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델처럼 길쭉한 임동혁, 웃음이 상쾌했다.
[스포티비뉴스=유현태 기자] K리그 챌린지. 아직 K리그 클래식이라는 목표가 남아 있는 '미생(미'들이 말 그대로 '도전'하는 무대. 누군가는 K리그 챌린지를 '그들만의 리그'라고 부른다지만, 누군가에겐 소중한 기회의 장이자 한국 축구의 뿌리가 자라고 있는 곳이다. 올해도 그 척박한 곳에서 부지런히 노력해 꽃망울을 맺는 선수들이 있다.

부천FC1995의 수비수 임동혁은 2016시즌 8경기에만 등장한 선수였다. 그나마도 7경기는 교체로 투입됐다. 올 시즌은 34경기 출전을 기록하면서 팀의 주축 수비수로 성장했다. 임동혁은 닭띠의 해, 2017년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아, 자신의 축구 인생에 전성기를 활짝 피울 준비를 했다.

지난달 3일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된 지 며칠 되지 않아 부천의 한 카페에서, 프로필상 190cm의 장신이면서도 앳된 웃음이 매력적인 임동혁을 만났다. 이번 시즌 자신을 "못한 것 같다"고 평가하면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해 아쉽다"는 말을 반복하는 임동혁은 이미 다음 시즌, 그리고 더 높은 무대를 향해 눈을 돌리고 있었다. 출전 자체가 목표였던 2017년 시작에 비하면 훌쩍 자란 것이다.

◆ 승격 좌절, 마지막 헤딩 슛

부천FC는 이번 시즌 아깝게 챌린지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시즌 내내 3,4위를 오가며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지켰지만 시즌 마지막 7경기에서 1승 3무 3패로 부진했던 것이 발목을 잡았다. 임동혁은 "홈에서 안양전을 비긴 것이 많이 아쉽다. 1명이 없는 상태에서 비겼다"고 설명했다.

최종전 서울이랜드전에서 승리를 거뒀다면 플레이오프 진출이 가능했지만 2-2로 비기면서 마지막 희망도 물거품이 됐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다. 서두른 것이 문제였다.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경기였다. 실점을 먼저 해서 더 바빴던 것 같다. 급하니까 서둘렀다. 골을 먼저 넣었으면 편하게 갔을 것 같다."

임동혁은 후반 종료 직전 코너킥을 헤딩으로 연결했다. 골문 구석으로 빨려들어가나 했지만 골포스트를 벗어났다. 기자석 앞에 모여 함께 플레이오프 진출을 기대하던 부천 구단 직원들 사이엔 탄식이 흘렀다. 임동혁도 "진짜 들어간 거라고 생각했다. 너무 정확하다 보니 구석으로 넣으려다 보니…(안 들어갔다.) 계속 그 장면이 생각난다"며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 '첫 풀타임' 2017년…성장의 한 해

비록 팀은 목표를 이루지 못했지만, 선수로선 많은 것을 배운 시즌이었다. 팀의 주전으로 떠올라 시즌 전체를 꾸준히 출전한 첫 번째 시즌이었다. 정갑석 감독은 "몇 시즌 더 있으면 클래식에서도 잘할 선수"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선수 스스로는 아직 부족한 것들이 많이 눈에 띄었나 보다.

"못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론 5점을 주고 싶다. 안 다치는 것 하나는 지킨 것 같다. 자신감 있게 하지 못했다. 실점도 많았고 왜 이렇게 했지 싶은 적도 많았다."

성장은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고 있는 법. 이미 한 시즌을 치르는 동안 실력이 는 것은 주변에서부터 안다고 한다.

"저는 정작 잘 못 느끼는데 형들이 좋아진 것 같다고 말해주더라. 처음이랑은 많이 달랐다. 몸이 경기에 적응하더라.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몸이 느끼더라. 실전 경험을 쌓으면서 발전할 수 있어 좋았다. 선수는 경기 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작년에 경기를 많이 못 뛰었다. 교체로 주로 들어갔는데, 올해랑은 정말 다르다. 처음 들어가서는 적응을 하지 못하겠더라. 시즌 초반에는 저 때문에 골을 허용하니까 계속 생각이 났다. 경기 끝나고 소리를 지르고 했다. 감독님이 불러서 그럴 수 있다 나중에 안 그러면 된다고 말해주시더라. 이젠 실수를 해도 경기 중엔 빨리 잊으려고 한다. 경기 끝난 뒤엔 비디오 보면서 계속 스스로를 질책한다. 축구는 실수 안하는 싸움이다. 실수를 줄여야 한다."

선수 본인도 몰랐겠지만 이미 시선 자체가 바뀌어 있었다. 지난 1월 남해에서 동계 전지훈련 당시 임동혁과 짧은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그는 "경기 출전하는 게 목표다. 올해는 기회를 잘 잡아서 출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출전이 목표인 적도 있었는데 이제 경기력을 이야기하고, 부족한 점을 깨달았다는 점만으로도 의미 있는 한 해가 아닌가.

3월에 시작해 봄, 여름, 가을과 겨울의 초입까지 이어지는 시즌은 신체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피로한 일이다. 임동혁이 첫 풀타임 시즌을 보내면서 배운 중요한 교훈은 '휴식의 중요성'이다.

"경기를 이렇게 많이 뛴 게 처음이다. 처음엔 의욕에 넘쳐서 뭐라도 해보려고 했다. 막판으로 가니 몸이 지치더라. 한 시즌 동안 꾸준히 잘하는 게 힘들다고 느꼈다. (문)기한이 형한테 물어보곤 했다. 꾸준히 잘하는 게 힘들다고 하더라. 몸이 힘든데 어떡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축구 생각을 하지 말라고 했다. 축구랑 잠시 떨어져서 다른 걸 하거나 여자 친구를 만나서 데이트를 하거나 해보라고. 그렇게 해보니 도움이 되더라. (그래서 여자친구를 만났나?)아 그건 아니다. 여자친구는 아직 없다. 하하."

▲ K리그 사진 데이터베이스에서 임동혁을 검색하면 주로 이렇게 헤딩하거나 얼굴을 구기고 있는 사진들이 나온다. 고군분투한 2017 시즌을 보여준다. ⓒ한국프로축구연맹

◆ 눈은 이미 2018년으로, 그리고 클래식으로

부천의 수비진엔 젊은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다. 임동혁(1993년생)과 동갑내기 안태현, 김한빈(1991년생), 신인 고명석(1995년생)이 주전 수비수였다. 임동혁은 패기와 신체 능력보다 노련미가 중요한 수비에선 경험 부족이 큰 약점으로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다행히 부천에서 지난 시즌을 함께 보냈던 한희훈(대구FC), 강지용(강원FC)에게 질문도 하고, 그리고 시즌 중반 합류한 베테랑 김형일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노련한 선수가 되고 싶다. 동료들도 잘 컨트롤하고 싶다. 공격할 땐 전부 공격만 했던 것 같다. 저도 잘 모르는데 다들 어리고 경험이 부족했다. 옆에서 누가 컨트롤해줬으면 좋겠는데, 내가 다른 선수들을 조정해줘야 하니 어려웠다. (한)희훈이 형, (강)지용이 형한테 전화해서 물어보고 했다. (김)형일이 형이 오셔서 정말 도움이 많이 됐다. 마지막에 경기에 많이 출전하지 못해 아쉬웠다. 부족했지만 배운 것을 위안으로 삼고 있다."

신인 임동혁에겐 좌충우돌한 시즌이었다. 팀의 지휘봉을 잡은 것도 '프로 초보' 정갑석 감독이었다. 시즌 초반 포백을 중심으로 공격 축구를 하려고 했으나, 경기력이 따라오질 않았다. 부천은 스리백으로 수비에 안정을 잡고 빠른 공격 전환을 노리는 팀으로 변모했다. 시즌 막판 승리가 필요할 땐 포백도 적극 활용했다. 임동혁은 오히려 변하는 전술 속에서 성장의 기회를 엿봤다고 설명했다.

"처음에 포백으로 시작했다가 갑자기 스리백으로 바꿨다. 스리백이 또 잘 맞아 떨어졌다.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포백도 스리백도 모두 할 수 있게 됐다. 포백을 하면 수비가 더 힘들긴 한데 공격적인 경기가 가능하다. 포백이 경기가 더 재미있긴 하다. 장단점이 있으니 번갈아가면서 활용한다면 좋을 것 같다."

이제 한 시즌을 보냈으니 승격의 꿈을 이룰 때다. 팀도, 선수도. 

"나도 클래식에 가고 싶다. 부천과 함께 성장해서 클래식에 가는 것이 제일 좋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 아니지 않나.(웃음) 좋은 성적을 내려면 좋은 선수들이 많아야 할 것 같다. 그래도 경험을 쌓았으니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경험있는 '형님'들이 있으시면 좋겠다. 경험에서 차이가 많이 나더라. 챌린지는 선수단 변화가 커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 과격과 열정 사이, 부천 팬들에게

부천의 팬들은 열정적이기로 유명하다. 때론 도가 지나쳐 '사건사고'의 주인공이 된다. 지난 8월 팬들이 경남FC의 버스를 막아서는 일이 벌어져, 구단이 무관중 징계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미우나 고우나 한 식구다. 임동혁은 팬들의 뜨거운 응원에 감사를 보내면서 딱 한가지 당부를 남겼다. 욕설만 해주지 말아달라.

"올해 저 때문에 못 올라간 것 같다. 마지막에 골을 못 넣어서. 죄송하기도 하고 그래도 원정 경기 갈 때마다 홈보다 더 많이 응원을 와주셔서 힘이 되주셔서 감사하다. 팬들과 같이 뛰는 느낌이었다. 정말 감사한데 무서울 때가 있다. 욕을 하실 때 경기장 안에서 다 들린다. 저희 팬들인데 어떡하겠나. 감수해야 한다. 욕설만 안해주시면 좋겠다. 마지막 이랜드전에도 많이 와주셔서 경기가 즐거웠다. 경기장에 팬들이 많이 와주시면 힘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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