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이에른 뮌헨 위민과 2020-21 유럽축구연맹 여자챔피언스리그(UWCL) 4강 2차전에서 결승골을 넣고 환호하는 지소연 ⓒ연합뉴스/AP
▲ 바이에른 뮌헨 위민과 2020-21 유럽축구연맹 여자챔피언스리그(UWCL) 4강 2차전에서 결승골을 넣고 환호하는 지소연 ⓒ연합뉴스/AFP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한국 여자 축구의 아이콘 지소연(30, 첼시 위민)은 유럽 진출 1세대다. 어느새 30대에 접어드는 지소연의 실력은 갈수록 농익고 있다.

지난 9일(한국시간) A대표팀 동료 전가을(31)의 소속팀 레딩 위민과의 2020-21 잉글랜드 여자 슈퍼리그(WSL) 최종전에서 5-0 대승을 거두며 승점 57점으로 2위 맨체스터 시티 위민(55점)에 승점 2점 차 1위로 2시즌 연속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전인미답' 4관왕 가능성 앞에 선 지소연

우승 현장에서 지소연은 중심에 있었다. 당당히 태극마크가 새겨진 정강이 보호대를 들고 환호했다. '대한의 딸'로 자랑스러움을 전세계에 보인 것이다. 리그와 리그컵 우승으로 2관왕, FA컵은 16강에 올라 있어 다관왕 가능성이 열려있다.

아직 정규리그 우승을 즐길 여유는 없다. 한국 여자 축구의 역사를 새로 쓰는 지소연 앞에 '대사(大史)'가 기다리고 있다. 오는 17일 스페인 FC바르셀로나 페미니와 유럽축구연맹 여자 챔피언스리그(UWCL) 결승전을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치른다.

스포티비뉴스와 지난 13일 원격으로 만난 지소연은 마스크 속에 가려진 야심을 표현했다. 지소연은 "지난 시즌에 이어 올 시즌도 우승해 기쁘다. 다만, 아직 기쁨을 즐길 시간이 없어서 아쉽다. (17일에) 챔피언스리그 결승이 있어서 준비해야 한다"라며 침착함을 유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소연이 결승 무대를 밟는다면 한국 여자 선수로는 최초의 기록이 된다. 우승하면 25만 유로(3억4천만 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남자의 1천9백만 유로(254억 원)와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해가 갈수록 수준이 높아지고 있고 상금도 증액되고 있다.

첼시는 여자와 남자팀 모두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올랐다. 여자는 FC바르셀로나, 남자는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한다. 모두 꾸준한 투자로 여자팀을 성장시키고 있고 남자팀은 최강이다.

지소연은 바이에른 뮌헨 위민과의 4강 2차전에서 프리킥으로 결승골을 넣으며 결승 진출에 공을 세웠다. 골에는 지난 7시즌 동안 유럽을 누비며 쌓은 경험과 생존 방식이 묻어 있었다.

과거를 회상한 지소연은 "(첼시 입단) 2년 차에 우승했는데 영국 축구가 터프했다. 당한 만큼 똑같이 돌려줘서 살아남았다"라며 웃은 뒤 "(UWCL 결승은) 7년 동안 첼시에 있으면서 기다렸던 날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준비 중이다.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빅이어를 들어보고 싶다"라고 강한 우승 열망을 드러냈다.

투자로 성장한 첼시 위민, UWCL을 꼭 우승해야 하는 이유

스스로 잉글랜드 여자 축구의 발전을 체험하고 있는 지소연이다. 2부리그에 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위민이 1부리그에 승격하는 등 남자의 프리미어리그(PL) 못지않다. 첼시는 유럽 주요 국가 대표급 선수들이 선망하는 팀이다. 지소연은 현재 유일한 아시아인 선수다.

그는 "(첼시에서) 하루하루가 경쟁이다. 좋은 선수가 늘 오니까 정말 치열하다. 초심을 잃지 않고 경쟁하면서 발전하는 것 같다. 대한민국 선수니 늘 그런 부분을 잊지 않고 열심히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물론 첼시도 유럽 무대에서 좌절의 역사가 있었다. 8강이나 4강에 가도 늘 독일팀을 만나 미끄러졌다. 올 시즌에는 8강 볼프스부르크, 4강 뮌헨이었다. 독일 여자 축구는 프랑스, 스페인과 함께 삼대장으로 꼽힌다. 이제 막 여자 축구에 투자한 잉글랜드와 비교하기 어렵다.

그래도 자부심이 큰 지소연은 "지금 프랑스, 독일에 비교하면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많이 발전했다. 8강, 4강 다 독일팀을 이기고 결승까지 올라갔다. 지금은 동등하다"라고 말했다.

첼시는 여자팀이 WSL 최강이지만 남자는 최근 몇 시즌 사이 위상이 많이 떨어졌다. 올 시즌에는 출발이 나빴고 프랭크 램파드 감독을 경질한 뒤 토마스 투헬 감독을 영입했다. 올해에만 13연승을 달리는 등 180도 달라진 분위기를 보여줬다.

지소연도 "남녀팀이 함께 결승에 가니 구단도 정말 좋아했다. 모두가 응원해주고 지지해 준다. 남자팀도 잘하고 있지만, 동반 우승을 하고 싶다"라며 최초의 역사를 만드는 데 일조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 잉글랜드 여자 슈퍼리그(WSL) 두 시즌 연속 우승을 차지한 뒤 시상식에서 기뻐하는 지소연. 태극마크가 새겨진 정강이 보호대가 인상적이다. ⓒ연합뉴스/AP

"박지성 오빠가 바르셀로나는 꼭 이기래요"

런던에 거주하니 자연스럽게 손흥민(토트넘 홋스퍼)과의 교류로 이어진다. 올 시즌에는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위민에서 뛰던 대표팀 주장 조소현이 토트넘 위민에 입단해 라이벌 구도가 형성됐다. 지소연의 행보를 보면 손흥민, 조소현이 모두 부러워할 법하다.

하지만, 지소연은 "(조)소현 언니가 늘 경기 끝나면 굉장히 고생했다고 연락해준다. 이번에도 결승에 올라갔으니 우승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고맙다"라며 감동을 표현했다. 이어 "(주변에서 손흥민에 대해) 굉장히 많이 물어본다. (우승 직후) 연락을 한 적이 없고 만난 적도 없다. 대신 (박)지성 오빠게 메시지를 보냈다. 바르셀로나는 꼭 이기라더라. 그래서 너무 감사드리고 나중에 같이 식사하자고 했다"라며 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박지성은 2007~08 시즌 첼시와 첫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는 명단에서 빠져 관중석에서 우승을 지켜봤고 2008-09, 2010-11 시즌에는 FC바르셀로나와 연속해 만나 준우승하는 아픔이 있었다. 지소연에게 바르셀로나를 꼭 이겨달라고 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이유다.

올해 도쿄 올림픽 플레이오프에서 중국에 아깝게 밀려 첫 본선행이 좌절된 지소연은 첼시 위민에서 꼭 성과를 내겠다는 각오다. 제대로 보여준다면 조금은 위안이 될 것 같아 그렇다.

언제 다시 경험할지 모르는 UWCL, 지소연은 "많은 분이 응원해주고 함께해서 꼭 빅이어(우승컵)를 들어 올렸으면 좋겠다"라며 전의를 불태웠다.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제보> elephant37@spotvnews.co.kr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