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화 경기를 보다가 눈물을 흘려 화제가 됐던 '한화 눈물녀' 민효정씨가 지난 2013년 5월 19일 시구를 했다. ⓒ한화 이글스

▲ 함께 눈물을 흘렸던 또 다른 '한화 눈물녀' 홍미해씨는 같은 날 시타를 했다. ⓒ한화 이글스

2007년 10월 17일 한밭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 두산 베어스의 플레이오프 3차전. 2회초에 강판되던 에이스 류현진의 뒷모습이 11년전 한화의 마지막 가을야구였다. 그 누가 상상했을까. 그 후로 10년이나 남의 잔치에 박수만 치고 있을 줄을. 

아무리 애를 써도 닿을 듯 닿지 않는 가을야구라는 열매를 향해 안간힘을 쓰는 동안, 내로라 하는 감독들은 이글스를 일으켜 세우지 못하고 물러났고, 에이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으며, 풋풋하던 신인들은 기량을 펴보지도 못한 채 늙어갔다. 개막 13연패라는 유례없는 기록과 각종 야구 게시판에서 조롱거리가 되는 우스꽝스러운 플레이는 덤이었고, 그 와중에 1점만 빼도 “나는 행복합니다~”를 외치며 울부짖는 한화 팬들은 보살팬이라 불리며 기이한 팬덤의 대명사가 되었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하면서 야구를 봐야 하는 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수없이 반복하지만, 매일 저녁 6시 30분이 되면 또다시 TV 앞에 앉아 기도하는 심정으로 야구를 보고, 시즌 마지막 날이면 주황색 연어초밥처럼 엎드려 절하는 선수들의 모습에 울지도 웃지도 못하며 쓸쓸히 박수친 세월이 자그만치 10년이다.

당연히 올해도 마찬가지일 줄 알았다. 이제 막 부임한 초보감독에 이렇다 할 스타플레이어도, 대형 FA선수나 몸값이 비싼 외국인 선수도 없었으며 개막 전부터 대놓고 리빌딩에 초점을 맞추고 시작한 시즌이었으니 성적은 언감생심. 그저 단 하나, 그 시절 우리의 영웅들이 감독으로, 코치로 돌아와 그라운드 한켠에 서 있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하지만 한화 이글스는 시즌초부터 상상외로 높이 날아오르더니 도무지 내려올 줄을 몰랐다. 팀 평균 자책점 순위 5위(5.46), 팀 타율 순위 8위(0.275)라는 성적은 어떻게 뜯어보아도 내놓을 만한 것이 못되건만, 신기하리만치 자주 이겼다. 평균 자책점 1위(4.28)의 불펜이 어떻게든 상대 타선을 틀어막아주면, 타자들은 기어코 뒷심을 발휘해 딱 이길 만큼 점수를 뽑았다. 

후반기에 잠시 주춤할 땐 드디어 내려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이제 그들은 해일처럼 몰려가다가도 아주 조그만 둔덕 앞에 우르르 주저앉던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떨어질 듯 하다가도 끈끈하게 버티며 베테랑은 제몫을 해주었고 신인은 기량을 마음껏 뽐내며, 위기가 닥칠 때마다 이른바 미친 선수가 꼭 한명씩 나와줬다. 

그들을 아우르는 이글스의 레전드 감독과 코칭스태프가 있었으며 10년을 참아온 보살팬들은 창단 이래 처음으로 70만 관중을 돌파하며 열정으로 화답했다. 그렇게 2018년의 한화 이글스는 선수단과 팬이 힘을 합해, 3위라는 상상도 할수 없었던 성적표를 받아내며 판을 흔들다 못해 숫제 뒤집어버렸다.

10년이 지나는 동안 수천 번도 더 생각했다. 가을 야구를 하게 된다면 대체 어떤 기분일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나중에는 그마저도 속이 쓰려 애써 가슴 한구석에 묻어두었지만 그래도 때때로 궁금했다. 어쩌면 왈칵 눈물을 흘릴 것 같기도 하고 또 어쩌면 생각보다 담담할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그 순간이 오자 가장 먼저 생각난 건 10년 전 가을, 류현진이 강판되던 모습이었다. 만약 그때, 앞으로 10년이나 가을야구를 못하리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난 도무지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하고 이 팀에게서 등을 돌렸을까? 아니면 기다림의 끝이 정해져 있기에 오히려 견디기 쉬웠을까...

수없이 찢기고 망가지는 이글스를 보는 동안, 내가 그토록 사랑하던 이글스는 이제 내 젊음과 더불어 어디론가 가버린 줄 알았다. 나의 소녀 시절을 으쓱하게 해주었던, 누구보다 강했던 그 시절의 이글스.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이 모자라 더욱 매력적이었던 나의 팀을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고 추억하며 헤맨 그 팀은 여전히 내 곁에 있었고 조금 오래 걸리긴 했지만 다시 찬란하게 내게 돌아와 10년 동안 내가 흘린 눈물을 닦아주고 내가 겪은 좌절과 패배의식을 위로해주었다. 

그래, 이제야 알겠다. 10년이 대수랴. 아마도 난 기다림의 끝이 10년이 아니라 행여 100년이었다 해도, 한자리에 꼼짝없이 버티고 서서 나의 이글스가 돌아와 주기를 기다렸으리라. 그리고 이 가을, 두근대는 마음으로 이글스가 좀 더 높이 날아오르기를 기대한다. 10년을 기다렸는데 그까짓 한달 쯤이야!

구율화
변호사 / 언론중재위원회 기획팀장 / 한화 이글스 열혈 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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