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해빙'에서 의심을 품은 의사 승훈 역으로 출연한 배우 조진웅. 제공|롯데 엔터테인먼트

[스포티비스타=이은지 기자] ‘심리 스릴러라는 장르명 자체에서 느껴지는 스산함이 있다. 더운 여름이지만 뒷목에서 느껴지는 서늘함과 더운 날씨로 인해 흐르는 땀이 아닌, 긴장감으로 인한 땀은 스릴러 장르에서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느낌이다.

영화 해빙은 오랜만에 등장한 스릴러 장르다. 영화 ‘4인용 식탁을 연출한 이수연 감독의 신작이자, 배우 조진웅, 신구, 김대명, 이청아 등이 출연한 이 작품은 의심의 불씨가 어떻게 퍼져 나가는지, 또 그 불씨는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한 사람을 어떻게 변화 시키는지를 보여준다.

이 과정의 중심에 있는 인물은 조진웅(41)이 연기한 승훈이다. 승훈은 병원 도산과 아내와의 이혼 후 미제 살인사건으로 유명했던 한 신도시로 흘러 들어온다. 내시경 전문인 내과의사로 선배의 병원에 계약직 의사로 취직한 것. 시골 병원에서 느끼던 지루하고 따분한 삶은 한순간 변한다. 정노인(신구 분)이 수면 내시경 중 살인을 벌인 듯 한 고백을 하면서부터다.

조진웅은 승훈의 심리 변화를 탁월하게 묘사했다. 상대에 따라 다른 톤을 만들어 냈고, 불안과 의심을 키워가면서 느끼는 예민함과 공포를 섬세하게 그렸다. 무너져 버린 가장, 살인마 사이에 살고 있다는 압박감은 조진웅의 행동과 눈빛,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를 통해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영화 속 화면을 봤을 때 비로소 명확해지는 감정과 상황이 많았다. 시나리오만 읽고 연기하는 입장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조진웅이 신명 났다는 표현을 자주 했다는 것이다. 조진웅에게 이런 까다로운 작업은 스트레스이기 보다, 신명 나는 일이었던 것이다. 조진웅을 인터뷰했다. 

Q. 완성된 영화는 어땠나.

스스로 만족스럽다고 말하기는 그렇지만 우리끼리 이야기를 많이 했던 지점들을 완주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관점에 따라 차이가 생기는 어려운 이야기다. 단순하게 설명하기 쉽지 않다. 촬영할 때는 잘 몰랐는데, 관객들에게 소개를 해야 하는 책무를 맡으니 상당히 부담스럽긴 하다.

Q. 캐릭터에 대해 이수연 감독과 굉장히 많은 대화를 나눴을 것 같다.

상당히 많은 부분을 열어주셨다. 단순히 연출만 했다면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상상을 하고 직접 집필을 했기 때문에 과도한 선을 넘지 않게, 그 지점을 분명히 이야기해 주셨다.

▲ 영화 '해빙'에 참여한 조진웅은 스트레스를 받기 보다 신명나게 작업했다. 제공|롯데 엔터테인먼트

Q. 승훈을 어떻게 준비했나.

승훈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미리 계산을 하고 촬영장에 가기 어려웠다는 의미다. 여러 가지 상황이 승훈에게 끼치는 영향은, 그 공간에 들어가 봐야 알 수 있었다.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촬영 전 내 리액션을 계산하고 갈 수가 없었다.

Q. 그런 지점에서 스트레스를 받진 않았나.

이런 작품을 만나면 배우로서 굉장히 행복하다. 어떻게 변해야 할지 모르고 상상을 하더라도 계산한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다. 무궁무진하다. 계산하지 못했던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직접 해보지 않고 대화로는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없다. 흥미진진한 작업이었다.

Q. 취조실이나 정육식당 등 연극을 보는 느낌도 들었다.

집중이 되는 공간이 있으면 배우는 신명이 난다. 흠뻑 즐겼던 기억이 크다. 대부분 현장에서 그렇게 집중이 되지 않는다. 특히 로케이션을 나가면 촬영을 구경하는 시민들도 있어서 집중이  되지 않는다. 철저하게 외톨이 공간을 만들어내서 집중하기가 더 좋았다. 그런 부분이 신나는 지점이었다.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을 만큼 과정은 힘들었지만, 정말 재미있었다.

Q. 이번 캐릭터는 외적으로 보여줄 것이 많지 않아서 아쉽진 않았나.

오히려 내적인 에너지의 증폭이 강했다. 다른 캐릭터는 겉으로 화를 낸다면, 승훈은 말은 하지 않지만 내면에서 많이 움직인다. 승훈은 물잔을 하나 잡는 것도 큰 행동일 것이다. 배우를 하면서 느끼기 힘든 감정이다. 그래서 신이 났다.

Q. 승훈이 아내와 같이 집으로 간 것도 인상적이었다.

이미 이혼한 아내가 찾아온다. 승훈은 정말 싫었을 것이다. 그 누추한 집으로 데리고 왔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힘든 상황이었다. 문을 열고, 신발을 벗고 들어왔는데, 문이 닫혔는데, 아내의 구두 벗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뒤돌아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아내의 표정이 승훈에게는 이미 그려진 것이다. 그렇게 들어와서 아내가 승훈 어깨에 손을 올릴 때, 이 남자, 승훈은 무너지는 것이다. 굉장히 슬펐다. 전 부인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얼굴을 당기는데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Q. 윤세아와의 시너지가 엄청났던 것 같다.

그저 단순한 논리였는데, 이렇게까지 좋은 시너지가 나올 줄은 몰랐다. 윤세아는 처음 만난 배우다. 애정신이 있으니, 촬영 후 머쓱할 줄 알았는데, 소통이 더 잘 됐다. 일면식도 없던 배우라서 그런 장면 자체가 부담이었다. 의식을 하고 다가간 것이 아니라, 무의식으로 만나니까 시너지가 났던 것 같다.

▲ 조진웅은 영화 '해빙' 속 승훈의 상황이 남 일 같지 않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제공|롯데 엔터테인먼트

Q. 전체적으로 승훈의 감정에 몰입하기 어렵지 않았나.

아니다. 남 일 같지 않다는 것에서 출발했다. 현재 조진웅이라는 배우는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꾸준히 작품에서 연기를 한다. 하지만 내가 잘못된 일을 했거나, 시국에 반하는 것을 겪어 몰락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지방 변두리에 있는 선배 극단에 있다고 생각하면, 그리고 이혼을 했다면 아내를 만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내 성격에는 집으로 데려오지 않았겠지만, 지금 아내 성격엔 따라왔을 것이다. 그런 모습을 상상했다.

Q. 연출에 관심 없냐는 질문도 많이 들을 것 같은데.

무슨 소리냐. 하하. 작품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 두 번은 못하겠다라는 것이다. 다음 생에 배우는 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연출? 정말 사람이 할만한 것이 아니다. ‘해빙언론시사회 때 이수연 감독님께 영화 몇 번 봤냐고 물어봤다. 180번을 봤다고 했다. 자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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