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조여정이 '완벽한 아내' 이은희 역으로 열연했다. 사진|한희재 기자
[스포티비스타=문지훈 기자] “’노력하는 배우’라는 댓글을 보고 가슴이 찡했다. 드디어 대중에게 연기에 대한 내 진심을 전달했다는 생각에 감동했다. 진심은 언젠가 통한다는 진리를 얻었다.”

배우 조여정(36)은 지난 두 달간 KBS2 월화드라마 '완벽한 아내'(극본 윤경아, 연출 홍석구)의 이은희로 살았다. 이은희는 주인공 심재복(고소영 분)에게 큰 시련을 주는 인물이다. ‘억척스러운 아줌마 심재복이 고난을 겪은 뒤 새 희망과 사랑을 찾는 이야기’ 속에서 이은희는 심재복의 주변 인물 정도에 그칠 것으로 대중은 예상했다. 

하지만 조여정은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완벽한 아내’의 흐름을 이은희에게 쥐어줬다. 조여정은 이은희를 입고 ‘희대의 악녀’ ‘사이코패스의 정점’ ‘주연보다 빛나는 악역’ 등 수식어를 만들어내며 시청자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방송이 끝나면 ‘완벽한 아내’ 관련 기사 댓글창은 조여정을 향한 극찬으로 가득했다. 

“나는 원래 댓글을 안 본다. 지인들은 내가 댓글 안 보는 것을 아니까 ‘완벽한 아내’ 반응을 캡처해서 보내줬다. 원래는 악플이 종종 달렸는데, 이번에는 칭찬으로만 가득했다. 누가 좋은 반응만 모아서 편집한 줄 알았다. 정말 감동받아서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나의 노력, 그리고 잘 하고 싶어하는 진심을 알아주셔서 감사했다. 노력하지 않는 배우는 없지만 사람들이 알아주지 못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운이 좋았다.”

▲ 배우 조여정은 이은희 역으로 '희대의 악녀' 수식어를 얻었다. 사진|한희재 기자
이러한 호평 뒤에는 뼈를 깎는 노력이 있었다. 이은희는 극 초반 친절해 보였지만 점차 사이코 면모를 드러내는 인물이다. 극중 사랑하는 구정희(윤상현 분)를 향해 광기에 가까운 집착을 보여주며 작품 전반을 뒤흔들었다. 납치, 감금, 살해 등 연이은 악행으로 스스로에게는 물론이고 주변 인물들에게 큰 파장을 줬다. 조여정은 순진해 보였던 이은희가 변화하는 과정을 물오른 연기력으로 담아냈다.

“사이코 캐릭터에 도전해보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어려웠다. 이은희를 연기하면서 정신적으로 피폐해졌다. 뇌에 쥐가 나는 기분이었다. 구정희를 향한 애정 표현도 도가 넘는다. 집착에서부터 감정 연기를 시작해야 하는데 나는 무언가에 집착해 본 적이 없어서 감정을 잡기 힘들었다. 구정희 역을 맡은 윤상현 오빠에게 최대한 집중했다. 또 촬영 내내 이은희의 아픈 과거를 상기했다. ‘나는 한 번도 사랑받은 적 없다’ ‘학대받고 자랐다’ ‘대학교 때 구정희에게 처음 호의를 받아보고 사랑에 빠졌다’고. 그렇게 노력하면서도 이은희의 광기가 걷잡을 수 없게 심해질 때는 힘들었다. 촬영을 안 할 때도 부담은 여전했다. 다음 장면을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 찍었던 장면을 더 잘 소화했어야 한다는 후회가 머리를 지배했다.”

조여정은 이은희의 감정을 따라가기 위해 대본 분석을 어느 때보다 철저히 했다. 이로 인해 받은 스트레스는 평소에도 나타났다. 

조여정은 “잠을 자면 촬영하는 꿈을 꿨다. 이은희를 소화하려면 대본을 많이 보고 생각도 많이 해야 하는데, 꿈에서 대본만 든 채 촬영장에 갔다. 총알 없이 전쟁터에 나간 기분이 들어 무서웠다. ‘아직 분석 안 됐는데 어떡하지’ ‘오늘은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 등을 걱정하면서 잠을 잤다. 그러다가 꿈에서 깨면 촬영하러 갔다”고 회상했다. 

작품 종영 후에야 이처럼 고생담을 공개하지만, 촬영 중간에는 누군가에게 힘든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조여정은 “마인드 컨트롤을 잘 하는 편이다. ‘완벽한 아내’도, 이은희도 내가 선택했으니 힘들다고 엄살 부리기 싫었다. 복잡한 줄거리, 캐릭터를 소화하는 일도 다 배우의 몫이다. 열심히 해서 성과를 내고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고 털어놨다. 

▲ '완벽한 아내'에서 이은희(조여정 분)는 죽음을 맞이했다. 사진|KBS2 방송화면 캡처
2개월간 이은희 캐릭터와 동고동락하며 고생한 만큼 이은희에 대한 애착도 크다. 모두가 무섭다고 한 마지막 회 장면을, 조여정은 아프다고 했다. 마지막 회에서 이은희는 자신의 저택에 불을 지르고 자살을 택했다. 불길 속, 죽음이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이은희는 섬뜩하게 웃으며 운명을 맞이했다. 

“마지막에 이은희가 웃는 장면은 슬펐다. 살 의지가 있었으면 뛰쳐나갔을 텐데 그냥 웃으면서 앉아 있었다. 이은희는 사실 불쌍한 캐릭터다. 사랑을 포함해 모든 것을 잃고 삶의 의지까지 상실했다. 마지막 모습이 무섭다는 반응은 이해가 조금 안 갔다. 하지만 내 의도와 다르게 보였다면 그건 내 잘못이다.”

아꼈던 인물이 죽는 결말이 아쉽지 않냐는 질문에는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정말 좋았다.작품 주제에 걸맞은 결말이다. 심재복이 고난을 겪고도 두 아이의 엄마로 씩씩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주요 메시지다. 이은희는 적당할 때 떠났다. 심재복도 이제는 편하게 살아야 한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조여정은 지난해 KBS2 단막극 ‘베이비시터’에 이어 ‘완벽한 아내’에서 연이어 강렬한 인물을 맡았다. ‘베이비시터’ 천은주, ‘완벽한 아내’ 이은희 캐릭터 모두 사랑과 질투에 눈이 멀어 살인까지 하는 인물이다. 이은희에게서 천은주가 보였다는 말에, 조여정은 “배우 입장에서 보면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르다”고 말문을 열었다.

“천은주는 낯선 여자에게 남편을 빼앗긴 피해자다. 이은희는 남의 남편에게 집착하는, 정신이 이상한 여자다. 보는 사람들은 비슷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는데, 인물들을 소화하는 배우 입장에서는 정말 다르다고 느낀다. 처한 상황도, 느끼는 감정도, 주변 인물들도 같은 부분이 없다.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이은희와 천은주에게 접근했다.”

▲ 배우 조여정이 이은희 캐릭터에 대한 애착을 보여줬다. 사진|한희재 기자
조여정은 ‘베이비시터’에 이어 ‘완벽한 아내’를 통해 극찬받았다. ‘대상을 받을 타이밍’이라는 반응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조여정은 “그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대상받기에 나는 어리지 않냐’고 반문했더니 다들 정색을 하면서 ‘뭐가 어리냐’고 하셨다. 어리다는 말은 함부로 하지 말아야겠다”며 웃었다. 

이어 “대상은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근영 씨가 22세에 대상을 받았다는데, 그는 그만큼 연기를 잘 해서 받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부족하다. 20년간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연기가 점점 나아진 것처럼, 앞으로도 발전할 것이라 믿는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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