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 10월 11일 평양 5∙1 경기장에서 열린 남북통일축구경기대회에 출전한 남북한 선수들이 손을 맞잡고 경기장에 들어오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단일팀 관련 남북 체육 회담이 결렬돼 한국과 북한이 독자적으로 출전한 가운데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가 한창 진행되던 9월 29일 남북 양측은 평양과 서울에서 '남북통일축구경기대회'를 갖는다는 내용의 합의 사항을 발표했다.

*교환 경기 명칭: 남북통일축구경기대회
*경기 일정
1차 경기:10월 11일, 평양
2차 경기:10월 23일, 서울
*참가 인원: 남자 및 여자 축구 선수단, 보도진 및 그밖의 관계 인원
*남 측 인솔 책임: 정동성 체육부 장관

이 같은 합의가 가능한 배경에는 9월 5일 서울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 회담과 곧이어 10월 17일 평양에서 개최될 제2차 회담이 있었다. 마침 베이징 대회에는 남 측에서는 장충식 남북체육회담 수석 대표가 한국 선수단 단장으로 참가하고 있었고 북 측에서는 김형진 남북 체육 회담 단장이 파견돼 있었다.

순수한 남북 체육 회담의 범주에서 남북 축구 교환 경기의 실현 가능성을 협의하라는 정부의 훈령을 받은 받은 장충식 단장은 여러 차례에 걸쳐 북 측의 김형진과 접촉한 결과 1946년 경평전을 끝으로 단절된 남북 축구의 교류는 물론 남북 스포츠 교류 전반에 걸친 역사적인 합의를 이뤘다.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 폐막 다음 날인 10월 9일 남녀 축구 대표 선수들을 포함한 남 측 선수단은 북 측이 제공한 조선민항(고려항공 전신)을 타고 평양으로 갔다. 이틀 뒤인 11일 평양 능라도에 있는 5∙1 경기장에서 벌어진 1차 경기에서 북 측은 윤정수와 탁영빈, 남 측은 김주성이 골을 넣어 2-1로 북 측이 이겼다. 그러나 승패가 중요한 경기가 아니었다.

경기 외적으로도 남북한 동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 일이 있었다. 남 측 선수단 고문 자격으로 평양에 간 이회택 포철 감독은 꿈에도 그리던 아버지 이용진 씨를 만나 감격의 포옹을 했다. 1차 경기를 마친 남 측 선수단은 14일 판문점을 통과해 서울로 돌아왔다.

김유순 북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북 측 선수단은 10월 21일 판문점을 통과해 서울로 왔다. 이틀 뒤인 23일 잠실 올림픽 주 경기장에서 벌어진 2차 경기에서 남 측은 황선홍의 골로 1-0으로 이겼다.

남북통일축구경기대회가 열리는 동안 남북 관계자 사이에서 모처럼 이뤄진 통일축구경기대회의 정례화를 비롯한 남북 체육 교류의 실현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그 결과 북 측 선수단이 평양으로 돌아가는 25일 아래와 같은 공동 합의문이 발표됐다.

*공동 합의문

남 측의 체육부 장관과 북 측의 김유순 국가체육위원회 위원장 겸 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은 1990년 10월 24일 서울에서 회합을 갖고 지난 10월 12일 평양에서 합의한 사항의 이행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제1차 남북체육회담을 1990년 11월 29일 오전 10시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개최 한다.

*회담 의제는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제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 경기대회, 제3회 삼 지연 동계 아시아경기대회 및 기타 주요 국제경기대회에 쌍방이 단일팀을 구성하여 참가하는 문제로 한다.

*남북통일축구경기대회의 정례화 문제와 기타 남북 체육 교류 문제는 위의 남북체육회담에서 협의 결정한다.

공동 합의문에서 밝히고 있는 평양에서 합의된 내용은 정동성 체육부 장관이 10월 13일 판문점에서 가진 평양 방문 결산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내년부터 열리는 각종 국제 대회에 남북한이 단일팀을 구성해 출전하기로 북한 측과 원칙적으로 합의를 봤다. 단일팀 구성을 위한 남북 체육 회담을 최단 시일 내에 개최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을 말한다.

공동 합의문에 따라 11월 29일 판문점에서 열린 제1차 회담에서 남 측은 회담 의제를 1)남북통일축구경기대회의 정례화를 비롯한 남북 체육 교류의 실현 문제 2)국제 경기 대회 남북한 단일팀 구성, 참가 문제로 하고 의제 1)의 구체적 실현 방안으로 남북통일축구경기대회를 비롯한 종목별 친선 경기의 교환 개최, 쌍방이 주최하는 주요 경기 대회의 상호 참가, 전지훈련의 교환 실시, 체육 학술 회의의 공동 개최, 각종 경기 및 정보의 교환, 체육 기자들의 상호 방문 등을 제시했고 의제 2)와 관련해서는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 단일팀 구성 회의에서 원칙적으로 합의한 바 있는 내용을 기본적으로 준용해 구체적 문제들을 협의해 나가되 사안의 완급을 고려해 남북통일축구경기대회의 정례화 문제와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일팀 구성, 참가 문제를 우선적으로 토의할 것을 제의하면서 이에 대한 합의서 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북 측은 애초 이 회담 개최의 주요 사항 가운데 하나인 남북통일축구경기대회의 정례화 문제에 대해서는 거론조차 하지 않은 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바르셀로나 올림픽 그리고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의 단일팀 구성 문제에 대한 토의를 요구해 의제의 합의도 이루지 못한 채 헤어졌다. 그리고 북 측은 팀스피리트 훈련을 구실로 12월 하순으로 예정돼 있었던 제4차 고위급 회담을 유산시키면서 남북 체육 회담의 앞날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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