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저스 레전드 돈 뉴컴이 2014년 7월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경기 전 시구를 하기 위해 마운드로 걸어가면서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스포티비뉴스=LA(미국 캘리포니아주), 양지웅 통신원] 올시즌 LA 다저스 선수 유니폼 오른쪽 소매를 보면 넘버 '36' 패치를 볼 수 있다. 더 자세히 보면 ‘NEWK’라고 번호 위에 써 있다. 'NEWK(뉴크)'는 사이영상 초대 수상자인 다저스 레전드 돈 뉴컴의 애칭이다.

다저스 구단은 지난 2월, 92세의 나이로 타계한 뉴컴을 기념하기 위해 올 시즌 모든 선수들의 유니폼에 '36뉴크' 패치를 새겨 넣었다. 특별한 시즌이 기대되는 모든 다저스 선수들은 올 시즌 내내 '뉴크'와 같이 하는 셈이다.

지난 2일 류현진은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다저스 동문회 게임 & 위켄드' 행사 때 돈 뉴컴의 아내인 캐런 크로너 뉴컴을 만나기도 했다. 당시 뉴컴의 아내는 류현진에게 "너무나 자랑스럽다"며 "남편이 살아서 봤어도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라며 격려한 뒤 포옹을 해줬다. 그러고는 돈 뉴컴이 생전에 자주 착용했던 넥타이 핀을 선물해주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세월은 흘러도 전설은 영원하다. 올 시즌 하늘에서 다저스 시즌을 같이 하는 뉴컴에 대해 알아본다.

◆사상 최초 신인왕-사이영상-MVP 동시 석권

뉴컴은 메이저리그(ML) 역사상 처음으로 기록되는 것이 많다. ML 신인상을 비롯해 사이영상, MVP를 석권한 역사상 최초의 투수다. 이 세 가지 상을 모두 받은 기록은 뉴컴과 저스틴 벌랜더만 갖고 있다.

뉴컴은 흑인 최초로 ML에 데뷔한 것으로 알려진 재키 로빈슨보다 더 먼저 브루클린 다저스와 계약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흑인리그 선수였던 뉴컴은 19세 나이로 1945년 다저스와 계약하고 다저스 산하 마이너리그 팀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과 백인이 같이 뛴 공식경기에 출전했다. 하지만 다저스는 2년 뒤 나이가 어린 뉴컴보다 성숙했던 28세 로빈슨을 선택했다. 그러면서 1947년 4월 15일 역사상 처음으로 ML 경기에 출전시킨 흑인선수로 로빈슨이 주인공이 됐다. 

뉴컴은 이로부터 2년 뒤인 1949년 빅리그에 데뷔했다. 첫 시즌 17승8패, 평균자책점 3.17을 기록한 뉴컴은 로빈슨과 같이 흑인 최초로 올스타에 선정된다. 그리고 당당히 흑인 최초로 1949년 ML 월드시리즈 선발로 등판했으며 내셔널리그 신인상을 수상했다. 다음해 뉴컴은 19승11패(3.70평균자책점)를 기록했고 1951년에는 성적을 20승9패(3.28평균자책점)로 향상시키며 ML 최다인 164삼진을 잡아냈다.

▲ 지난 2월 타계한 돈 뉴컴을 기념하기 위해 올 시즌 LA 다저스의 모든 선수들은 유니폼 오르쪽 소매에 뉴컴의 등번호와 애칭 '뉴크(Newk)'가 써있는 패치를 달고 뛴다.

◆한국전 참전 그리고 초대 사이영상 수상

한참 메이저리그에서 진가를 발휘하던 뉴컴은 1952년과 1953년, 2년 동안 미국 군인으로 한국전에 참전하며 선수생활에 공백기가 생겼다. 뉴컴은 항상 한국전 참전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며 "다시 기회가 오더라도 참전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2년 동안 한국전에 참전하며 군복무를 하고 메이저리그에 돌아온 뉴컴은 한동안 적응을 하지 못했다. 1954년 뉴컴의 시즌 성적은 9승8패로 부진했다. 그러나 뉴컴은 1955년 예전의 모습을 되찾는다. 시즌 전적 20승5패, 3.2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다저스의 첫 월드시리즈 챔피언 등극에 기여한다.

그 다음해인 1956년 뉴컴은 개인 최고의 시즌을 장식했다. 27승7패 3.06 평균자책점으로 시즌을 끝냈고 당시 ML 전체에서 최고의 투수 한명에게만 주어지는 사이영상 초대 수상자로 선정됐다. 또한 뉴컴은 같은해 내셔널리그 MVP에도 뽑혔다.

투수로 모든 영예를 누린 뉴컴은 타석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뉴컴은 우완투수였지만 좌타자였다. 1955년 월드시리즈에서 대타로 나서기도 한 뉴컴은 그해 타율 0.359(117타수42안타), 출루율 0.395, 장타율 0.632, OPS 1.028을 기록해 웬만한 타자보다 출중한 성적을 냈다. 10년간 통산 타율 0.271(878타수 238안타)에 15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뉴컴은 다저스가 1958년 LA로 이전한 뒤로는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하고 시즌 중반 신시내티로 트레이드 됐고 1960년 클리블랜드에서 ML 선수생활을 끝냈다. ML 10년간 투수 통산성적은 149승90패, 평균자책점 3.56.

하지만 뉴컴은 1962년에 주니치 드래건스와 계약하며 일본프로야구(NPB)에 진출한 첫 ML출신 선수가 된다. 뉴컴은 주니치에서 81경기에 출전했으며 1루수 또는 외야수로 나서 타율 0.262, 12홈런, 43타점을 기록했다. 투수로는 단 1경기에 출전했다.

◆흑인 차별과 싸운 용기

뉴컴이 존경받는 이유는 많다. 흑인을 대놓고 차별하던 시기에 선수생활은 한 뉴컴은 수많은 인종 차별과 심지어 살해 위협도 감수했다. 많은 것을 인내하고 지냈던 뉴컴은 1954년 어느날 더이상 참지 않고 다저스 매니저에게 따진다.

당시 다저스 백인 선수들은 원정 경기시 좋은 호텔에서 투숙한 반면 흑인 선수들은 냉방시설도 제대로 안 된 허름한 곳에서 따로 묵었다. 뉴컴은 "국가를 위해 전쟁터에도 갔다온 참전용사가 내 나라 내 팀에서 왜 차별대우를 받아야하느냐"며 부당함을 항의했던 것이다.

아주 사소한 일로 간주될 수 있으나 뉴컴의 항의 후 피부색에 상관없이 모든 다저스 선수들은 같은 호텔을 사용하게 된다. 그리고 몇년 안에 다른 팀과 다른 종목 스포츠도 같은 결정을 따라하게 된다.

▲ 류현진과 뉴컴의 부인 캐런이 지난 2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필라델피아 필리스 경기 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날 캐런 뉴컴은 류현진에게 뉴컴이 생전 착용했던 넥타이 핀을 선물해주기로 약속했다.

◆알코올 중독과 새로운 삶

뉴컴에게 좋은 모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뉴컴은 스스로 알코올 중독자였기에 선수생활을 제대로 못했다고 고백했다. 어려서 술을 배웠고 선수생활을 하면서 중독은 더욱 심해졌다. 선발로 등판하는 전날만 제외하고 매일 술을 마셨다고 한다. 은퇴 후 중독은 더더욱 심해졌고 결국 재산도 탕진하여 술 마실 돈을 마련하기 위해 1955년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도 저당 잡힌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당시 다저스 부사장 피터 오말리(다저스 전 구단주 월터 오말리의 아들이며 1979~1998년 다저스 구단주 역임)는 뉴컴의 우승반지와 시계 등을 전당포에서 찾아와 뉴컴을 사무실로 불렀다. 뉴컴에게 우승반지 등이 들어있는 봉투를 보여주며 술을 끊고 정상적인 삶을 되찾을 것을 권유했다. 밑바닥 인생을 살던 뉴컴은 오말리 앞에서 아기처럼 펑펑 울었다.

뉴컴은 1967년 ‘익명의 금주 모임(Alcoholics Anonymous)’을 통해 술을 끊고 1970년대부터는 다저스 구단 ‘커뮤니티 어페어(Community Affair)’ 디렉터로 일했다. 뉴컴은 술과 다른 약물 중독에 빠져 있는 이들을 돕기 위해 많은 캠페인을 펼쳤다. 약물 중독으로 고통받던 전 다저스 동료 모리 윌리스는 뉴컴이 자신을 돕기 위해 LA 곳곳을 찾아다니며 중독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었다며 뉴컴을 생명의 은인으로 여긴다.

뉴컴은 생전에 “많은 중독자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정상적인 삶의 궤도를 찾게 해준 것이 야구선수 생활보다 더 큰 의미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지난 14일은 살아있었다면 뉴컴의 93세 생일이었다. 항상 멋진 모자와 정장을 차려입고 몇십 년동안 같은 자리에서 격려와 응원을 하던 뉴컴은 더 이상 다저스타디움에서 볼 수 없지만 올 시즌 선수들 유니폼에 붙어있는 패치와 같이 하늘 나라에서 다저스와 같이 한다.

류현진이 한국전 참전용사이자 초대 사이영상 수상자인 다저스 선배 돈 뉴컴의 넥타이 핀 기운을 받아 올해 사이영상의 전통을 이어갈 수 있을지 기대된다.

스포티비뉴스=LA(미, 캘리포니아주) 양지웅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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