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이스' 이도경이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제공|얼반웍스이엔티

[스포티비스타=양소영 기자] 배우 이도경(64)은 말했다. 배우는 무대에서 연기로 보여질 뿐, 다른 건 필요 없다고. 연기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오랜 시간을 버텨온 그는 인자한 미소로 악수를 건넸다. 연기 밖에 몰랐고, 앞으로도 연기만 생각하며 살고 싶다는 배우 이도경의 모습은 인터뷰를 마친 후에도 머릿 속에 남았다.

이도경은 지난 12일 종영한 OCN 주말드라마 ‘보이스(극본 마진원, 연출 김홍선, 제작 콘텐츠K)’에서 모기범 회장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보이스’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불의의 사고로 떠나보내야 했던 강력계 형사 무진혁(장혁 분)과 112신고센터 대원 강권주(이하나 분)가 범죄해결률 전국 최저라는 성운지청 ‘112신고센터 골든타임팀’에 근무하며 자신들의 가족을 죽인 연쇄 살인자를 추적하며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평균 5%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OCN 장르물의 힘을 보여줬다는 호평을 얻었다.

시청자들에게는 이름이 낯설지 몰라도, 연극계 스타인 이도경은 최근 진행된 스포티비스타와 인터뷰에서 “‘보이스’가 끝나니까 복잡한 생각이 든다. 아쉽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하다. 16부작이 아니라 50부작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보이스’를 하면서 시간도 없고 대사는 많아서 연기하기 힘들기도 했다. 북한말을 배워서 대사를 쳐야하다 보니 시간이 부족했다”며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축구를 예로 들면 드리블을 하면서 슛을 날리면 좋은데, 드리블을 할 수 없이 바로 슛을 날려야 되니까 노골이 되는 게 많아서 아쉬웠다”며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대사를 못 외울까봐 걱정됐다. 현장에서는 대사를 다 외운 척, 여유로운 척 했지만 심장이 콩닥콩닥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후배들의 연기를 보면서 즐겁고 행복했다. 극중 사이코패스 모태구를 연기한 김재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우리 아들이 범인인 줄 몰랐다”고 고백했다. 드라마를 촬영하면서 오랜만에 종방연에 참석했다는 이도경은 “쑥스럽고 민망했다”면서도 “후배들하고 이야기하는 재미가 있더라. 그동안 드라마를 촬영하면서 애썼던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제가 나이가 있다 보니 후배들이 와서 ‘제 연기 어때요?’라고 묻더라. 잘했다고 칭찬해줬다. 집에서 ‘보이스’를 다시 보는데 정말 대단하더라.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연기를 어떻게 그렇게 귀신같이 하는지 정말 잘해줬다”고 말했다.

이도경은 극중 아들 모태구가 경찰에 잡히자 자살을 선택한다. 그는 “권선징악”이라며 “모기범 회장도 벌을 받아야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김재욱에 대한 칭찬을 쏟아냈다. 그는 “이번에 처음 봤는데 잘하더라. 어떤 분들은 섹시하고 매력 있다고 했다. 이제는 악역이라고 미운 게 아니다. 연기를 잘하면 예뻐 보인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 '보이스' 이도경이 드라마의 인기를 실감하며 신기했다고 말했다. 제공|OCN

평소 OCN의 채널 번호도 몰랐다는 이도경. 그는 ‘보이스’를 통해 OCN의 힘을 실감했다고 밝혔다. 이도경은 “딸이 친구에게 전화가 오니까 ‘TV에 나오는 사람이 옆에 있다. 기분이 이상하다’고 말하더라. 아들은 미국 드라마 같다고 하고, 마누라도 잔인한데 재미있다고 해줬다”며 “식당에 가도 사람들이 ‘모태구 아빠다’며 알아봤다. 와서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하는데 고맙기도 하고 신기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특히 김홍선 감독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도경은 “김홍선 감독이 정말 잘해줬다. 감독이 현장에서 욕 한마디 하면 다들 깔깔 웃었다. 욕도 살짝 비껴서 하면 유머가 된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다”며 “천재 감독이다. 너무 너무 잘 만든다. 일주일에 두 편을 찍어야 하지 않나. 그 짧은 시간 안에 2개를 찍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고 찍는지 참 잘났다. 평론가들도 중요하지만 시청자들이 좋다고 칭찬하는 게 진짜 좋은 것”이라며 ‘보이스’가 인기 있을 수 있었던 것에 김홍선 감독의 힘도 컸던 것 같다고 했다.

악역이나 회장 역할을 주로 연기했다는 이도경. 그는 “주로 옷 잘 입고 회장이나 사채업자 역할을 많이 했다. 옷 좀 잘 안 입고 남루한 역할은 안 들어 오냐고 농담 삼아 말했는데, 이번에는 돈 많고 옷만 남루한 캐릭터였다. 옷에서 쾌쾌한 냄새가 나더라. 그걸 원하는 게 아닌데”라며 “코미디 연기도 해보고 싶다. 시트콤 연기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코믹 연기에 대한 의욕을 보였다.

▲ 40년차 배우 이도경은 연기를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사진|OCN 방송화면 캡처

1977년 연극 ‘데미안’으로 데뷔한 이도경은 어느새 연기경력 40년차 배우가 됐다. 그는 연극을 시작으로, 영화, 그리고 드라마까지.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순간순간 자신의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스스로의 연기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그는 “예전에는 어떤 설정이나 테크닉을 많이 신경썼다. 하지만 이제는 본질에 신경 쓰려고 한다”면서도 “연기 맛이 ‘찌익’ 느껴진 건 많지 않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는 “과거 ‘더킹 투하츠’를 찍는데 순식간에 몰입이 됐다. 극중 딸(하지원)을 시집보내는 장면이었는데, ‘오늘 같은 날 엄마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 밖을 쳐다보는 신이었다. 대사도 없는데 그냥 빠져들었다. 카메라 감독도 우는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이도경은 “제가 연극을 오래 했다. 두 작품을 18년 정도 했다. 원래 집이 경주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제가 상주지 않나. 경주와 서울을 오가며 연기를 했다. 잠도 제대로 못자고 연기를 하는데 신들린 듯이 연기했다. 그걸 잊을 수 없다. 말로 표현이 안 된다. 세상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었다. 무당이 신들린다고 하지 않나. 그걸 알 것 같더라. 연기가 너무 잘됐다. 연극에서는 그런 경험이 몇 번 더 있었다. 집에 불이 났을 때도 그렇게 되더라”며 연기와 혼연일체된 순간을 회상했다.

스스로를 ‘촌놈’이라고 지칭한 이도경은 “시골 대식구였다. 육남매였다. 당시에는 문화생활이라는 것도 없었다. 아버지가 정말 엄한 분이었다. 처음에 연극을 하고 싶다고 말씀 드릴 때, 솔직히 비웃을 줄 알았다. 그런데 제일 큰 형을 부르더니, 제가 30대가 될 때까지만 도와주라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방에서 엉엉 울었다”며 “사실 제가 중학교 때부터 흰 머리가 있었다. 이마에 주름도 있었다. 배우를 하기엔 핸디캡이 많았다. 더구나 사투리까지 쓰지 않나. 예전엔 사투리를 쓰면 배우를 할 수 없었다. 그런 악조건인 아들을 무식한 아버지가 ‘가서 최고해라’며 응원해줬다. 정말 비웃음을 당할 줄 알았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우리 아버지”라고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그 시대 아버지가 그렇듯, 이도경의 아버지도 아들에게 애정을 표현할 줄 몰랐지만 아들의 꿈을 끝까지 응원했다. 아들이 TV에 한 컷이라도 나오면, 술을 드시고 전화로 "잘 봤다"고 말하고 끊을 정도였다. 전화보다 편지를 쓰라고 말하는 분이기에, 그 전화 한 통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고.

그렇게 배우 이도경의 세상은 ‘연기’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시골에 온 서커스 속 악극의 대사를 모두 외워 친구들과 모여 공연을 했다. 영화관 영사실에 숨어들어가서 한국 영화, 외국 영화 가리지 않고 모두 섭렵했다. 연극 두 편을 하다보니 어느새 청춘이 다 갔다는 이도경. 얼마 전에 극장을 정리하면서 가슴이 아팠단다. “세월에 밀려가는 것 같다”는 이도경은 “후배들에게 이제는 맡기고 넘겨야 할 때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 이도경이 자신은 연기 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털어놨다. 사진|OCN 방송화면 캡처

그럼에도 이도경은 “죽는 날까지 연기하고 싶다”고 했다. 오랜 기간 연극을 하다가 영화에 진출한 이유도 연기를 계속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공연이 끝나고 위기의식이 왔다. 연극이 끝났다. 연기가 녹슬어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렇게 영화와 드라마를 시작하게 됐다. 단 한 번도 배우가 된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는 그는 “연기가 최고다. 정말 좋아한다. 모든 세상이 다 연기와 연결되어 보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상황인지 관찰한다. 모든 사고가 그렇게 됐다”고 털어놨다.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야죠. 연기는 언제나 잘하고 싶고, 제대로 하고 싶어요. 일류와 사류는 백지 한 장 차이죠. 어떻게 최고의 연기를 보여드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다른 생각은 안 해요. 다른 건 관심도 없어요. 연기가 내 뜻대로 안돼서 정말 괴롭기도 합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일인데, 안되면 너무 괴롭죠. 그냥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저 사람만큼은 인정한다는 말을 듣고 싶은거죠. 저 사람 나오면 믿고 본다고 말한다면 대 만족이죠. 분량은 중요한 게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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