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화와 고다이라 나오 ⓒ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강릉, 신원철 기자] 2016-2017시즌 ISU(국제빙상경기연맹) 월드컵부터 세계 최고의 스프린터로 떠오른 고다이라 나오, 그리고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과 2014년 소치 대회까지 2회 연속 500m 금메달에 빛나는 이상화. 두 선수의 매치업은 세계가 주목하는 '세기의 대결'이었다.

하늘은, 그리고 규칙은 두 명의 승자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상화는 18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37초 33으로 은메달을 차지했다. 36초94로 올림픽 신기록을 새로 쓴 고다이라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고다이라가 2014년 소치 대회 메달 획득에 실패한 뒤 네덜란드 유학을 거쳐 20대 후반에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한 대기만성형 선수라면, 이상화는 청소년 대표 때부터 정상급 잠재력을 인정받았고 올림픽 2회 연속 금메달로 주목을 독차지했다. 다른 과정을 밟았지만 두 선수의 목표는 같았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금메달. 그리고 18일 그 결과가 나왔다. 

평소 고다이라를 "그 선수"라 부르던 이상화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라이벌'로 간단히 정리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선수로서의 경쟁심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보는 게 옳을지 모른다. 이상화는 경기 후 믹스트존 인터뷰에서 "나오…가 아직도 나를 존경한다고 해줬다"고 했다. 민망한듯한 미소가 번지며, 조심스럽게 성도 아닌 이름을 불렀다. 

▲ 이상화(오른쪽)을 위로하는 고다이라 나오 ⓒ 연합뉴스

물론 두 선수를 이야기하며 경쟁 구도를 그냥 지나쳐서는 안된다. 중학교 시절부터 국제 무대에서 인연을 맺은 두 선수지만 위치는 달랐다. 이상화가 먼저 위에 있었다. 

고다이라가 세계 최고 수준의 성적을 내기 시작한 것은 2016-2017년 시즌부터. 500m 무패 기록도 여기서 시작했다. 이 시즌에는 이상화가 부상으로 전성기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세 번 만났는데 모두 고다이라가 이겼다. 이상화는 2016년 11월 나가노 대회에서 2위에 오르며 고다이라를 맹렬히 쫓았지만 12월 헤이렌베인 대회에서는 8위에 그쳤다. 고다이라는 이상화가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1위를 지켰다.

지난해 월드컵과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 역시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다. 동시에 이상화에게 긍정적인 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다이라의 500m 연승 기록은 끝이 보이지 않았지만 이상화와 차이는 직전 시즌처럼 크지 않았다. 이상화는 7번의 월드컵 맞대결 가운데 5번 2위에 올랐다. 1번은 3위, 1번은 7위였다.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에서는 37초70을 기록해 고다이라(37초39)에게 0.31초 차 뒤져 은메달을 땄다.

이상화에게 긍정적인 신호 두 번째는 기록이다. 평창 올림픽 여자 500m에 출전한 선수 32명 가운데 시즌 최고 기록이 36초대인 선수는 이상화(36초 71)와 고다이라(36초 50) 뿐이었다. 한일 양국 언론은 물론이고 ISU도 이번 대회 여자 500m를 '한일전'으로 요약했다. 이상화와 고다이라의 아마도 마지막 올림픽 맞대결이 될 가능성이 컸기에 극적인 긴장감도 배가 됐다.

14조로 뛴 고다이라는 100m를 10초 26에 끊었다. 나머지 400m는 26초 68초에 달렸다. 세계 신기록이 나왔다. 바로 뒤에 달린 이상화의 스타트가 더 좋았다. 10초 20, 스스로도 놀랄 만큼 빠른 속도였다. 그런데 '너무' 빨랐다. 이상화는 스스로 "세계 신기록을 세울 때의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빠른 속도를 너무 오랜만에 느낀 나머지 마지막 코너에서 실수로 이어졌다"고 돌아봤다. 

▲ 이상화(왼쪽)와 고다이라 나오 ⓒ 연합뉴스

이제 당분간 경쟁은 없다. 두 사람은 경기를 마치고 다시 친구로 돌아왔다. 나이는 1986년생 고다이라가 1989년생 이상화보다 많지만 서로를 존경하고 있다. 고다이라는 이상화가 늘 최고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을 짊어지고 있다는 걸 알기에 존경했다. 이상화는 고다이라의 500m뿐만 아니라 1,000m와 1,500m도 쉬지 않는 열정을 지지했다. 

시상식 후 기자회견에서는 두 사람의 우정이 담긴 일화도 들을 수 있었다. 

"이상화는 항상 친절하다. 3년 전에 제가 서울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1위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네덜란드에 가야했다. 그때 이상화가 택시비를 선뜻 내줬다. 제가 이겼기 때문에 기분이 안 좋읗 수 있는데 항상 친절하게 저를 도와줬다. 택시도 잡아주고 비용도 내줬다. 물론 스케이터로서도 훌륭한 선수고 좋은 친구다." 고다이라의 얘기다. 

"절친한 사이였고 한국에도 초대할 만큼 사이가 좋았다. 그런 선수가 한국까지 왔는데 챙겨줄 수 밖에 없었다. 예전에 같이 버스를 기다리며 사진을 찍다가 고다이라가 '평창에서 네가 1등하고 내가 2등하면 좋겠다' 이런 얘길 하길래 반대로 '내가 2등하고 네가 1등 하라'고 응원했다. 오늘(18일) 정말 그렇게 됐다. 일본에 갈 때마다 제가 좋아하는 걸 선물해준다. 일본 식품을 좋아하는데 고다이라도 제가 좋아하는 걸 많이 선물해줬다. 그런 추억이 많다. 남다른 애정이 있다." 이번에는 이상화의 추억담이다. 

이상화와 고다이라가 언제까지 선수로 만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 다시 볼 수 있느냐는 말에 고다이라는 한국말로 "몰라요"라고 답했다. 그리고는 민망한 듯 웃었다. 이상화는 "작년에 고다이라에게 베이징 갈거냐고 물어보니 '네가 하면 하겠다'고 했다. 그땐 재미로 넘겼다.(저는) 아직 생각해본 적 없다. 일단 제대로 쉬고싶다"고 했다. 두 선수의 마음은 아직 길을 정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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