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호주오픈 8강에 진출한 뒤 환하게 웃고 있는 정현 ⓒ GettyIimages

[스포티비뉴스=조영준 기자] "세계 최고 선수 가운데 한 명인 조코비치를 상대로 정현은 교수(Professor)다운 침착함이 돋보였다."

- 미국 CNN

호주오픈을 휩쓴 정현(22, 한국체대, 삼성증권 후원, 세계 랭킹 58위)의 돌풍이 고국 한국까지 흔들었다. 정현은 도장깨기를 하듯 세계 정상급 선수들을 차례로 물리치며 8강에 진출했다. 세계 언론이 정현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로이터 통신은 "정현이 전 세계 랭킹 1위 조코비치가 치는 샷을 모두 빨아들였다"고 극찬했다. 대회 공식 홈페이지는 "정현의 경기는 플레이스테이션(가정용 오락기) 게임 같았다. 게임에서나 가능한 샷이 3세트 타이브레이크에서 나왔다"고 평가했다.

정현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임용규(27, 당진시청)와 짝을 이뤄 복식 금메달을 땄다. 당시 18살 소년이었던 정현은 한국 테니스를 대표할 차세대 기대주로 기대를 받았다.

이때부터 동료 선수들은 "(정)현이는 정말 (재능을) 타고난 선수"라며 격려했다. 그러나 테니스 불모지인 한국에서 정현이 어느 정도 성장할 지는 쉽게 예상하기 어려웠다. 전 세계인들이 도전하는 테니스의 장벽은 매우 높다. 특히 남자 테니스는 동양권 선수들이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여겨졌다.

그동안 한국 테니스 팬들은 로저 페더러(37, 스위스, 세계 랭킹 2위) 라파엘 나달(32, 스페인, 세계 랭킹 1위) 노박 조코비치(31, 세르비아, 세계 랭킹 14위) 앤디 머레이(31, 영국)가 펼치는 경기를 즐겼다. 최고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 누비는 그랜드 슬램 대회에서 한국 선수가 선전하는 경기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다.

정현은 마침내 '꿈'을 '현실'로 바꿨다. 그는 22일 열린 호주오픈 남자 단식 16강전에서 3시간 21분간 펼쳐진 접전 끝에 조코비치를 3-0(7-6<4> 7-5 7-6<3>)으로 이겼다.

그는 24일 테니스 샌드그렌(26, 미국, 세계 랭킹 97위)과 준결승 진출을 다툰다. 지금까지 정현의 곁에 있었던 '승리의 신'은 8강에서도 정현과 함께할까.

▲ 2018년 호주오픈 16강전에서 노박 조코비치를 꺾은 뒤 관중석에 있는 부모님에게 큰절을 올리는 정현 ⓒ GettyIimages

언더독 반란의 두 주인공, 누가 '탑독'으로 생존?

올해 호주오픈은 유독 '언더독의 반란'이 무섭다. 정현은 물론 지난해까지 챌린저 투어에서 뛰었던 무명의 샌드그렌이 8강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테니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샌드그렌은 생소한 선수다. SPOTV 테니스 해설가인 박용국 NH농협 단장은 "샌드그렌은 지난해까지 챌린저 투어에서 뛰었고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선수다. 경험에서는 정현이 앞선다"고 밝혔다. 이어 "챌린저 투어에서 올라와 잘하고 있는 거 같은데 무엇보다 도미니크 티엠을 잡은 것만으로도 만만치 않은 선수"라고 경계했다.

16강전에서 샌드그렌은 세계 랭킹 5위 도미니크 티엠(24, 오스트리아, 세계 랭킹 5위)를 풀세트 접전 끝에 3-2(6-2 4-6 7-6<4> 6<7>-7 6-3)로 잡았다.

이 경기에서 샌드그렌은 서브에이스가 무려 20개나 나왔다. 키는 정현과 똑같은 188cm다. 그러나 서브와 공격력은 정현을 압도한다.

정현은 정교한 스트로크와 패싱샷 그리고 코트 커버 능력이 뛰어나다. 이번 호주 오픈에서 그는 자신의 장점이 세계 정상급에 도달했음을 증명했다.

▲ 2018년 호주오픈 8강 진출에 성공한 뒤 독특한 제스처를 하고 있는 테니스 샌드그렌 ⓒ GettyIimages

경기 스타일을 볼 때 정현이 끈질긴 수비와 스트로크로 샌드그렌의 범실을 유도할 경우 승산이 있다. 박 단장은 "정현의 코트 커버 능력과 스트로크 그리고 패싱샷은 세계 정상급 수준이다. 스트로크 싸움을 오래 끌고 갈수록 정현이 유리하다"며 "고무적인 점은 이번 대회에서 정현의 리턴이 매우 좋다는 점이다. 상대의 강한 서브와 공격을 잘 받아낸다면 준결승 진출도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정현은 이달 초 샌드그렌을 이긴 경험이 있다. 그는 지난 9일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열린 ATP 투어 ASB클래식 1회전에서 샌드그렌을 2-1(6-3, 5-7, 6-3)로 이겼다.

이 경기에서 샌드그렌은 서브 득점 7개, 정현은 2개를 기록했다. 첫 서브 성공률에서는 정현이 68%를 기록하며 55%에 그친 샌드그렌을 압도했다.

정신력과 체력도 '승리의 신과 함께'할 열쇠

샌드그렌은 티엠과 경기에서 끈질기게 상대를 물고 늘어지는 근성을 보여줬다. 경기가 안 풀리면 흥분하는 장면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내 집중력을 찾고 상대를 몰아붙였다.

이름값을 볼 때 샌드그렌은 조코비치와 비교할 수 없다. 그러나 조코비치는 오른쪽 발꿈치 부상으로 이번 대회에서 전성기 때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반면 샌드그렌은 거침없이 상승세를 타고 있다. 정현에게는 오히려 이런 샌드그렌의 기세가 위협을 준다.

정현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어린 나이답지 않게 냉철하다는 점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그는 치고 올라갈 기회를 종종 놓칠 때가 많았다. 지난해 국가 대항전인 데이비스컵에 출전한 정현은 "그동안 운동을 하면서 중요한 상황에서 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이런 점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덧붙였다.

투어에서 경험을 쌓은 점도 정현이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는 데 밑거름이 됐다.

▲ 2018년 호주오픈에서 장기인 백핸드를 치고 있는 정현 ⓒ GettyIimages

그랜드슬램 대회는 '테니스의 마라톤'으로 불린다. 정현은 8강까지 올라오면서 4경기를 치렀다. 초반에는 복식 경기까지 뛰었기에 체력을 재충전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박 단장은 "현재 정현의 정신력과 체력은 최고 수준이다. 대회 막판까지 이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세계 주요 베팅업체들은 정현의 승리에 1.16배의 배당률을 걸었다. 샌드그렌은 5.00배다. 배당률이 낮을수록 승리 가능성이 높다. 정현의 배당률은 샌드그렌과 비교해 훨씬 낮다.

샌드그렌의 벽만 넘으면 '테니스의 황제' 페더러와 만날 기회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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