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기정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2018년 여자 아시안컵 예선에 국내 축구 팬들의 눈길이 쏠린 지난 주말 평양에서는 축구 외에 또 한 종목의 국제 대회가 열렸다. 올해로 28번째를 맞는 만경대상국제마라손(마라톤)경기대회였다.

국내 방송에서 이 대회 개최 소식을 스포츠 코너가 아닌, 국제 뉴스 코너에서 취급한 건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1981년 제1회 대회를 연 이래 올해 대회까지 이 대회 남자부 우승 기록은 한 차례도 2시간10분벽을 깨지 못했다. 여자부 기록도 2시간26분대가 대회 최고 기록일 정도로 수준 높은 대회가 아니다. 국제육상경기연맹 기준으로 보면 3등급에 해당한다. 지난달 열린 서울국제마라톤대회는 1등급, 이달 벌어진 대구국제마라톤대회는 2등급이다.

◇마라톤 경기력 저조…남북 공통 고민거리

일부 방송에서는 남녀부 모두 북한 선수가 금메달을 거머쥔 가운데 기록은 따로 공개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는데, 지난 9일 평양 시내에서 열린 대회 남자부에서는 박철이 2시간14분56초, 여자부에서는 조은옥이 2시간29분22초로 우승했다. 지난해 대회 남녀부 우승 기록에서 각각 46초, 1분16초 뒤진 기록이고 세계최고기록(남자 2시간2분57초, 여자 2시간15분25초)과는 꽤 격차가 크다.

한국 마라톤이 남자부의 경우 이봉주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이후 이렇다 할 국제 대회 성적을 올리지 못하고 있고, 북한 마라톤은 여자부에서 정성옥이 1999년 세비야(스페인)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이후 국제 대회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마라톤 중흥은 남북 공통의 과제다.

올림픽과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마라톤 종목에서 한국인은 모두 세 차례 정상에 올랐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손기정 선생과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황영조 그리고 1999년 세비야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정성옥이다. 그리고 한국인이 마라톤 세계최고기록 경신 명단에 오른 건 두 차례 있다. 손기정 선생은 1935년 11월 도쿄에서 2시간26분42초의 당시 세계최고기록을 세웠다.

◇손기정 선생 기록을 어떻게든 깎아내리려 했던 제국주의 일본

그 무렵 상황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935년 11월 3일, 1936년 베를린 올림픽 파견 마라톤 일본 대표 2차 선발전을 겸한 제8회 메이지신궁경기대회가 열렸다. 이 경기에 참가한 손기정은 일본의 여러 선수들과 함께 메이지신궁경기장을 출발했다. 롯고바시의 반환점을 돌 때에 손기정과 나카무라가 선두 다툼을 벌였다.

반환점을 돌자마자 나카무라를 앞선 손기정은 후반에 들어서자 오모리 부근에서 무서운 스피드를 내기 시작했다. 나카무라를 떼어 놓은 손기정은 독주를 계속해 4만 관중의 환호 속에 메이지신궁경기장에 들어가 우승했다. 2시간26분42초의 ‘공인’ 세계최고기록이 탄생하는 순간이었고 그해 4월 일본의 이케나카 야스오가 세운 종전 세계최고기록 2시간26분44초를 2초 단축한 것이다.

▲ 서윤복 원로(오른쪽) ⓒ연합뉴스

손기정은 이미 서울에서 여러 차례 마라톤 세계최고기록을 마크했으나 일본육상경기연맹은 그때마다 자기네가 공인한 코스가 아니라는 이유로 손기정의 세계최고기록을 인정하지 않았다. 손기정은 1934년 4월 22일 제2회 풀 마라톤대회에서 2시간24분51초 그리고 1935년 5월 18일 제3회 풀 마라톤대회에서는 2시간24분28초의 엄청난 세계최고기록을 각각 수립했다. 그러나 조선체육회가 주최한 풀 마라톤대회는 일본육상경기연맹이 공인한 코스가 아니라는 이유로 손기정의 기록은 공인되지 않았다.

1935년 4월 27일 손기정은 한반도에 있는, 일본인 경기 단체인 조선육상경기협회가 주최한 제1회 마라톤대회에 출전해 2시간25분14초의 세계최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주최 측인 조선육상경기협회는 서울에서 치르는 마라톤이 공인되지 않은 짧은 코스라는 일본육상경기연맹의 주장이 마땅치 않아 이 대회는 정규 코스 42.195km보다 520m를 더 잡았다. 정규 코스보다 520m나 더 긴 코스에서 세운 세계최고기록인데도 일본육상경기연맹은 공인하지 않았다.

◇마라톤 강세 한반도 북쪽…해방 후에는 시들해져

우여곡절 끝에 손기정 선생이 공인 받은 세계최고기록은 곧이어 한국인이 새롭게 썼다. 1947년 4월 19일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서윤복이 2시간25분39초로 골인했다.

한국에 강한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던 일본은 자국에서 열린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츠브라야 고기치가 동메달,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기미하라 겐지가 은메달을 차지했지만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에서 모리시타 고이치가 황영조에게 ‘몬주익 혈투’에서 밀려 은메달에 그치며 2017년 현재 올림픽 마라톤 남자부에서 금메달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여자부에서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다카하시 나오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노구치 미즈키가 각각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1945년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갈린 가운데 이후 북한 마라톤은, 평안북도 신의주가 고향인 손기정 선생과 함경남도 단천 태생인 최윤칠 선생(1950년 보스턴마라톤대회 3위, 1952년 헬싱키 올림픽 마라톤 4위, 1954년 마닐라 아시아경기대회 5000m 금메달) 같은 우수 선수를 낳은 지역이지만 침체기에 빠졌다. 처음으로 올림픽에 출전한 1972년 뮌헨 대회에서 김창선은 37위, 류만형은 49위에 그쳤다. 한국은 ‘소수 정예 주의’ 원칙에 따라 입상 가능성이 없는 마라톤에 출전하지 않았다.

북한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김창선이 44위,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서 고춘선이 27위, 이종형이 29위, 최창섭이 33위를 하는 등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꾸준히 마라톤에 출전했다. 한국은 몬트리올 대회에도 마라톤에 선수를 보내지 않았다. 마라톤 팬들이 잘 알고 있듯이 1970년대는 한국 마라톤이 2시간20분벽을 좀처럼 깨지 못하는 암흑기였다.

1980년대 주요 국제 대회를 건너뛴 북한은 황영조가 금메달 레이스를 펼친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류옥현이 2시간40분15초의 형편없는 기록으로 80위, 이봉주가 은메달을 차지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김중원(뒤에 나오는 북한 여자 마라톤의 영웅 정성옥과 결혼)이 2시간20분19초로 38위를 기록하는 등 발전의 기미를 보이지 못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서도 올림픽에 빠지지 않고 출전하고 있으나 한 차례도 10위 안에 들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경기대회서는 한국이 1958년 도쿄 대회부터 2010년 광저우 대회 지영준까지 연인원 7명(이봉주 1998년 방콕, 2002년 부산 대회 금메달)의 우승자를 배출한 반면 북한은 1978년 방콕 대회에서 최창섭과 고춘선이 2, 3위를 기록했고 1990년 베이징 대회에서 최철호가 3위, 1998년 방콕 대회에서 김중원이 3위를 했을 뿐이다.

한국이 1990년대 초반 혜성과 같이 나타난 황영조에 힘입어 1992년 올림픽과 1994년 히로시만 아시아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의 영광을 누리자 북한에서는 여자 마라토너가 샛별처럼 나타났다.

▲ 2013년 제14회 모스크바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북한 선수단장으로 참가한 '마라톤 영웅' 정성옥 ⓒ연합뉴스

◇북한 마라톤의 영웅 정성옥

주인공은 정성옥이다. 정성옥은 2000년대 초 국내의 한 TV방송과 평양에서 자신의 근황을 전하는 인터뷰를 했는데 이때 ‘백공오리’라는 말을 썼다. 매우 낯선 말이지만 금세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마라톤 풀코스는 대략 42km이고 이는 105리다. 한국에서는 ‘백오리’로 읽지만 북한에서는 ‘백공오리’로 읽는 것 같았다. 북한 사람들의 숫자 읽는 법은 한국과 다소 다르다. 나중에 알아보니 북한에서는 마라톤을 ‘백공오리’라고도 한다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2시간35분31초의 썩 좋지 않은 기록으로 20위에 그쳤던 정성옥은 3년 뒤인 1999년 세비야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일본의 이치하시 아리(2시간27분2초)와 루마니아의 리디아 시몬(2시간27분41초)을 따돌리고 2시간26분59초로 골인해 북한 마라토너 가운데 처음으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

예상 밖의 선수가 1위로 들어오자 각국 취재진은 한편으로는 당황하고 한편으로는 통역이 이뤄지지 않아 난감해 했다. 이때 세비야 대회에 74살의 나이로 한국 기자로는 유일하게 취재에 나섰던 조동표 원로(2012년 작고)가 정성옥의 통역을 맡았다. 정성옥는 2003년 제주도에서 열린 한민족체육문화축전에 참석해 세비야 대회에서 자신을 도운 조동표 기자를 다시 만났다. 정성옥은 북에서 준비해 온 선물을 전하며 조동표 기자에게 다시 한번 고마워했다.

정성옥의 뒤를 이은 선수로는 1998년 방콕 대회 은메달리스트 김창옥, 2002년 부산 대회 금메달리스트 함봉실(남자부 한국 이봉주와 동반 우승해 ‘봉봉 자매’로 불렸다), 2010년 광저우 대회 동메달리스트 김금옥 등 아시아경기대회 메달리스트들이 있다. 이들 가운데 김금옥이 2시간 27분 대 개인 최고 기록을 갖고 있을 뿐 북한 여자 마라토너들도 남자 선수들처럼 국제 경쟁력이 높지 않다.

2000년대 이후 한국과 북한은 물론 한때 마라톤 강국이라고 자부하던 일본이 세계 무대에서 급격히 밀리고 있는 것은 자체 사정도 있지만 아프리카 세가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특히 케냐는 남녀부에 걸쳐 압도적인 전력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난 10일 파리 마라톤대회에서는 부부 선수가 남녀부에서 우승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남북과 남녀를 통틀어 한반도 마라톤이 세계 수준을 따라잡는 건 당분간 어려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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