸다. 함께 성장해야 할 두 한국 축구의 기둥이, 동시에 위기를 맞으면서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K리그 한 구단 관계자는 직접적으로 협회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국가대표 차출 등에 K리그가 많이 협조하지 않았나. 하지만 K리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침체된 K리그에서 그래도 흥행카드는 슈퍼매치 아닌가. 분위기가 조성될 타이밍에 온통 관심이 국가대표팀 쪽으로 갔다"고 말했다. 19일 오후 2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면서 오전에 열렸던 슈퍼매치 미디어 데이가 묻혀버렸던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K리그 구단 고위 관계자는 축구협회, 프로연맹을 비롯한 한국 축구계의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이들에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대혁신이 필요한 시기다. 단기간이 될 수도 장기간이 될 수도 있다. 결국 사람의 문제다. 의지가 있는 사람이 나선다면 분명 달라질 수 있다"면서 인적 쇄신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틀을 짜둔 상태에서 기존과 마찬가지로 간다면 수십년이 지나도 발전은 어려울 것이다.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할 인물들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 연맹의 '장기적' 위기 극복 노력…'신뢰' 문제는 먼저 해결할 수 있다

프로연맹 김진형 홍보팀장은 "전반적으로 위축된 것이 맞다"며 어려운 상황인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단순히 경기력 때문에 관중 감소가 이어졌다고 원인을 진단하지 않았다. 김 팀장은 우선 K리그가 외형적 성장이 아니라 내실을 다지는데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고 해석했다. "팀들이 관중 동원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관중 부풀리기를 없애는 과정에서 수치상으로는 줄어드는 것이 현실"이라며 "모든 구단이 유료 관중 비율은 꾸준히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팬들이 찾을 수 있는 K리그를 만들기 위해 프로연맹 차원에서 발전 프로젝트도 세웠다. 경기력 향상을 위한 유소년 육성 정책, 사회 공헌 활동 강화, 구단의 경영 전문화와 행정 능력 향상을 위한 인재 교육 등을 추진하고 있다. 앞으론 리그의 외형적 성장이 아니라 K리그와 구단들이 자립할 능력을 세우기 위해 내실을 다져야 한다. .K리그 한 구단 관계자는 "연맹이 노력은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랜 기간이 걸리겠지만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K리그가 만난 '겨울'은 길고 혹독하다.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 더 아프다. 장기적 대책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마냥 손 놓고 기다리고 있을 순 없다. 가능하다면 작은 문제들이라도 해결하며 나아가야 한다. K리그엔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직도 남아 있다. 

바로 팬의 신뢰를 찾는 일이다. K리그의 두껍지 않은 팬층조차 리그에 대한 신뢰를 잃고 있는 상태다. 공평하지 않은 '경쟁'을 보며 즐거워 할 이는 없다. 우선 프로연맹이 경남FC와 전북 현대의 심판 매수 건에 대한 확실한 사과, 다른 문제들을 찾기 위한 각 구단과 심판에 대한 전수조사로 과거의 의혹을 터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K리그가 위기를 넘기려면 일단 잃었던 팬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