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vs 세르비아 포진도 ⓒ김종래 디자이너


[스포티비뉴스=울산, 한준 기자] “사실 10명이서 블록을 쌓으면, 그걸 뚫기가 쉽지 않아요.” (기성용)
“라인이 쳐져 있으면 상대 팀이 풀어나올 수 있는 빌미를 주는 것이거든요.” (구자철)
“측면에서 뛰면 골을 넣을 수 있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손흥민)

남미의 콜롬비아와 유럽의 세르비아.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룬 두 강호와 차례로 만난 11월 A매치, 대한민국 축구 국가 대표 팀의 키워드는 ‘4-4-2 포메이션’이었다. 한국 축구는 그동안 3-5-2, 3-4-3, 4-3-3, 4-2-3-1 등의 포메이션으로 변천사를 거쳐왔다. 4-4-2 포메이션은 2001년 거스 히딩크 감독이 홍명보를 중심으로 한 스리백 수비 라인을 깨고 포백 라인 수비를 가르치기 위해 도입한 바 있으나, 지금까지 대표 팀의 주 전술로 사용된 적이 없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부임한 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표 팀은 ‘무색무취’라는 평가를 받았다. 대표 팀의 소집 기간 제한을 이유로 꼽았다. 신태용 감독이 후임으로 부임한 이후 ‘변형 스리백’이 시도되었으나 완성도가 떨어졌다. 역시 부족한 훈련 시간이 주요 이유였다. 그런데 11월 A매치에는 같은 기간 준비했는데 전술 완성도가 눈에 띄게 달랐다. 더구나 대표 팀에는 생소한 4-4-2 포메이션을 처음 썼는데 실전에서 효과를 발휘했다.

◆ 11월의 4-4-2, 수비가 최선의 공격이다

신 감독이 11월 일정에 시도한 4-4-2 포메이션은 투톱으로 전방 압박을 펼치고, 두 명의 측면 미드필더를 중앙으로 좁혀 전방 4인 블록을 구성하는 최신 축구의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다. 풀백이 전진해 전방 수비를 할 때는 2-4-4 대형으로 상대 지역에서 옥죈다. 전방 압박이 통과되면 4-4-2 대형으로 자기 진영에서 두 줄 수비를 펼친다. 어떤 상황에서든 공수 간격이 좁고, 타이트하다. 특히 중앙 지역에 공간을 주지 않는다.

대표 팀은 11월 일정에 손흥민의 고립 문제를 해결하며 화끈한 공격을 보였다. 콜롬비아전에 이근호, 세르비아전에 구자철을 손흥민의 투톱 파트너로 세웠다. 전통적인 타깃형 공격수 없이 두 명의 측면 미드필더와 유기적으로 움직이도록 했다. 활동량과 스피드를 갖춘 윙어 성향 선수 네 명을 배치해 공격 시 속도감을 살린 게 주효했다. 

앞서 말했듯, 4-4-2 포메이션의 성공은 상대 공격의 예봉을 꺾은 블록 수비가 중요하다. 상대 지역에서 공을 끊고 빠르게 쇼트 카운터를 전개해 휘몰아쳤다. 기성용은 “공격에서부터 헌신적으로 수비해주고 공간을 내주지 않았기 때문에” 잘 된 것이라고 했다. 수비의 시작인 공격 라인에서 많이 뛰어주면서 위험 지역에서 위기를 내주지 않았다. “그런 점을 선수들이 ‘인식’했다”는 것을 소득이라고 했다. 공격수들이 단지 요식 행위로 전방에서 수비한 게 아니었다. 정말 공을 빼앗아 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골키퍼로 향하는 공까지 뺏으려고 달려들었다.

▲ 이타적으로 뛴 구자철 ⓒ한희재 기자


세르비아전에 투톱으로 나선 구자철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굉장히 중요한 것은, 계속 라인이 쳐져 있으면 상대 팀이 풀어가는 데 빌미를 준다. 우리가 골킥을 하거나 (라인을) 올려야 할 때 타이밍을 잘 맞추고, 얘기도 많이 하다 보니 잘됐다. 위 아래로 왔다갔다 하는 게 상대팀에 부담을 많이 준거 같다. 계속 쳐져 있으면 상대가 빌드업을 하고 자신을 갖는데 한번씩 압박하면서 당황하게 한 것이 잘 된 거 같다.”

11월 A매치에서 대표 팀의 수비라인과 공격 라인의 간격은 22미터 가량으로 유지됐다. 촘촘한 가격으로 전후진을 반복했다. 강하게 압박하고, 빠르게 물러섰다. 틈을 주지 않았다. 상대 후방 빌드업이 무력해져 측면으로 빠지거나, 솔로 플레이를 시도했다. 그러면 한국의 협력 수비에 둘러쌓였다. 콜롬비아도, 세르비아도 중원에서 공을 소유하고 전개할 핵심 선수가 없었던 것도 문제였다. 한국의 중원 블록을 허물 수 있는 창조성과 기지를 갖춘 선수가 없어 미드필드 플레이가 와해됐다. 한국의 중앙 지역은 블랙홀 같았다. 콜롬비아와 세르비아 선수들은 제대로 공 관리를 하지 못했다. 기점 패스가 불안하고, 중앙 지역에선 수적 열세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는 신 감독이 “상대 팀 보다 한 발 더 뛰어야 이길 수 있다”고 강조한 이유다. 일대일 기술에서 열세라면 조직으로 이겨야 한다. 두 사람, 세 사람이 근거리에서 수비하고 공격해야 한다. 그러려면 많이 뛰고 빨리 뛰어야 한다. 이번 대표 팀에 신 감독은 그런 선수들을 모았다. 특히 이근호, 권창훈, 이재성, 손흥민, 구자철 등은 많이 뛰면서도 공을 다룰 줄 알고, 패스할 줄 알며, 골을 넣을 수 있는 한국의 몇 안 되는 선수들이다. 

▲ 7번의 슈팅을 모두 유효슈팅으로 연결한 손흥민 ⓒ한희재 기자


◆ 손흥민 활용법, 투톱이 답이었다

손흥민은 투톱으로 배치되면서 전방 압박 시 측면 뒷공간에 대한 부담을 덜었다. 공격 전개 시 골로 가는 길을 더 빨리 찾았다. 한쪽 측면에 있을 때보다 다양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두 경기 모두 투톱 중 왼쪽으로 출발했으나 경기 내내 정해진 자리 없이 위치를 바꿔가며 골문을 습격했다. 손흥민은 “골대에서 더 가까워져서 더 위협적인 장면을 많이 만들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토트넘홋스퍼에서도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은 손흥민을 투톱이나 원톱 내지 처진 공격수로 기용해 다득점을 유도했다. 그동안 측면을 타고 전방으로 진입하는 ‘가짜 윙어’로 주로 뛰었지만, 그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자리는 전후좌우 어디로든 편하게 전환할 수 있는 중앙이었다. 이재성과 권창훈이 좋은 패스를 보낼 수 있는 선수라는 점도 잘 맞았다. 

“측면에서 뛰면 골을 넣을 수 있는 거리가 멀어진다, 움직이는 공간이 한정적인데, 중앙은 움직일 수 있는 공간 많고, 패스를 넣어줄 수 있는 이재성, 권창훈 등 좋은 선수가 있다. 최전방에서 뛸 때 패스를 해줄 아는 선수들이다.” (손흥민)

콜롬비아전 이근호의 경우 측면으로 빠지며 손흥민에게 공간을 만들어줬다면, 구자철은 2선으로 빠져 공을 잡아주고 뿌려줬다. 그 덕분에 이재성과 공격 지역에서 더 전진해서 활약했다. 구자철 자신은 스트라이커다운 경기를 하지 못했으나 팀 플레이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상대의 체력이 떨어진 영향도 있지만, 손흥민은 후반 중반 이근호 투입 이후 슈팅 기회를 더 많이 잡았다. 두 경기를 통해 많이 뛰고, 영리하게 뛰는 이근호와 짝을 이루는 게 이상적이라는 점을 다시금 확인했다. 콜롬비아전에도 이근호가 빠지고 이정협이 투입된 이후 공격이 둔화됐다.

“자철이 형은 근호 형과 다른 스타일이다, 공격형 미드필더를 보는 선수다. 내려가서 볼을 받는 위치가 나보다 밑이다. 나한테 특별히 다른 것은 없다. 근호 형도 편하고 자철이 형도 편하다, 자철이 형은 패스가 좋고, 근호 형은 같이 움직여서 수비를 분산 시켜준다, 어떤 선수라도 나에게는 편한 선수다. 두 선수에게 배울 것 많다.” (손흥민)

“감독님이 경기 전에 근호 형과 내가 다른 유형의 선수라는 것을 전체적으로 인지시켜줬다. 나 같은 경우, 빠지는 것도 좋아하지만 나와서 연결해주는 걸 더 좋아한다. 재성이나 창훈이가 굉장히 공격적으로 턴이나 패스를 잘한다. 그래서 그런 걸 맞추려고 준비를 했다.” (구자철)

모두가 화려하게 빛날 수는 없다. 조직이라는 톱니바퀴 안에서 누군가는 희생해야 한다. 이날 4-4-2 포메이션의 공격진 중 가장 희생한 선수는 구자철이다. 페널티킥을 얻고 직접 성공시켜 자신의 19번째 A매치 득점을 올린 것은 그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됐다. “모로코전은 흥민이에게 양보할 생각이었다. 이번엔 흥민이도 내가 오랫동안 골을 못 넣어 양보해준 것 같다. 내일 비행기를 타고 독일로 돌아가는데, 오랜만에 득점해서 자신감을 갖고 돌아간다.”

많이 뛰는 이근호, 공을 관리하는 구자철, 그리고 석현준과 같은 정통파 스트라이커와 합을 맞춰보는 과제와 실험이 남아있다. 이근호와 비슷한 유형으로 볼 수 있는 황희찬과 투톱 배치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신 감독은 상대 팀의 전략에 따라 맞춤 전술을 준비하는 감독이다. 콜롬비아전에 고요한을 기성용의 파트너로 배치했던 신 감독은 세르비아전에 상대 피지컬에 대응하기 위해 정우영을 기용했고, 효과를 봤다. 공격 조합도 상대와 상성을 보고 구성할 전망이다. 손흥민의 짝으로 누가 먼저 나가고, 누가 후반에 들어올지 선택해야 한다. 이근호가 90분 내내 그런 활동량을 보이기 어렵고, 상대 수비 구성에 따라 다른 유형의 선수가 필요할 수 있다.

▲ 주장 기성용 ⓒ한희재 기자


◆ 전방 압박형 4-4-2의 허점, 광활한 배후 공간

라인을 높여 상대를 압박하는 지금의 4-4-2 포메이션의 약점은 결국 광활한 배후 공간이다. 빠른 공수 전환과 라인 이동으로 커버해야 하는데, 후반 13분 아뎀 랴이치에게 선제골을 내준 장면에서 허점이 크게 드러났다. 공격이 차단된 이후 안토니오 루카비나, 알렉산다르 프리요비치, 세르게이 밀린코비치사비치를 거쳐 랴이치에게 연결된 패스 연결이 깔끔하게 이어졌다. 이런 패턴 플레이는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만날 상대들이 충분히 준비하고 구사할 수 있다. 경계해야 하는 장면이다.

기성용은 전략적으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했다. 4-4-2 포메이션의 밸런스에 대한 교훈도 얻었다.

“제가 사실 거의 앞선까지 나가진 않았는데, 딱 한번 나갔다가… 오늘 또 그 장면을 보면서 밸런스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실점 장면에서도 파울이나, 영리하게 선수들이 카운터어택을 맞았을 때 지연하는 게 부족했다. 그건 선수들이 경기 전에 조금만 더 생각하고 준비하면 충분히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이다. 상대가 카운터어택을 나올 때 지연하고 끊을 것을 잘 준비해야 한다.”

◆ 명확한 전술적 방향성, 플랜A 찾은 신태용호

이토록 빠르게 전술 숙지가 된 것은 선수들의 집중력과 스페인 코치들의 노하우 전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선수들에게 전술의 요점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전한 것이 중요했다. 기성용은 “팀이 명확하게 어떤 플레이를 하고자 하는지, 선수들이 캐치했다. 신 감독님이 정확하게 공격과 수비에서 어떤 식으로 플레이하자는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이해하기 쉬웠다”고 했다. 구자철도 “코칭 스태프가 준비를 많이 한 것 같다. 원하는 게 명확했다”고 했다.

단순하지만, 확실한 방법으로 준비했다. 슈틸리케 감독 체제에서 선수들 스스로 창조적으로 점유율을 활용하게 한 전략은 짧은 기간 완성도를 높이기에 한계가 컸다. 선수들은 감독의 구체적 방향성을 파악하지 못했고, 감독도 뚜렷한 해결책을 주지 못했다. 지난 시행 착오 끝에, 전방 수비를 기반으로 한 빠른 쇼트 카운터. 약 팀이 강 팀을 상대하는 교과서적 방식으로 한국 축구는 본래의 강점을 되찾았다.

전술은 선수들의 자신감을 먹고 더 강해진다. 구자철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가 콜롬비아전을 하기 전에 준비를 우리 나름대로 했던 것이, 콜롬비아전에 잘 먹히면서 자신감을 갖고 세르비아전도 빨리 숙지할 수 있게 됐다. 경기를 다 봤고, 그래서 최대한으로 시간이 짧게 걸렸다”고 했다. 잘되면서 탄력을 받았다. “그렇지만 계속 발전해 나가야한다는 건 선수들끼리도 분명 얘기했다. 지금 2연전 통해서 우리가 자신감을 갖고 계속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잘 됐지만 더 잘해야 된다는 인식도 갖고 있다. 

▲ 플랜A를 찾은 신태용 감독 ⓒ한희재 기자


손흥민은 자신을 최적으로 활용하려는 신 감독에게 믿음을 보내고 있다. “감독님과 나는 미팅도 많이 하고 어느 포지션이 편한지 이야기를 나눈다. 감독께서 나에게 최적화된 포지션, 최적화된 공격력을 만들어줄 것이다.” 손흥민 활용법은 신 감독 부임 후 경기를 거듭하며 윤곽이 나왔다. 득점은 없었지만 세르비아전은 손흥민이 대표 팀 유니폼을 입고 치른 가장 화끈한 경기 중 하나였다.

두 경기 만에 4-4-2 포메이션은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준비하는 대표 팀의 유력한 플랜A로 떠올랐다. 최정예를 소집할 수 있는 다음 일정은 내년 3월. 남은 소집일이 많지 않지만, 본격적인 준비는 궤도에 올랐다. 12월 일본에서 열린 2017 EAFF(동아시아축구연맹) E-1 풋볼 쳄피언십(동아시안컵)과 1월 유럽 전지훈련은 신 감독이 전술적 담금질을 지속할 수 있는 기회다. 기본 원칙은 투지와 헌신, 활동량이다. 11월의 유산이 신태용호의 색깔을 정의했다.

“선수들이 한 발짝 더 뛰면서 악착 같은 근성으로 커버했다. 선수들이 감독이 원하는 플레이 잘해줬다. 우리 선수들이 많은 자신감을 얻었다. 선수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게 가장 큰 성과라고 볼 수 있다. 동아시안컵에서는 우리가 지금 11월에 한 식으로, 12월 동아시안컵도 우리가 뛸 수 있고, 상대보다 더 많이 뛸 수 있는 부분을 하겠다. 역시 한국 축구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도록 준비하도록 하겠다.”

글=한준 (스포티비뉴스 축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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