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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버드가 6순위, 조던은 3순위' 드래프트에서 행운 거머쥔 역대 팀들은?

맹봉주 기자 mbj@spotvnews.co.kr 2020년 06월 14일 일요일

▲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도 드래프트 1순위 출신 신인은 아니었다.
[스포티비뉴스=맹봉주 기자] 연봉 상한제인 샐리리캡이 있는 프로농구에서 신인 선수를 지명하는 드래프트는 가장 효과적인 전력 보강 수단이다. 대어급 신인을 지명할 경우 팀의 역사가 바뀌기도 한다.

드래프트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운'이다. 수많은 변수들이 매년 드래프트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먼저 확률 싸움에서 승리해야 보다 높은 순번을 지명 받을 수 있다. 또 드래프트 선수 풀에 따라 지명 순위 가치는 크게 달라진다. 찜해 놓은 선수를 앞선 팀이 데려가면 계획은 전면 수정된다. 때로는 드래프트에서 낮은 순위로 지명된 선수가 프로에 와서 대박을 터트리거나 반대로 상위권 지명자가 이름값을 못하고 은퇴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렇다면 NBA 역사상 드래프트에서 최고의 행운을 거머쥔 팀은 어디일까? 미국 매체 '클러치포인트'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1위부터 5위까지의 팀을 선정했다.

▲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는 2011년 트레이드로 얻은 드래프트 지명권이 4순위가 되는 행운을 얻었다. 클리블랜드는 4순위로 트리스탄 톰슨을 뽑았다. 2016년 파이널 우승의 나비효과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5위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2011년)

201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 지명권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게 있었다. 클리블랜드는 1순위로 듀크대에서 1학년만 마치고 드래프트를 신청한 천재 포인트가드 카이리 어빙(28, 191cm)을 지명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클리블랜드는 2010-11시즌 초반에 LA 클리퍼스와 트레이드를 한 바 있다. 클리퍼스로부터 2011년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받고 모 윌리엄스, 자마리오 문을 주는 내용이었다.

클리퍼스는 2010-11시즌 32승 50패로 서부 콘퍼런스 13위에 그쳤다. 클리블랜드로 넘어간 드래프트 지명권 가치는 올라갔다. 결국 클리퍼스의 지명권은 전체 4순위가 됐고 클리블랜드는 이를 통해 트리스탄 톰슨(29, 206cm)을 뽑는다.

1순위, 4순위로 뽑은 어빙과 톰슨은 빠르게 팀의 주축으로 성장했다. 어빙은 르브론 제임스에 이은 공격 2옵션으로, 톰슨은 골밑에서 힘을 보탰다. 특히 2016년 파이널에서 클리블랜드가 구단 창단 첫 우승을 차지하는데 공헌하며 2011년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 전성기는 짧았지만 임펙트는 대단했던 데릭 로즈.
4위

시카고 불스(1984년)

1984년 드래프트는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57, 198cm)의 등장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드래프트 전부터 1순위 후보는 조던이 아니라 휴스턴 대학 출신 하킴 올라주원이었다.

휴스턴 대학을 NCAA 토너먼트 2회 준우승으로 이끌었고 유망주로서 가장 가치가 높은 빅맨 포지션의 선수였다. 1순위 지명권을 갖고 있던 휴스턴 로케츠는 예상대로 올라주원을 데려간다.

2순위 지명권을 갖고 있던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는 센터 샘 보위를 호명한다. 포틀랜드는 보위를 지명하기 전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출신의 조던을 두고 고민했다. 하지만 포틀랜드엔 조던과 같은 포지션에 클라이드 드렉슬러라는 걸출한 슈팅가드가 버티고 있었다.

결국 시카고가 3순위로 NBA 역대 최고 선수로 꼽히는 조던을 지명했다. 시카고 구단 프렌차이즈 역사를 뒤바꾸는 결정이었다.

파이널 우승 경험이 없던 시카고는 조던과 3회 연속 우승을 2번하며 총 6번 정상에 선다. 실력과 인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며 1990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팀으로 올라섰다. 모두 조던 덕분이었다.

▲ 오랫동안 보스턴 셀틱스의 간판스타로 활약한 폴 피어스.
3위

보스턴 셀틱스(1998년)

캔자스 대학 1학년 시절 폴 피어스(43, 201cm)는 평균 20.4득점 6.7리바운드 2.6어시스트 1.1스틸 1.1블록슛 야투 성공률 51.3%로 펄펄 날았다. 대학 최고의 선수로 1998년 드래프트에서 가장 주목 받는 선수 중 1명이었다.

하지만 10순위를 가지고 있던 보스턴 셀틱스의 호명 차례가 올 때까지 피어스는 남아있었다. 보스턴은 고민 없이 피어스를 뽑았다.

피어스는 "날 지나친 9개 팀들을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며 이를 갈았다. 이후 피어스는 보스턴을 대표하는 프렌차이즈 스타로 성장했다.

보스턴의 암흑기와 부흥기를 모두 이끌며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10번의 올스타, 2008년 파이널 MVP에 선정되며 드래프트 직후 했던 자신의 말을 지켰다.

2위

시카고 불스(2008년)

2007-08시즌 시카고는 33승 49패로 리그 전체 22위에 머물렀다.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아래로 8개 팀이나 있어 높은 순번의 드래프트 지명권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실제로 시카고가 2008년 드래프트에서 1순위를 차지할 확률은 1.7%에 불과했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시카고 손을 들어줬다.

전체 1순위 지명권이 시카고 손에 들어간 것이다. 시카고는 시카고 출신의 멤피스 대학 포인트가드 데릭 로즈(32, 190cm)를 지명했다.

로즈는 2011년 NBA 역대 최연소 MVP에 오르며 시카고의 기대대로 성장했다. 로즈와 함께한 시카고는 조던 시대 이후 가장 빛난 시간을 보냈다. 다만 로즈는 MVP 선정 후 부상으로 내리막길을 걸으며 짧은 전성기를 보냈다.

▲ 피어스 전에 보스턴을 상징하는 선수는 래리 버드였다.
1위

보스턴 셀틱스(1978년)

인디애나주립대학의 래리 버드(64, 206cm)는 대학농구를 평정하며 이름을 떨쳤다. 대학시절 평균 28.6득점 14.9리바운드로 프로 팀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1978년 대학 3학년이던 버드는 프로진출과 대학 졸업을 놓고 고민한다. 버드가 쉽게 결정을 하지 못하자 다른 팀들은 버드 뽑기를 꺼려한다.

하지만 보스턴은 예외였다. 1978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6순위로 버드의 이름을 불렀다.

버드는 1978-79시즌 보스턴 합류를 거절했다. 대학에서 4년을 다 보내기로 결심한 것이다. 보스턴은 바로 다른 선수를 뽑을 수 있었지만 버드를 기다리기로 결정한다.

1년이 지나고 버드는 보스턴에 입단한다. 버드가 오기 전 29승 53패였던 보스턴은 버드 합류 후 61승 21패로 정규 시즌 1위에 오른다.

버드는 신인 시즌 평균 21.3득점 10.4리바운드 4.5어시스트 1.7스틸로 다방면에서 맹활약하며 라이벌 매직 존슨 밀어내고 신인왕에 선정됐다. 이후 정규 시즌 MVP 3회, 파이널 MVP 2회로 1980년대 보스턴 전성기를 이끈다.

스포티비뉴스=맹봉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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