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헨티나와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는 이승우.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한국 축구가 월드컵과 올림픽 등 주요 국제 대회에서 경우의 수를 따지지 않고 1라운드를 통과하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한국은 23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A조 조별 리그 2차전 아르헨티나와 경기에서 2-1로 이겼다. 기니와 1차전 3-0 완승에 이어 2연승을 거둔 한국은 산뜻하게 16강이 겨루는 녹다운 스테이지에 올랐다.

한국의 조별 리그 통과에 도움을 준 상대가 축구 강국 아르헨티나라는 사실이 축구 팬들에게 즐거운 선물이 됐을 것이다. 23일 경기를 보는 내내 26년 전 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1991년은 30대 중반 이상 스포츠 팬들에게는 가슴 뭉클했던 해로 기억될 것이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 기간 합의한 대로 그해 10월 평양과 서울에서 ‘남북통일축구경기대회’가 열렸고 탄력을 받은 남북 스포츠 교류는 이듬해인 1991년 탁구와 청소년 축구 남북 단일팀(유일 팀)을 꾸리는 성과를 올렸다. 단일팀을 만든 데 의의를 두는 수준이 아니었다.

남북이 힘을 모은 ‘코리아’는 그해 5월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 단체전에서 중국을 게임 스코어 3-2로 누르고 코르비용 컵을 들어 올렸다. 이어서 그해 6월 포르투갈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FIFA U 20 월드컵 전신)에서 1라운드를 통과해 8강에 오르는 휼륭한 성적표를 받았다.

그해 청소년 축구 남북 단일팀과 관련한 몇 가지 일들을 소개한다.

포르투갈 대회에 남북은 당당하게 단일팀 ‘코리아’를 보냈다. 당당하다는 표현을 쓴 까닭이 있다. 한국 축구사에 찬란히 빛나고 있는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4강은 곡절이 있었다.

한국은 1982년 8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동부 지역 예선 준결승에서 북한에 3-5로 진 뒤 3위 결정전에서 태국을 4-1로 물리치고 3위에 입상했다. 그런데 북한은 그해 11월 뉴델리에서 벌어진 아시아경기대회에서 경기 결과에 불만을 품고 주심을 폭행해 아시아축구연맹으로부터 2년 동안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이에 따라 한국은 그해 12월 열린 멕시코 대회 아시아 지역 예선에 북한을 대신해 중국과 함께 동부 지역 대표로 출전해 2승1무로 1위에 올라 본선에 나가게 됐다. 한국에는 행운이, 북한에는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을 스스로 걷어차는 미스플레이가 ‘멕시코 4강 신화’ 이면에 있었다.

1991년 포르투갈 대회에서는 이런 일이 없이 깔끔하게 본선에 나섰다. 1990년 11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시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은 나란히 결승에 올랐다. 한국이 승부차기 끝에 북한을 4-3으로 이겨 남북이 우승, 준우승을 나눠 가졌다.

그리고 남북 단일 ‘코리아’를 이뤄 본선 조별 리그에서 강호 아르헨티나를 1-0으로 꺾고 8강에 올랐다. 그 경기 후반 43분 미드필드에서 날린 조인철의 슈팅은 아르헨티나 골대를 향해 한참을 날아갔다. 그런데 공이 골망을 흔들기도 전에 아나운서의 “골, 골, 골”이라는 소리가 터졌다. 그림보다 소리가 먼저 오는 위성중계 특성 때문이었다.

조별 리그 A조 첫 경기에서 아르헨티나를 잡은 ‘코리아‘는 2차전에서 경기 종료 직전 최철의 극적인 골로 아일랜드와 1-1로 비겨 8강 진출 가능성을 높였다. 이어 개최국 포르투갈과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0-1로 졌으나 1승1무1패 승점 4점으로 아일랜드(2무 1패 승점 2점)와 아르헨티나(1무 2패 승점 1점)을 제치고 조별 리그를 통과했다.

녹다운 스테이지 진출로 할 만큼 한 ‘코리아’는 8강전에서 브라질에 1-5로 졌으나 수비적인 축구를 하지 않고 정면으로 치고받는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다. 포르토에 있는 에스타디오 다스 안타스 구장에 모인 2만5,000여명 관중이 ‘코리아’를 응원하는 소리가 TV로 생생하게 들렸다.

1991년 5월, ‘코리아’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출전에 앞서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합동 훈련을 했다. 서울에서는,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동대문 운동장에서 프로 구단 유공과 평가전을 치렀다. 외국인 선수가 포함된 유공은 신체 조건에서 ‘코리아’를 압도했고 경기 내용도 유공이 크게 앞섰다. 그러나 동대문 운동장을 가득 채운 관중들은 일방적으로 ‘코리아’를 응원했고 이런 성원의 열기는 포르투갈까지 이어졌다.

서울 훈련 때 ‘코리아’팀 환영 행사가 시내 어느 호텔에서 열렸다. 북 측의 윤철은 잘생긴 얼굴과 뛰어난 기량으로 행사장에서 단연 인기였다. 윤철은 동대문 운동장에서 열린 유공과 평가전 때도 ‘코리아’ 선수 가운데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다. 그때 김형직사범대학에 재학하고 있던 윤철에게 넌지시 물었다. “남쪽 직업 축구단에서 뛰어 볼 생각 없습니까.” 시원한 답이 곧바로 돌아왔다. “불러만 주시라요.”

‘코리아’에는 ‘철’이 들어가는 이름이 유난히 많았다. 아르헨티나전 결승 골의 주인공 조인철과 아일랜드전에서 동점 골을 넣은 최철 그리고 윤철(이상 북 측)과 박철, 강철, 한연철(남 측) 등이 한국 축구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대회를 마친 뒤 포르투갈에서 평양으로 직행해 그곳에서 환영 행사를 마친 ‘코리아’의 남 측 선수들은 두 달여에 걸친 평가전과 합숙 훈련 그리고 대회 출전 등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판문점 북 측 지역인 통일각까지 마중 나온 북 측 선수들과 헤어졌다.

판문점 남 측 지역으로 내려오는 선수들의 눈은 한결같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여자 친구 사진를 서로 보여 줄 정도로 친하게 지낸 시간들이었다.

초여름 밤에 기분 좋게 펼쳐지고 있는 청소년들의 축구 잔치를 보며 떠오른 기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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