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4년 도쿄 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플라이급에서 은메달을 딴 장창선(가운데) 오른쪽은 1960년대 한국 스포츠를 이끈 민관식 대한체육회장 ⓒ대한체육회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2010년 작고한 이상균 전 태릉선수촌장은 올림픽 레슬링 종목에서 처음으로 이렇다 할 성적을 올린 개척자다. 이 전 촌장은 1956년 멜버른 올림픽 자유형 밴텀급 1회전에서 필리핀의 라멜을 폴로 꺾은데 이어 2회전에서 파키스탄의 자후르를 2-1 판정으로 물리쳤고 3회전을 부전으로 통과하면서 메달 문턱까지 갔다. 그러나 4회전에서 일본의 이즈카에게 0-3 판정으로 져 4위가 됐다. 

이 전 촌장은 그 무렵 ‘손가락 없는 레슬러’로 화제를 모았다. 이 전 촌장 왼손은 엄지부터 중지까지 세 손가락이 없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수류탄 뇌관이 터지는 바람에 세 손가락이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레슬링은 유도와 같이 악력(握力)이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 전 총장은 세 손가락이 없으면서도 이를 악물고 매트 위에서 땀을 뿌렸다. 이 전 촌장은 은퇴한 뒤 지도자가 돼 1964년 도쿄 올림픽 자유형 플라이급 은메달리스트인 장창선을 비롯해 수많은 국가 대표 선수들을 키워 내고 대한아마추어레슬링협회 부회장을 지냈다. 또 태릉선수촌 이전 시기에 우리나라 격투기 종목의 메카였던 한국체육관의 마지막 관장이기도 하다. <1편에서 계속>

레슬링은 1948년 런던 대회 이후 한국전쟁 와중에 열린 1952년 헬싱키 대회를 비롯해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1960년 로마 대회까지 ‘노메달’이었다. 아시아경기대회도 한국이 첫 출전한 1954년 제2회 마닐라 대회부터 출전했지만 1962년 자카르타 대회까지 거둔 성적은 1954년 대회 은메달 1개와 동메달 2개, 1958년 도쿄 대회 동메달 2개, 1962년 대회 은메달 1개와 동메달 2개가 전부였다. 오늘날 효자 종목 가운데 하나로 자리를 잡은 것과 비교해 보면 1960년대 초반까지 레슬링의 위상은 초라해 보이기까지 할 정도다.

1962년 자카르타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은메달을 차지하며 상승세를 타고 있던 장창선은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실시한 일본 전지훈련에서 메이지대학 등 일본의 레슬링 명문 대학 우수 선수들과 연일 스파링을 하며 자신감을 키웠다. 장창선은 도쿄 대회 자유형 플라이급 결승전에서 일본의 요시다 요시가츠에게 판정으로 져 올림픽 금메달 문턱에서 좌절했다. 그러나 2년 뒤인 1966년, 장창선은 미국 오하이오주 톨레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선수로는 모든 종목에 걸쳐 처음으로 세계선수권자가 됐다. 장창선은 피나는 노력으로 세계 정상에 올랐지만 그 과정에서 일본의 벽을 실감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일본은 1924년 파리 대회에서 자유형 페더급 나이토 가츠도시가 첫 올림픽 메달(동)을 획득했고 1952년 헬싱키 대회에서 이시이 소하치가 자유형 페더급 금메달을 땄다. 한국이 레슬링에서 처음으로 메달을 얻은 도쿄 올림픽에서는 자유형과 그레코로만형에 걸쳐 금메달 5개(동메달 1개)를 휩쓸었다. 종합 3위에 오른 일본 선수단 금메달의 1/3일 정도로 일본 레슬링은 강했다.

1968년 멕시코시티 대회와 1972년 뮌헨 대회에는 자유형과 그레코로만형에 걸쳐 각각 8명과 4명의 선수가 출전했으나 올림픽 메달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나름대로 선전하고 있었다.

1966년 방콕 대회에서는 자유형 페더급 장경무, 웰터급 서용석이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어 또다시 방콕에서 열린 1970년 대회에서는 자유형 밴텀급 안재원이 은메달, 주니어플라이급 김화경과 플라이급 김영준 그리고 페더급 김문기가 동메달을 차지했다. 

중국과 북한의 등장으로 아시아 스포츠 무대가 큰 변화를 겪은 1974년 테헤란 대회에서는 자유형 페더급에서 양정모가 아시아경기대회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기록했다. 2년 뒤인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다시 만나 또다시 양정모에게 밀리는 몽골의 제베그 오이도프가 이 체급의 은메달을 차지했다. 그레코로만형 플라이급 백승현, 밴텀급 안한영, 라이트급 배기열, 웰터급 김용식은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자유형 라이트급 장호성, 그레코로만형 주니어 플라이급 방대두, 페더급 최경수는 동메달을 땄다.

2020년 도쿄 올림픽 정식 종목에서 일시적으로 탈락하는 아찔한 경험을 한 레슬링은 ‘재미없다’는 여론에 맞서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경기 방식이다. 그런데 경기 방식이 지나치게 자주 바뀌어 레슬링 담당 기자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 않으면 경기 방식을 숙지하지 못해 엉뚱한 기사를 쓰기도 한다. 양정모의 올림픽 금메달(1976년 몬트리올)은 당시 적용되고 있던 벌점제가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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