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필라델피아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은 이지태가 14일 스포티비뉴스와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고봉준 기자
-우완투수 이지태, 필라델피아와 깜짝 계약
-189㎝ 신장과 140㎞대 후반 강속구 매력적
-“코로나19 우려 있지만, 도전해보고 싶었다”

[스포티비뉴스=고봉준 기자] 최근 메이저리그는 구단별로 국제선수 계약이 마무리됐다.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유망주 스카우트 작업이 사실상 중단됐지만, 올해 들어 각국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면서 10대 중후반에서 20대 초중반의 샛별들이 미국으로 향하게 됐다.

그런데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이 발표한 국제선수 계약 명단에선 눈길을 사로잡는 이름이 있었다.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영입한 선수 9명 중에서 다름 아닌 한국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포항제철고 출신의 우완투수 이지태(20)였다.

설 연휴 마지막 날인 14일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의 한 트레이닝센터에서 만난 이지태는 “고교 시절부터 꾸준히 관심을 가져준 필라델피아 구단과 최근 이야기가 잘 오갔다. 계약금이 많지 않고, 또 미국 현지의 코로나19 상황이 여전히 좋지 않지만, 새로 도전을 해보겠다는 각오로 계약을 맺었다”고 말했다.

▲ 필라델피아가 최근 공개한 국제선수 계약 명단. 왼쪽 하단 이지태의 이름이 보인다. ⓒ필라델피아 필리스 SNS
이지태는 아직 야구계에서 이름이 많이 알려진 선수는 아니다. 고교 시절 활약이 그리 뛰어나지 않았고, 2년 전 KBO 신인 드래프트에선 낙방했기 때문이다. 이후 1년이라는 기간에도 존재감을 알릴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몇몇 구단은 이지태를 향한 관심을 거두지 않았다. 신장 189㎝·체중 100㎏의 건장한 신체조건과 최고구속 140㎞대 후반의 강속구 그리고 고교 시절 또래들보다 적은 이닝을 던지면서 싱싱하게 유지한 어깨를 매력적으로 평가했다.

이지태를 오랫동안 지켜본 필라델이파의 평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또, 불행 중 다행으로 지난해 막혔던 국제선수 계약이 올해 풀리면서 이지태에게 손을 내밀 수 있게 됐다. 역대 한국인 선수 중에서 내셔널리그 동부지구의 필라델피아 소속으로 뛴 마이너리거로는 최창양(48)과 이승학(42), 김일엽(41)이 있었고, 메이저리거로는 박찬호(48)와 김현수(33)가 있었다.

이지태는 “계속 야구를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감사했다. 또, 고등학생 시절 막연하게 꿈꿔왔던 무대의 일원이 된다는 점도 뿌듯했다”고 환하게 웃었다. 이어 “물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에서 외국인선수들과 함께 뛰어야 한다는 점이 걱정되지만, 그래도 부딪혀보고 싶다”고 당차게 말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일단 코로나19 여파로 올해 역시 마이너리그 개최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KBO리그 데뷔를 앞둔 장재영(19·키움 히어로즈)과 나승엽(19·롯데 자이언츠)은 미국 진출을 심각하게 고려했지만, 지난해 마이너리그가 열리지 않은 상황을 고려해 국내로 눈길을 돌렸다.

이지태 역시 ‘이 시국’을 고려해야 했다. 자칫 1년이란 시간을 그대로 허비할 수도 있는 상황. 그러나 이지태는 “주위에서 코로나19라는 악재를 많이 걱정해주셨다. 그래도 무소속인 나에게 관심을 보인 구단에서 뛰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필라델피아는 지난해 코로나19로 접촉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꾸준히 비대면으로 연락을 취한 구단이었다”고 계약 배경을 밝혔다.

▲ 포항제철고 시절의 이지태. ⓒ이지태 제공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와 캐치볼을 하면서 야구 재능을 느낀 이지태는 곧장 야구부가 있는 수원 신곡초로 전학해 정식으로 공을 잡았다. 이어 매향중과 덕수중을 거친 뒤 서울고로 진학했다. 그리고 2학년 도중 포항제철고로 전학해 고교 생활을 마무리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한 차례씩 학적을 옮겨야 했던, 다사다난한 학창시절을 보낸 이지태는 “서울고에선 2학년 때까지 경기를 나가지 못했다. 선수들도 워낙 많았고, 또 실력이 좋은 투수들이 즐비했다. 그래서 3학년마저도 이렇게 보낼 수는 없겠다고 생각해 유정민 감독님께 전학을 건의드렸다. 감독님께서도 내 뜻을 받아들여 주셔서 포항제철고로 전학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런데 포항제철고에서도 성적이 그리 뛰어나지 못했다. 내 실력 부족 탓이었다. 그래도 동계훈련 때까지는 최고구속이 149㎞까지 나왔는데, 주말리그가 시작한 뒤로는 구위가 떨어졌다. 내가 감독이더라도 나 같은 투수는 쓰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헛웃음을 지었다.

실제로 이지태가 포항제철고 3학년 때 남긴 성적은 13경기 0승 3패 평균자책점 7.71이었다.

결국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아무런 지명을 받지 못한 이지태는 지난해 독립리그 출전과 개인운동을 병행하며 비상을 노렸다. 당장의 러브콜은 없었지만, 어디서든 뛸 수 있을 정도의 몸을 계속 유지했다. 시속 140㎞대 중반의 직구와 140㎞ 안팎의 커터, 130㎞대 초반의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꾸준히 연마했다. 그리고 마침내 필라델피아와 계약을 통해 투수로서의 꿈을 이어가게 됐다.

▲ 이지태의 투구 장면. ⓒ이지태 제공
다만 이지태 앞에는 여전히 많은 난관이 놓여있다. 마이너리그 가장 낮은 곳에서 커리어를 시작해야 하고, 언어와 문화 장벽도 넘어서야 한다. 또, 코로나19 여파로 마이너리그 일정조차 정확히 잡히지 않은 상태다.

이지태는 “다른 나라에서 외국인선수들과 지내야 한다는 점이 두렵긴 하다. 당장 어디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다행히 내 성격이 낯을 잘 가리지 않는다. 미국에서도 동료들과 잘 지낼 자신이 있다. 최근에는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이내 밝은 표정을 지었다.

끝으로 이지태는 “지금은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미국으로 가지만, 나중에는 많은 팬들께서 내 이름을 기억해주시는 선수가 되고 싶다. 또,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활약하는 선발투수로 빨리 성장하고 싶다”고 힘차게 말했다.

스포티비뉴스=고봉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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