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해빙'에서 간호조무사 미연 역을 맡은 배우 이청아. 사진|한희재 기자

[스포티비스타=이은지 기자] 영화 해빙’(감독 이수연)에서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배우 이청아의 얼굴을 볼 수 있다. 과한 친절과 과한 무관심을 동시에 보여주고, 순간 순간 달라지는 눈빛과 말투는 이청아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 느낄 만큼 낯설다.

이청아는 해빙에서 수도권 변두리에 위치한 신도시의 토박이로 살아온 간호조무사 미연 역을 맡았다. 연쇄살인의 메카인 이곳에서 나고 자란 인물로 내시경 전문 내과의사로 들어온 승훈(조진웅 분)에게 친절함을 베푼다. 부탁하지도 않은 점심을 챙기고, 웃음을 흘리며 가까워지려 하고, 그럴수록 미연 역시 의심스러운 사람이 된다.

지금까지 이청아가 맡아온 캐릭터와는 달랐다. , 뒤가 같고,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캐릭터를 주로 맡아온 이청아에게는 건강한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미연은 정반대에 있는 캐릭터다. , 뒤가 다르고,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 보다는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는 의뭉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의도한 변신은 아니지만, 분명 변했다. ‘이청아라는 이름 뒤에 따라오는 선한 역에 대한 이미지를 지우고 싶긴 했다. 명확하게 이청아의 이 부분이 변했다라고 말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이청아 역시 그 지점을 의도했다. 하지만, 과하게 가진 않았다. 보다 자연스럽게 변화하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미연을 만들어갔다. 이청아를 만났다.

Q. 무서운 영화를 못 보는 것으로 아는데, ‘해빙을 선택했다.

(시나리오만 봤을 때) 이렇게 무서운지 몰랐다. 구조가 특이하다는 것을 시나리오를 통해 느꼈다. 누군가가 지켜보는 관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승훈의 시점으로 변한다. 음악과 속도감이 더해져 무서워 진 것 같다. 이수연 감독님이 컷을 넘기는 속도가 사람을 초조하게 만든다. 뭐가 튀어 나오면 덜 무서웠을 것 같은데, 안 나오니까. 1초 더 보면 안 무서울 것 같은데 0.5초 일찍 멈춘다. 관객들 피를 말리게 하는 속도다.

Q. 지금까지 했던 연기보다 까다롭지 않았나.

출연한 작품 시나리오를 두 권씩 받는다. 하나는 처음 읽으면서 느낌을 적어두고, 또 다른 하나는 현장에 들고 다닌다. 연기를 하다 감정이 엉키면 첫 대본을 살펴본다. 그러면 풀리는 부분이 많다. ‘해빙시나리오에 과하게 가지 말자’ ‘연기하지 말자등을 써 놨더라. 미연을 연기할 때 연기적인 기량을 뽐내거나,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이 보이면, 관객들에게 좋지 않은 의심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영화 '해빙'에서 이청아는 조금은 이청아 같지 않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사진|한희재 기자
Q. 미연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더라.

미연이 호감인지 가식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확실한 라인을 타면 답을 정한 듯한 느낌을 줄 수도 있었다. 미연이 마주한 상황에 충실하게 갔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이 있다면 솔직하게 반응하려고 했다. 영화 속 신도시와 병원이 존재한다면, 이청아라는 배우가 아닌, 미연이 아직도 근무를 하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길 바랐다.

Q. 초반, 미연이 승훈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느낌이 든다.

초반 승훈과 미연의 어색함이 있다. 처음에 이 동네가 살인사건이 많이 일어났다고 짜증내는 장면에서 대화를 하는데, 0.1초씩 더 뜨는 불편함이 있다. 미묘하게 안 친한 감정이 있었다. 승훈과 미연은 서로 예의 바르게 대하지만, 승훈은 이미 미연을 평가한 것이다. 미연은 승훈과 비슷하다고 느꼈고, ‘이 정도면 내가 한번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승훈이 자신을 하대하는 것을 느낀다. 모멸감과 상실감이 들었을 것이다.

Q. 평소에도 캐릭터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는가.

많이 한다. 처음부터 이해가 잘 됐다가, 다른 면을 발견하고 놀라는 캐릭터가 있는가 하면, 미연처럼 이해하기 힘든 인물도 있다. 그러면 시간이 많이 들어간다. 타당성을 지녀야 한다. 그냥 생각 자체가 다른 사람이다. 미연의 행동은 미연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Q. 미연은 자존감이 낮아 보였다.

승훈이 의사이긴 하지만, 조금은 자신과 비슷한 환경에 처해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지 않나. 한번 해볼만 한 상태의 느낌이다. 주변에서 좋은 평가를 듣고 싶어한다. 그러면서 미연이 측은해 보이기도 하더라. 미연에게 조금 더 좋은 친구, 조금 더 좋은 선생님 등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미연의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Q. 명확하게 말하긴 어렵지만 어딘가 모르게 달라진 느낌이다.

살을 조금 뺐다. 이상하게 이청아 같지 않다는 느낌이었으면 했다. 내 이름 뒤에 따라오는 착한 이미지에 대한 기대감을 지우고 싶었다. 처음부터 나 달라졌지?’라고 하면 거부감이 드니까,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하려고 노력했다. 오히려 티가 안 날까봐 걱정을 했던 것 같다.

▲ 이청아는 "다양한 컬러의 캐릭터가 눈에 들어온다"며 의욕을 보였다. 사진|한희재 기자

Q.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달라진 것인가.

작품을 고르는 것을 보고 이미지 변신을 하려는 것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내가 배우를 하면서 신날 때가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인물, 내가 생각해보지 않았던 인물을 만났을 때다. 내가 접했던 장르나, 그런 종류의 캐릭터를 선택하니까 이미지 변신을 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다. 전보다는 다양한 컬러의 캐릭터가 읽혀지는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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