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레와 두 번째 경기에 호출 받지 못한 이승우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수원, 한준 기자] 전반전 도중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본 이승우의 얼굴이 전광판에 비춰졌을 때, 경기 진행 상황과 관계없이 함성이 쏟아졌다. 후반전에 몸을 풀던 이승우가 클로즈업되자 또 한번 함성이 나왔다. 하지만 이승우는 11일 밤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칠레와 친선경기에 출격 명령을 받지 못했다.

이승우는 대표팀의 확고부동한 주전이 아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예비 명단을 통해 처음 뽑혔고, 대회 전 평가전을 통해 데뷔했다. 본선 엔트리에 들어 두 경기를 교체로 뛰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는 금메달을 따기까지 7경기 중 6경기를 뛰었는데 그 중 선발 출전은 두 차례뿐이었다. 

하지만, 이승우가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 이어 벤투호 1기에서도 등번호 10번을 부여 받은 점은가볍게 볼 수 없다. 10번 유형의 선수가 없었다는 이유가 달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주어지는 번호는 아니다. 이승우에겐 10번에게 기대하는 한방과 스타성이 있다. 아시안게임 결승전 한일전에 결과로 입증했다.

이승우는 오픈트레이닝데이와 코스타리카, 칠레전 두 차례 관중 반응이 가장 뜨거운 선수 중 한 명이었다. 대표팀 내 위상과 별개로 주장 손흥민, 베테랑 기성용과 비슷한 수준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유부남인 기성용보다, 20대 후반을 향하는 손흥민보다 10대 여성 팬의 수는 더 많다. 물론 대표팀의 출전 기회가 인기순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칠레전 후 기자회견 마지막 질문은 “이승우가 투입되지 않은 이유”였다. 이승우가 당연히 출전해야 하는 수준에 도달한 선수는 아니지만, 많은 팬들이 궁금해 할 질문이기도 했다. 벤투 감독은 “전술적 판단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마지막 교체 상황에서 이용이 조금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 카드를 썼다. 특별한 사유는 없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 칠레전 포진도 ⓒ김종래 디자이너


◆ 전반전 홍철 부상, 후반전 이용의 컨디션으로 두 장의 교체 카드를 허비했다

0-0의 팽팽한 균형이 이어진 칠레전. 한국의 후방 빌드업을 괴롭히던 아르투로 비달이 후반 29분 교체아웃되면서 한국의 플레이에 숨통이 트였다. 그에 앞서 벤투 감독은 안 풀리던 공격을 강화하기 위해 후반전에 지동원, 이재성, 황인범, 문선민을 차례로 투입했다. 이승우에게 기회가 돌아가지 않았다. 여기에는 어쩔 수 없는 이유도 있었다.

친선 경기에는 6장의 교체 카드를 쓸 수 있다. 벤투 감독은 전반 30분 홍철이 부상을 당해 윤석영을 투입해야 했다. 후반 44분 이용을 빼고 김문환을 투입한 것은 이용의 컨디션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좌우 풀백을 전술 외적 이유로 교체했기 때문에 이승우에게 기회가 주어지기 어려웠다.

◆ 칠레의 전략에 말려든 한국, 후반전에 척추 라인이 전면 교체됐다

또 하나는 칠레전의 흐름과 칠레의 경기력 때문이다. 칠레전에 전술적 교체가 선행된 포지션은 원톱, 공격형 미드필더, 측면 미드필더다. 

아시안게임 득점왕을 차지한 공격수 황의조는 칠레 수비를 상대로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다. 이는 한국의 후방 빌드업이 원활하지 않고, 칠레의 수비 조직력이 워낙 뛰어났기에 황의조가 ‘피니셔’로 장점을 발휘할 상황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후반 13분 만에 이뤄진 첫 전술적 교체로 지동원이 들어간 이후 전방과 측면을 오가며 공격진의 움직임이 더 활발해졌다. 칠레 수비의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시점과 맞물리기도 하지만, 지동원은 코스타리카전과 마찬가지로 벤투 감독이 원하는 전방위적 움직임과 연계 플레이에서 더 안정적인 플레이를 했다. 

후반 19분 두 번째 교체는 공격형 미드필더 남태희를 빼고 이재성을 투입한 것이다. 이재성은 코스타리카전에 오른쪽 날개로 뛰었지만 칠레전에는 공격형 미드필더 포지션에 투입됐다. 황인범이 들어온 뒤에 다시 측면으로 이동했으나 이 자리에서 보다 과감한 전방 압박과 슈팅 시도로 답보 상태에 있던 2선 공격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공격형 미드필더는 이재성이 가장 선호하는 포지션이기도 하다. 이재성은 측면에서 뛴 코스타리카전도 잘했지만, 칠레전에 중앙 2선에서도 빼어난 기량을 펼쳤다.

▲ 한국의 중앙 플레이가 실종되자 황의조도 장점을 발휘하지 못했다 ⓒ곽혜미 기자


코스타리카전에 잘했던 남태희가 침묵하고, 아시안게임에서 활약으로 원톱 경쟁에서 지동원에 앞설 것으로 예상된 황의조의 고전은 한국의 강점, 벤투 체제의 스타일을 분석하고 준비한 레이날도 루에다 감독의 전술 준비 때문이기도 하다. 이날 칠레는 좌우 측면을 넓혀 간견을 벌려 놓고 경기를 하며 한국이 중앙 공격을 활용하기 어렵게 했다.

칠레의 기본전형은 다이아몬드형 4-4-2 포메이션이었다. 디에고 루비오와 안젤로 사갈이 투톱, 아르투로 비달이 공격형 미드필더로 배치됐다. 가리 메델이 포백 앞에 서고 디에고 발데스와 차를레스 아랑기스가 인사이드 하프로 섰다. 실제 경기가 진행되니 투톱은 사실상 좌우 윙어처럼 뛰었다. 사이드라인으로 벌려 한국의 중원 유기성을 떨어트렸다.

윙어 영역으로 벌린 투톱의 근거리에 좌우 풀백이 전진했다. 벤투 감독 부임 후 한국도 풀백 위치를 높여 점유하고, 속도감 있는 경기를 했는데 칠레의 알보르노스와 이슬라가 더 높이 올라왔다. 그러면 메델이 두 센터백 사이로 내려가 수비를 커버하고, 빌드업도 했다. 벌린 두 윙어 사이 전방 공간으로는 비달이 전진했다. 발데스와 아랑기스는 비달의 뒤와 메델의 앞을 적절히 커버했다. 

한국의 간격을 벌리기 위해 칠레의 간격도 벌어졌고, 그로 인해 칠레도 한국에 역습 공격 기회를 여러 번 내줬다. 하지만 칠레가 비달을 중심으로 한 실상 스리톱의 전방 압박, 두 풀백과 최대 세 명이 달려들어 중원으로 전개할 패스 공간을 차단한 압박 그물을 형성하자 한국의 경기력이 흔들렸다. 후방 빌드업이 길을 잃으면서 골키퍼 김진현과 그에게 공을 받은 수비수들이 돌아서지 못하고 어정쩡한 패스를 하다 위기를 맞았다.

한국이 안정감을 잃으면서 칠레는 경기 리듬에 적응했고, 전방 압박 이후 수비 전환 과정의 유기성이 회복됐다. 강하게 전방에서 압박하고, 빠르게 한국 역습을 지연시키며 수비 전열을 정비한 칠레의 조직력과 체력, 포지셔닝의 영민함은 놀라웠다. 칠레는 팀으로 강했는데, 개인 능력과 투쟁심도 수준급이었다. 

칠레도 루에다 감독 체제로 새로운 전술과 전형을 시도 중이지만 본래 가진 성향은 유지되고 있다.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과 호르헤 삼파올리 감독이 3-4-3, 3-5-2를 기반으로 펼친 전방 압박과 속공 기조가 몸에 밴 선수들이 루에다 감독의 4-1-2-1-2 포메이션에 빠르게 적응했다. 벤투 감독도 “칠레가 우수했다”며 “지난 수년간 감독이 바뀌어도 일정 수준을 유지한 팀”이라며 칠레 만의 스타일이 정착된 점을 짚었다. 

▲ 이재성이 투입되자 한국 중원에 숨통이 트였다 ⓒ곽혜미 기자


칠레는 라인이 높았고, 측면에 4명의 선수가 자리하면서 한국의 2선 중앙 공간을 헐겁게 만들었다. 이 영역에 비달이나 발데스, 아랑기스 등이 솔로 플레이로 공을 지키고 운반하는 데 걸출한 모습을 보였고, 한국 선수들과 1대1 내지 2대2 상황에서 우위를 점했다. 그러면서 척추라인이 힘을 받지 못했다. 정우영과 기성용이 중원 장악에 실패하면서 남태희와 황의조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지동원이 투입되어 측면으로 빠질 때 칠레 풀백이 부담을 받았다. 이재성이 들어와 칠레 센터백을 위협하자 칠레 미드필더도 따라 내려와야 했다. 두 교체가 칠레의 기세를 꺾는 데 효과를 발휘했다. 후반 29분 벤투 감독은 비달이 나가자 정우영까지 빼고 황인범을 투입해 중앙 지역의 패스 밀도를 높였다. 후반 41분에는 지친 황희찬 대신 문선민 투입을 택했다. 측면에서 저돌적으로 돌파하는 황희찬의 역할을 대신하기에 이승우보다 적합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 거칠고 영리하며 조직적인 칠레 수비, 마지막에는 정통 윙어가 필요했다

이승우가 교체 카드로 선택받지 못한 것은 앞서 설명한대로 홍철, 이용이 몸 상태에 문제를 겪어 두 장을 허비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선민이 먼저 선택된 것은 칠레가 몸싸움에 강했고, 한국 선수들의 개인 돌파 상황에서 어깨 싸움과 포지셔닝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칠레 수비를 흔들기에는 이승우보다 문선민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칠레 수비수들은 이승우와 같은 좁은 공간을 공략하고 커트인하는 선수들을 막는 것이 능숙하다. 보다 단순하고 강하게 때리고 들어와 지친 칠레의 체력 상태를 괴롭힐 수 있는 선수가 더 효과적이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특히 칠레는 두 센터백을 보호하는 메델이 측면에서 중앙으로 진입하거나 2선에서 배후로 빠져드는 공격수를 적절히 커버해 아예 측면 뒤를 확실히 파고들어 크로스할 수 있는 윙어형 선수가 더 효과적일 수 있었다. 이승우는 커트인을 즐기는 선수인데, 이미 손흥민, 지동원, 이재성, 황인범 등이 중앙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동선이 중복될 수 있는 카드이기도 했다.

이용이 근육이 불편했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도 활기차게 측면 공격을 할 수 있는 김문환 카드가 우선 시 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정리하면 칠레전의 경기 양상과 칠레의 강약점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이승우가 우선 순위에서 밀린 것이다. 

▲ 이승우는 한국의 10번이지만 원점에서 주전 경쟁을 벌여야 한다. ⓒ곽혜미 기자


◆ 벤투호 경쟁은 시작, 원점에서 도전하는 ‘10번’ 이승우

칠레전에 교체 기회를 받지 못했다고 벤투호 경쟁에서 이승우가 뒤로 밀렸다고 판단하기는 이르다. 

손흥민의 존재감이 확고한 가운데, 지동원, 황희찬, 남태희, 이재성, 황인범, 문선민 등이 경쟁력을 검증 받은 상황 속에 이승우가 성인 대표팀에 자신의 입지를 만들고 등번호 10번을 유지하기 위해선 앞으로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지금은 부상 중인 권창훈도 2019년에는 돌아온다. 

벤투 감독은 선임 후 촉박한 준비 기간 끝에 1기 멤버를 짰다. 본인의 의중이 확실히 반영된 명단이 아니다. 10월 2기 명단에는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이번 명단은 우리가 사실 월드컵에 한국 대표팀이 치른 3경기 및 월드컵 예선 10경기, 추가적으로 본 경기를 통해 확정한 명단이다. 여기에 추가로 일부 기술 파트에서 조언을 받아 선발한 선수다. 이후 명단에 대해선 내가 마지막 결정권 갖게 될 것이다. 23명일지 24명, 25명이 될지는 모르겠다. 10월까지는 시간이 있다. 그 사이에 많은 경기가 있다. 우리가 충분히 경기를 많이 보고 분석해서 누가 어떻게 선발될지 임박해서 결정할 예정이다.”

지지 않았고, 어느 정도 성취를 거뒀으며,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이라는 큰 경험치를 쌓은 1기 선수들에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누구도 안심할 수 없다. 벤투호 내부 경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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