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6년 태릉선수촌이 문을 열기 전까지 한국 격투기 종목의 메카였던 한국체육관(서울시 중구 초동) 이상균 전 태릉선수촌장은 한국체육관의 마지막 관장이다. 1956년 멜버른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송순천(복싱), 1964년 도쿄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장창선(레슬링) 등 수많은 격투기 종목 선수들이 이곳에서 기량을 갈고닦았다. ⓒ대한체육회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레슬링은 인류 역사와 함께한 종목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인간과 인간 또는 인간과 동물이 몸으로 싸우는 건 생존을 위한 원초적인 행위였다.

고대 이집트 왕조 중기(BC 2131∼BC 1786) 유물에서는 레슬링과 비슷한 움직임이 새겨진 것들이 발견됐다. 메소포타미아 등 고대 국가에서는 레슬링 경기가 있었으며 지중해 에게 문화를 거쳐 고대 그리스에 계승돼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를 잡았고 BC 776년 시작한 고대 올림픽 주요 종목이 됐다. 고대 올림픽에서는 3판 2승제의 토플링 경기와 레슬링과 복싱을 혼합한 형태로, 한쪽이 항복해야 끝나는 판크라티온이 있었다.

​로마 시대로 접어들 무렵에는 고액의 상품을 걸게 돼 이에 눈독을 들인 직업적인 선수들이 판을 치는 등 타락했고 경기 내용도 야만적으로 변질됐다. 로마인들은 예전의 레슬링에 창의성을 더해 새로운 규칙을 제정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그레코로만형의 원형이 됐다.

중세 시대 기사(騎士)라면 반드시 익혀야 할 필수적인 무예의 하나로 레슬링이 장려됐다. 그러나 16세기에 화약 무기가 생기면서 레슬링은 무예로서 의의가 사라지고 순수한 경기로 탈바꿈했다. 이 무렵 영국의 랭커셔 지방에서 파생한 독특한 형태의 레슬링이 오늘날 자유형의 원형이 됐다.

레슬링이 이 땅에 소개된 것은 1935년 전후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서였다. 그 무렵 일본 대학 레슬링의 강호 와세다·메이지대학 등에서 활약하며 일본 대학선수권을 차지할 정도로 명성을 떨친 곽동윤 김극환 김종석 김석영 황병관 등이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레슬링은 1942년 4월 도쿄 유학생 팀과 조선선발 팀 경기가 열리면서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는데 이에 앞서 1939년에는 일본에서 열린 범태평양경기대회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조순동이 참가했다. 1941년 4월에는 YMCA 주최로 서울에서 제1회 전조선레슬링선수권대회가 열렸다. 해방 이후 1946년 3월 조선아마추어레슬링협회가 결성됐고 그해 11월 제 1회 전국아마추어레슬링선수권대회가 열렸다.

1948년 8월 다른 단체들과 발 맞춰 조선에서 대한으로 이름을 바꾼 대한아마추어레슬링협회가 FILA(국제아마추어레슬링연맹)에 가맹했다. 어렵사리 꾸려진 1948년 런던 올림픽 선수단에 레슬링은 육상 사이클 역도 복싱 축구 농구 등과 함께 들어갔다. 감독 겸 선수인 김극환(페더급) 외에 한상룡(밴텀급) 김석영(라이트급) 황병관(웰터급) 등 4명의 자유형 선수가 출전했으나 모두 2회전의 벽을 넘지 못했다.

한국전쟁 기간 열린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는 육상과 역도, 복싱, 승마, 사이클 등 모두 44명의 선수단이 참가했는데 레슬링은 자유형 라이트급 오태근이 유일하게 출전했다. 그러나 4년 전 런던 올림픽 때처럼 2회전에서 탈락했다.

2010년 작고한 이상균 전 태릉선수촌장은 올림픽 레슬링 종목에서 처음으로 이렇다 할 성적을 올린 개척자다. 이 전 촌장은 1956년 멜버른 올림픽 자유형 밴텀급 1회전에서 필리핀의 라멜을 폴로 꺾은데 이어 2회전에서 파키스탄의 자후르를 2-1 판정으로 물리쳤고 3회전을 부전으로 통과하면서 메달 문턱까지 갔다. 그러나 4회전에서 일본의 이즈카에게 0-3 판정으로 져 4위가 됐다. 이 전 총장 외에 자유형 플라이급 이정규와 라이트급 오태근이 2회전에서 떨어졌다.

이 전 촌장은 그 무렵 ‘손가락 없는 레슬러’로 화제를 모았다. 이 전 촌장 왼손은 엄지부터 중지까지 세 손가락이 없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수류탄 뇌관이 터지는 바람에 세 손가락이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레슬링은 유도와 같이 악력(握力)이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 전 총장은 세 손가락이 없으면서도 이를 악물고 매트 위에서 땀을 뿌렸다. 이 전 촌장은 은퇴한 뒤 지도자가 돼 1964년 도쿄 올림픽 자유형 플라이급 은메달리스트인 장창선을 비롯해 수많은 국가 대표 선수들을 키워 내고 대한아마추어레슬링협회 부회장을 지냈다. 또 태릉선수촌 이전 시기에 우리나라 격투기 종목의 메카였던 한국체육관의 마지막 관장이기도 하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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