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T 위즈 이강철 감독이 SPOTV 스포츠타임과 인터뷰를 하면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희재 기자
다시 시작됐다. KBO리그 각 구단 선수들이 스프링캠프지로 속속 떠나면서 2019시즌이 벌써부터 꿈틀거리고 있다. 특히 올 시즌 10개 구단 감독 중에 4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으면서 판도가 어떻게 변할지 벌써부터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그 중 감독 경험이 없는 완전한 초보 감독은 2명이다. NC 이동욱(45) 감독과 KT 이강철(53) 감독이다. 이강철 감독은 1966년생으로 우리나이 54세에 늦깎이 감독 데뷔를 한다. 마법사 군단을 이끌 새 사령탑으로 변신한 이강철 감독은 SPOTV 스포츠타임 인터뷰에서 레전드 투수 시절과 감독이 된 상황에 대해 먼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1. 잠수함의 전설

운동선수답지 않은 잘 생긴 외모와 늘씬한 몸매. 잠수함 투수로서 폼도 예뻤다. 버들가지처럼 낭창낭창한 투구폼에서 나오는 변화무쌍한 공으로 전설을 만들어 갔다. 1989년 KBO리그에 데뷔해 2005년을 끝으로 은퇴할 때까지 16년간 통산 152승(112패, 53세이브, 33홀드, 평균자책점 3.29)을 기록했다. 210승의 송진우, 161승의 정민철에 이어 역대 다승 3위다. 4위는 국보투수 선동열로 146승이다. 이 감독은 "나까지만 알고, 내 밑으로는 모르고 있다"고 농담을 던지더니 "후배들이 많이 따라와서 조만간 4위로 밀려날 것 같다"고 쑥스럽게 웃었다.

게다가 데뷔 첫해인 1989년부터 1998년까지 해태 유니폼을 입고 10년 연속 10승과 100탈삼진을 동시에 기록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KBO리그 유일한 주인공이다.

▲ KT 위즈 이강철 감독이 SPOTV 스포츠타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 만년 2인자?

업적에 비해 상복은 없었다. 한 번도 다승왕에 오르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늘 '2인자'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1992년 탈삼진왕에 오른 것이 유일한 개인 타이틀이었다. 1996년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한 것이 가장 빛난 훈장이었다. 데뷔 첫해 15승을 시작으로 16-15-18-10-12-10-10-11-15승을 올릴 때 웬만한 팀에서라면 에이스 대접을 받았겠지만, 해태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이 감독은 "내가 잘 할 때 해태 타이거즈에 선동열 전 대표팀 감독님이 계셨기 때문에 항상 뒤로 밀렸고, 선동열 감독님이 일본(주니치)에 가셨는데 내가 전성기가 지나면서 10승 언저리에서 놀았기 때문에 항상 두 번째 자리에 있었던 것 같다"며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통산기록에서도 대부분 2~3위에 걸쳐 있는 기록이 많다. 그런데 유일하게 1위를 차지한 기록이 있다. 사구(몸에 맞는 공)가 189개로 2위 임창용(152개)에 한참 앞서 있다. 이 감독은 "둘째 해부터 3년 연속 200이닝 이상 던졌고, 직구 승부는 오른쪽 타자 몸쪽으로 많이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면서 "내 공을 치기 위해서 타자들이 타석에서 (홈플레이트 쪽으로) 많이 붙었다. 나는 그래도 또 몸쪽으로 던지다보니 몸에 맞는 공이 많았다. 왼손타자는 커브 각이 컸기 때문에 치러 들어오다 맞는 일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내 공 맞고는 다들 고맙게 생각하고 나갔다. 다친 선수는 없었다"며 웃었다.

▲ 해태의 전설을 만든 이강철, 선동열, 이종범(왼쪽부터). ⓒ스포티비뉴스
#3. 징크스와 선동열

선수 시절 선발투수로 나가는 날엔 일어나면 꼭 이불을 깨끗이 정리를 하는 습관이 생겼다. 흔히 말하는 징크스였다. 그는 "깨끗이 하고 나가면 마음이 편했다. 이기면 (이불 정리를) 즐겁게 하기 시작하는데, 지는 날엔 ‘괜히 했다’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다시 또 하게 되더라. 그런 징크스는 안 만들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생기더라"고 말했다.

그는 선수 시절 침대 대신 온돌에서만 잠을 자며 몸관리를 했다. 팀 선배 선동열 때문에 생겨난 버릇이었다. 그는 "선동열 감독님하고 현역 시절 룸메이트를 7년 했는데, 선동열 감독님이 침대를 안 썼다. 그러다보니 나도 선수 끝날 때까지 온돌을 썼다"면서 "선수 끝나고 나서는 아내가 침대 쓰라고 해서 지금은 침대 쓰고 있다"고 일화를 설명했다.

▲ [스포티비뉴스=수원, 곽혜미 기자] KT wiz 제 3대 이강철 감독 취임식이 18일 오전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렸다. 이강철 감독이 모자를 쓰고 있다.
#4. 54세 '늦깎이' 감독 데뷔

지도자로서도 2인자였다. 선수부터 시작해 은퇴 후에도 지도자로서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려왔지만 나이 50이 넘어서도 감독 제의가 들어오지 않았다. 야구계에서는 늘 "언젠가는 감독을 할 인물"이라는 평가가 뒤따랐지만 후배들이 줄줄이 감독이 되는 상황에서도 그에게 기회가 오지 않았다. 넥섹 히어로즈 시절과 지난해 두산 시절 각각 염경엽 감독과 김태형 감독을 보좌하는 수석며 코치에 만족해야 했다. 선수시절에도, 지도자 시절에도 만년 2인자에 머무는 듯했다. 그러다 지난해 말 KT 사령탑에 오르게 됐다. 올해 우리나이 54세에 늦깎이 감독 데뷔를 하게 됐다. 그는 "솔직히 2018년에 감독이 안 되면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내 인생이 항상 두 번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마음을 비우고 있었다. '최고 수석코치가 누구냐?' 했을 때 '이강철이다'는 말이 나오게끔 거기에 집중하려고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그런데 KT 위즈에서 나를 선택을 해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웃었다. 비로소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 자신의 야구를 펼쳐나갈 기회를 만들었다.

#5. 외유내강 그리고 강철야구

이강철은 젊은 시절엔 꽃미남으로 '대니 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겉모습처럼 강함보다는 부드러움, 굳건함보다는 유연함이 잘 어울리는 성격이었다. 지도자로서도 온화한 성품을 바탕으로 한 소통능력을 갖춘 인물로 통했다. 그러나 승부욕만큼은 밀리지 않았고, 내면의 강직함으로 이 자리까지 왔다. 한마디로 ‘외유내강(外柔內剛)형 지도자’로 볼 수 있다.

이 감독은 "선수 때부터 외유내강형이라는 평가가 붙었다. 지금은 많이 늙었지만(웃음) 그때는 여리여리하게 생겼었다. 청춘은 갔지만 꽃중년으로 갔으면 좋겠다"며 웃더니 "지금까지 외유내강을 잘 유지하다 좋은 자리에 온 것 같다. 개인적으로 그 말을 좋게 생각한다"고 속내를 밝혔다.

어떤 감독이 되고 싶을까. 그는 "코치 때, 수석 때 해왔던 것을 토대로 준비해서 좀 더 디테일한 면을 코칭스태프와 상의하겠다. 스텝과 항상 머리를 맞대서 공통된 의견이 나오고, 결정은 내가 하는 걸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기대가 된다"고 말한 뒤 "올해는 우리 팀이 상위권으로 갈 수 있는 시스템이 정착되는 해로 삼고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오랜 기다림 끝에 온 기회. 그동안 쌓아온 내공으로 '강철야구'를 어떻게 펼쳐나갈지 궁금하다.

▲ KT 위즈 이강철 감독이 스포티비뉴스 이재국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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