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이며 말투며, 박해진(37)은 '가열찬' 모드였다. 박해진의 말대로라면 '가열찬'이 박해진 모드였을지도 모르겠다.
드라마는 자신의 회사를 차린 '가열찬'이 사업이 망한 뒤 다시 경력직 부장에 지원하고, 이만식이 다시 시니어 인턴에 지원하며 다시 만나는 것으로 막을 내
렸다. 마냥 행복하지 않은, 하지만 이전보다는 조금 행복해진 회사원 이야기를 두고 박해진은 "열린 결말"이라며 "깔끔하게 끝이 났다"고 평했다.박해진으로선 사회초년생 인턴부터 한 팀을 이끄는 부장까지, 위계가 꽉 잡힌 직장생활을 간접 경험한 셈. 그는 "쉽지는 않았다"며 "파트너가 아니라 누군가 제 위에 있고, 아래에 누군가 있다는 게 숨이 턱하니 막히는 느낌이었다"고 고백했다.
"인턴부터 부장까지, 양쪽 다 공감이 돼요. 연기하기는 과거 (인턴) 모습이 더 편하기는 했죠. 지질하고 '쭈글'한 연기가 더 맞나봐요. 부장으로 돌아와서 보니 힘들다는 걸 느꼈어요.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하고 싶은 말 하는 것도 아니고, 부하직원 무서워서 제대로 말도 못하고, 좋은 상사가 되려니 그것도 쉽지 않고요. 한번 터뜨리면 시원하기도 하니, '이맛에 꼰대가 되나' 하는 공감도 되더라고요."
그는 '꼰대'가 좋은 의미로 사용하는 말은 아니라고 전제하면서도 '꼰대인턴'을 두고 "우리에게 필요한 '꼰대'의 이야기가 아닐까"라고 말했다. 스스로도 '꼰대'의 어느 경계선에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단다. 촬영현장만 해도, 드라마를 찍으면 끼니를 거른 밤샘촬영이 기본으로 여겨지지 않았나. 박해진은 "속으로 '세상 좋아졌다' 한다"며 웃었다.박해진은 촬영하며 어딘가 솔직해진 것 같다고도 했다. "속은 그렇지 않은데 아닌 척 연기해야 하는 할 때가 있다"며 "하지만 가열찬을 연기하면서 표현이 좀 더 솔직해진 계기가 됐다"고 털어놨다. '가열찬'은 스스로 "연기하며 제 것을 많이 갖다 썼다"고 할 만큼 박해진과 와 닮은 캐릭터이기도 했다. 약간 지질하고, 일을 떠맡고, 혼잣말하는 모습까지 닮아 있단다.
"누나가 항상 그래요. 뭘 그렇게 궁시렁대냐고.(웃음) 제가 맘에 들지 않아도 얘기를 잘 못하는 성격이에요. 잘 시키지도 못하고, 성에 안 차니까 내가 하면 되지 그러고 살아요."
유쾌한 작품도 여럿 경험했지만 전면에 코미디를 내세운 작품은 박해진에게도 '꼰대인턴'이 처음이다. 박해진은 중국의 '희극지왕' 주성치의 연기와 연출을 좋아한다며 "주체가 돼서 직접 웃겨보려 하기보다는 아무렇지 않은 척 열심히 상황에 빠져 뻔뻔하게 연기했다"고 했다.1회부터 화제를 폭발시킨 인도라면 CF는 박해진의 각오가 제대로 드러난 대목이다. 황금빛 화려한 의상에 수염을 그린 채 '발리우드' 영화 특유의 흥겨운 안무를 뻔뻔히 소화해내 웃음과 충격을 동시에 안겼다. 기가막힌 후반작업으로 퀄리티를 높여준 CG팀에게 "이게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일이냐"고 감사 섞인 농담을 던진 박해진이지만, 그 역시도 1분도 채 안되는 장면을 위해 수차례 안무를 연습하고 한파 속에 얇은 옷 차림으로 꼬박 12시간을 촬영에 매달렸던 터.
"우려한 것보다 좋아해 주셔서 조금 더 가도 되겠구나, 조금 더 망가져도 되겠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이건 망가지는 것도 아니고 시작이죠. 망가지는 데 대한 두려움은 없어요."
한 사무실을 쓰며 붙어지낸 '꼰대인턴' 팀은 또 각별하게 다가오나보다. 마지막 촬영이 끝날 땐 선배 김응수의 한 마디에 그만 왈칵 눈물을 쏟았다. 박해진은 "원래 안 그랬다"면서 묻지도 않았는데, 한지은은 물론이고 고건한, 노종현, 박아인, 홍승범 등 마케팅 영업팀원들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촉망되는 후배들"이라고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장점와 특징을 하나하나 짚다 말고 "다른 데 가서 잘 했으면 좋겠고"를 연발하기도 했다.
"하필 상석에 앉아가지고, 뿔뿔이 흩어질텐데 다들 잘 하겠지. 부장의 마음으로 걱정하게 돼요."
그 중에서도 '꼰대인턴' 이만식 역의 김응수를 빼놓을 수 없다. 박해진은 '타짜'의 곽철용 캐릭터로 십수년만에 재조명된 이만식과 드라마 내내 아웅다웅 특급 브로맨스를 뽐냈다. 현장은 더 살가웠다. 실제로는 '꼰대'와 거리가 먼 선배인데다, 40년 가까이를 연기한 대선배다보니 되려 깍듯하게 예의를 차리는 데신 성큼 다가가게 됐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김응수가 보낸 꽃사진도 받았다.
"몇 달을 아침마다 꽃사진을 받았어요. 주옥같은 멘트도 함께 해 주시고. 이젠 아침에 꽃이 안 오면 섭섭하더라고요. 오늘도 왔어요.(웃음)
선배님 유행어가 '어, 좋아좋아'예요. 늘 '어, 좋아좋아'라고 말해주세요. 귀에 맴돌다보니 저희도 어느 순간 따라하게 되더라고요. 좋아도 더 좋고, 마치 좋지 않아도 좋은 것 같고 힘이 됐어요."
작품을 마친 직후라 이제는 휴식의 시간이다. 박해진은 그러나 이전과는 다르게 이 시간을 보내려 한다고 했다."예전에는 쉴 때 항상 바빴어요. 관리받고 운동하고 뭔가 배울 수도 있고, 계속 채우기 급급했어요. 지금 와서 보면 무슨 소용이 있나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내게 주어진 꿀같은 쉬는 시간인데, 사실 꿀 빨기에도 모자란 시간이잖아요. 나는 왜 이 시간마저 나를 혹사시키고 있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침형 인간이라 해가 떠 있을 때 자는 게 뭔가 아깝고, 하루종일 하나도 안 하는 게 이해도 안되고 허무했거든요. 요즘엔 그럴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를 내려놓고 쉬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연기도, 휴식도 변화가 오는 시기." 박해진이 지금의 자신에 대해 한 말이다. 그의 차기작은 스릴러 웹툰이 원작인 드라마 '크라임 퍼즐'. 그는 또 어떻게 달라져 돌아올지 궁금해진다.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 roky@spotv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