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김태륭 해설위원] 지난 24일 ‘2015 하나은행 FA컵’ 16강 경기가 열렸다. FA컵은 프로와 아마추어의 대결이 성사되기에 항상 색다른 재미가 있다. 대학팀 중 유일하게 16강까지 진출한 영남대와 FA컵 디펜딩 챔피언 성남FC 의 경기를 보기 위해 성남을 찾았다. 양팀은 지난 해 FA컵 8강에서 맞대결을 펼쳤고 성남이 2-1로 승리했었다. 그로부터 거의 일년이 지났다. 성남은 김학범 감독이 지난 시즌 후반기에 팀을 맡은 이후 2014 FA컵 챔피언이 되며 경쟁력 있고 견고한 팀으로 거듭났다. 특히 올시즌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시민구단 최초로 16강에 진출하며 중국의 거인 광저우 에버그란데를 곤란하게 하기도 했다.

2013년 비수도권 팀 최초로 U리그 정상에 오른 영남대는 그동안 꾸준함을 유지했고 지난 해에 이어 내셔널리그 팀을 꺾고 16강에 진출했다. 손준호, 김승대(포항), 이명주(알아인)가 영남대 유니폼을 입고 활약했던 몇 해 전 보다 개인의 특별함은 보이지 않았지만, 오히려 더욱 특별해진 팀을 앞세워 2년 연속 FA컵 16강에 오르는 저력을 보였다. 

◆영남대 드레싱룸에 들어가다

13년 전, 고려대학교 선수로 활동할 때 김병수 감독(당시 고려대 코치)에게 지도를 받았다. 단 한 시즌이었지만 선수생활 동안 국내외에서 경험한 여러 지도자 중 김병수 감독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 김병수 감독은 특별하다. 지도자와 선수의 관계로 그를 경험한 여러 선수를 만났지만 지금까지 단 한 명도 김병수 감독에게 매료되지 않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김병수 감독은 선수의 마음을 훔친다. 그리고 감동을 전달한다. 과거 놀기 좋아하던 대학 시절에도 최대한 잠을 빨리 자고 싶었다. 그래야만 빨리 내일이 오고 ‘병수 쌤’(김병수 감독)과 훈련을 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병수 쌤’ 은 ‘명언 제조기’였다. 가끔 진행하는 팀 미팅은 간결하고 직설적이었지만 듣는 우리들의 마음에는 울림이 있었다. 듣다보면 자연스레 ‘내가 왜 축구를 해야하는지’ , ‘어떻게 생활해야 좋은 선수가 될수 있는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가슴 속에서 무엇인가 끓어오르며 운동 욕구가 강하게 생기곤 했다.
 
한번은 자체 경기 진행 중에 누가 봐도 왼쪽으로 해야 하는 상황인데 오른쪽으로 패스를 했다. 플레이의 흐름이 끊겼지만 그때 들은 말은 “태륭, 거기도 나쁘지 않았어. 하지만 다음 번에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반대쪽도 생각해봐”였다.
 
‘병수 쌤’은 작은 작전판과 선수 역할을 대신하는 23개의 자석 알맹이, 그리고 커피와 담배만 있으면 적어도 반나절 동안 작전판만 바라보며 집중할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가끔은 코치방에 노크를 하고 들어가도 사람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그 때 ‘병수 쌤’의 표정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놀이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그 때의 느낌을 다시 받고 싶어서, 그리고 다시 보고 싶어서 영남대 드레싱룸에서 성남FC-영남대의 경기를 함께 했다. 

◆‘차분하고 또 차분하다.’ 예상과 다른 드레싱룸 분위기

김병수 감독이 경기 전에 말한 것처럼 성남과 영남대의 대결은 버스와 경차의 대결과 같았다. 영남대의 열세는 당연한 것이었지만, 내심 작년 8강전 패배에 대한 아쉬움과 ‘이번에는 한번 해보자’와 같은 패기가 어우러지는 기합 넘치는 드레싱룸 분위기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반대로 영남대의 드레싱룸은 차분했다. 어린 선수들의 표정은 밝았고 김병수 감독이 팀 미팅을 시작하기 전까지 서로 자유롭게 농담을 주고 받았다. 보통 약팀이 강팀과 경기하면 약팀의 드레싱룸은 약간 오버할 정도로 기합이 넘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영남대의 차분함은 당혹스러웠다. 김병수 감독은 성남전을 준비하며 세 가지 플랜을 준비했다. 지난 해 맞대결 때와 달리, 자신의 철학을 고집했고 결과적으로 그것이 적중하며 성남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경기 전 팀 미팅이 시작됐고 김병수 감독은 간결하지만 명확하게 선수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해야 할 역할을 설명해 나갔다. 사실 설명보다는 서로 공유하고 있는 부분을 확인하는 느낌이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상대인 성남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의 언급도 없었다. 김병수 감독은 철저히 ‘자신들의 플레이’에 포커스를 뒀다. 그렇게 팀 미팅과 워밍업을 마치고 전 선수들이 손을 잡은 후 “ONE! TEAM!"을 외치며 선수들은 출전을 위해 드레싱룸을 나섰다.




◆하프타임, 선수들의 마음에 불을 지르다

전반 초반, 영남대는 한 차례 좋은 장면으로 슈팅까지 기록했지만 이내 성남이 경기의 주도권을 잡았다. 영남대는 몇 차례 위기를 잘 넘겼지만 전반 38분 손민재 발에 맞은 볼이 자책골로 연결되며 0-1로 뒤진 채 전반을 마쳤다. 한 두 단계 높은 카테고리의 팀과 경기를 할 때는 항상 작은 차이가 플레이에 많은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같은 카데고리의 팀과 경기를 할 때 성공했던 드리블 돌파가 높은 카테고리 팀과의 경기 때는 잘 되지 않는다. 정확히 얘기하면 될 것 같은데 마지막에 살짝 걸린다. 패스도 이 정도 각도면 통과 될 것 같은데 막상 시도하면 마지막 순간에 상대 발 끝에 걸리며 차단된다. 아마 이런 부분들이 전반전 영남대 선수들을 힘들게 했을 것이다. 전반이 끝나고 드레싱룸에는 선수들이 먼저 들어왔다. 한골 뒤지고 있었지만 오히려 분위기는 긍정적이었다. 선수들은 전반전 경기에 대해 의견을 주고 받았고 “해볼 만 하다”라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곧이어 김현준 코치와 대화를 마친 김병수 감독이 드레싱룸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는 바로 전반전 자신의 실수를 계속해서 마음에 담아 둔 주장 손민재 에게 강한 논조로 말했다.

"문제는 안하려고 하는게 문제란 말이야!"

"(아무리 상대가 강하다 한들) 죽어???"

"어차피 한 골은 먹을 수 있어, 잊어버려 지금부터"

"오케이, 괜찮아 다시해! 할수있어!"

드레싱룸에 강한 집중력이 느껴졌다. 김병수 감독은 다시 선수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다. 후반전에 선수들이 해야 할 일을 설명했고, 강력한 어조로 같이 싸울 것을 주문했다.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전달은 선수들을 집중시켰고 자신감을 회복시켰다. 때로는 선수들의 의견을 물으며 상황을 공유하기도 했다. 조용히 보고 있는 내 가슴까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 후반전, 시스템 자동화의 핵심 ‘스스로 알고 플레이 하는 것’

영남대의 후반전은 대단했다. 프레스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한 관계자는 ‘후반에는 성남대학교 대 영남FC네’라며 웃음을 짓기도 했다. 후반 15분 주한성이 득점하며 경기는 1-1 원점으로 돌아갔다. 다급해진 성남은 황의조와 김두현, 정선호를 투입했지만 영남대의 리듬은 쉽게 끊기지 않았다. 선수와 지도자 간에 신뢰가 형성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 중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지도자의 지시를 선수가 실행했을 때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나 또한 김병수 감독에게 지도받을 때 느낀 것이 바로 그런 부분이였다. “이렇게 하면 어때”라고 했을 때 그것을 수용하고 그렇게 했더니 정말 효과가 있었다. 그것을 평범한 한 선수가 느끼고 나아가 팀 구성원 전체가 느끼게 되었을  때 팀은 특별해졌다.
 
이 느낌을 경험한 영남대 출신, 포항의 신진호는 김병수 감독을 ‘하늘에서 우리를 구해주러 내려온 천사’라고 표현했다. 후반전 영남대는 김병수 감독이 원하던 대로 ‘자동화’되어 있었다. 선수들은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 알면서 수행했고 프로팀을 상대로 대단히 훌륭한 45분을 진행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체력적인 한계가 발생했고 김병수 감독은 연장전에 돌입할 경우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기에 후반전 마지막까지 힘을 짜냈지만 추가 득점은 없었다. 결국 연장 전반 2분만에 터진 성남 황의조의 골로 경기는 2-1 성남의 승리로 마무리 되었다.

◆ ‘철학’을 버리는 순간, 이미 생명은 끝난 것이다

영남대의 2015년 FA컵은 16강에서 마무리됐다. 경기 후 만난 김병수 감독은 차분했다. 두 차례 실점이 모두 실책으로 나온 것이 아쉽지만 준비한 대로 선수들이 경기를 잘 진행한 것에 의미를 두었다. 경기 다음날 점심 식사를 함께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작년 FA컵 경기를 마친 다음 날에도 김병수 감독님과 점심 식사를 함께 했는데 술 한잔이 오고 간 것이 결국 9시간의 릴레이 축구 이야기로 이어졌던 적이 있다. 다행일 수도 아쉬울 수도 있지만 이번에는 술 없이 축구 이야기를 하며 3시간 만에 자리가 마무리 되었다. 

이번에도 많은 이야기를 ‘병수 쌤’과 함께 할수 있어 기뻤다. 축구 해설을 하다보면 가끔 정체되거나 시야가 막히는 시기가 발생한다. 그럴 때는 항상 '리프레시(Refresh)'가 필요한데 현장 중계를 가거나, 짧게라도 유럽 축구여행을 훌쩍 떠나거나, ‘병수 쌤’을 만나서 축구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나만의 방법이다.
 
몇 년 전, 김병수 감독이 P급 라이센스(프로 레벨 지도자 자격증) 강습회에 참가했을때, FIFA 강사로 활동 중인 영국의 리차드 베이트가 주강사를 맡았었다. 베이트는 경력도 많고 국제적으로 유명한 강사인데 강습회 기간 동안 김병수 감독에 대한 극찬을 연발했다고 한다. 김병수 감독은 전략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며칠 밤을 세면서 구상에 몰두한다. 하지만 훈련 때 그 효과가 기대치에 미치지 않으면 즉시 수정한다. 지난 며칠간의 노력에 대해 결코 미련을 두지 않는다. ‘그건 결국 좋은 전략이 아니다’ 라는 확신을 얻을수 있기 때문이다.
 
‘닥공’, ‘스틸타카’, ‘무공해축구’, ‘늑대축구’ 등 최근 K리그에는 다양한 스타일의 축구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감독의 축구 철학이 고스란히 팀 스타일 속에 녹아 있는 팀은 드물다. 

이미 어느 정도 알려진 이야기지만 김병수 감독은 포항 스틸러스 코치와 기술부장을 거쳐 2008년 영남대학교 감독에 부임했다. 당시 영남대 축구부는 해체설이 있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못했다. 18명의 선수만이 팀에 남아있었고 그 중 100kg이 넘는 선수도 몇 명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영남대는 2010년 춘계대학연맹전 우승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추계대학연맹전, U리그 권역우승, U리그 챔피언십 우승 등 대학 카테고리에 속한 팀이 우승 할수 있는 모든 타이틀을 따냈다. 최근 5시즌 간의 성적만 놓고 본다면 의심의 여지 없이 대학 랭킹 1위는 단연 영남대학교다.
 
요즘 우리 사회는 어떤 자리가 발생하면 유력한 후보자들에 대한 검증을 한다. 그리고 후보자의 다양한 부분을 꼼꼼히 확인하며 적임자를 선정한다. 김병수 감독에게 이제 대학무대는 비좁게 느껴진다. 그에 대한 검증은 영남대학교의 ‘동화같은 이야기’로 충분할 듯하다.

손흥민의 소속팀은 레버쿠젠의 로저 슈미트 감독도 2000년대 중반에는 지역 6부리그의 감독이었다. 슈미트 감독은 계속해서 검증을 받았고 결국 실력으로 지금의 위치에 섰다. 40대 감독이 많아진 K리그 무대는 이제 감독들이 철저히 검증받고 평가 받는 무대가 되었다. 많은 축구팬들도 기대처럼 나 또한 K리그 팀의 감독, 김병수를 보고 싶다.

[영상] 영남대 드레싱룸 ⓒ SPOTV NEWS 김태륭, 배정호
[사진] 영남대 김병수 감독 ⓒ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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