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한수진, "고생한 선수들 목소리도 귀 기울여 주셨으면"

② '영 캡틴' 머리 감독 "한국 팀이 성장할 때 나도 발전"

③ '소녀들이여 스틱을 잡아라' 빙판 여전사들이 꿈꾸는 세상은?

[스포티비뉴스=취재 조영준 기자, 영상 정찬 기자] 1998년 창단된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 팀은 국제 대회에 도전하기에는 여전히 걸음마 배우기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정몽원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의 지원으로 탄력을 받았다.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선수들을 이끌어 줄 능력 있는 지도자였다. 무엇보다 같은 여자 선수 경험이 있고 선진 아이스하키 경험이 풍부한 이가 필요했다. 

이런 점에서 새러 머리(29, 캐나다) 감독은 누구보다 한국과 안성맞춤이었다. 새러 머리는 아이스하키계의 거장 앤디 머리의 딸이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스틱을 잡고 빙판을 누빈 그는 일찌감치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미국 미네소타에서 20세 이하 팀을 지도하던 그는 백지선(50) 남자 대표 팀 감독의 제의로 2014년 한국 땅을 밟았다. 아직 서른이 되지 않은 젊은 지도자인 그는 '외인부대'인 한국의 조직력을 강화했다. 또한 분명하지 않았던 목표 의식도 심어 줬다. 대표 팀의 맏언니인 한수진(30)은 "(머리 감독이) 오신 뒤에는 훈련 시스템이 체계가 잡혔고 한층 진지해졌다"고 밝혔다.

선수들과 비슷한 또래의 외국인 지도자는 어딘가 어색해 보인다. 그러나 '소통의 리더십'을 살려 한국의 전력을 몇 단계 끌어올렸다. 훈련할 때는 선수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지만 공과 사는 매우 뚜렷했다. 선수들과 사적인 만남을 갖지 않는다고 밝힌 머리 감독은 "한국 팀이 성장할 때 나도 함께 성장했다"고 말했다.

아이스하키의 변방 국가 한국과 만남은 좋은 기회

한국은 지난 4월 강원도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IIHF 세계여자선수권대회 디비전 Ⅱ 그룹 A에서 5전 전승으로 우승했다. 승격이 확정된 한국은 머리 감독을 헹가래 쳤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열정 하나만을 믿고 달려온 '외인부대'와 아이스하키 선진국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고 온 젊은 지도자의 조화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

한국 팀의 성장과 함께 주목을 받은 것은 머리 감독의 지도력이었다. 선수들의 뜨거운 열정만큼 첫 시니어 대표 팀의 지휘봉을 잡은 젊은 감독의 뜨거운 가슴도 만만치 않았다.

"제 생각에는 선수들에게 주어진 기회를 잡게 만드는 것이 좋은 리더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3년간 선수들에게 많은 기회가 있었죠. 많은 국제 대회에 출전하고 훈련했는데 저는 선수들이 더 나은 길로 갈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했고 이들을 도왔다고 생각해요. 선수들은 이 기회를 잘 받아들여 더 나은 선수가 됐죠."

첫 시니어 팀으로 아이스하키의 변방 국가인 한국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머리 감독은 이 기회를 새로운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한국 팀 감독 제의를 받은 뒤) 저는 오히려 들떠 있었어요. 제 경험이 이들을 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제 장점 가운데 하나는 아직 나이가 어리기에 고정된 견해보다 유연한 사고를 가졌다는 점입니다."

한국은 아이스하키 강국인 캐나다와 미국과는 다른 팀이다. 선수들의 체격은 북미나 유럽 선수들과 비교해 작다. 힘에서도 밀리기에 여러모로 다른 대안이 필요했다. 머리 감독은 "나도 이 점을 지난해 인지했다. 올해 5월부터 7월까지 힘과 체력을 집중적으로 단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선수들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무거운 중량의 웨이트트레이닝을 했다. 그리고 한층 빠른 플레이를 하기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 만약 우리가 퍽을 더 빨리 잡으면 상대방과 충돌하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웃음)"이라고 덧붙였다.

아이스하키를 배우려는 어린 소녀들에게,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 출전하기를 기원"

머리 감독은 선수들과 원활하게 소통하기 위해 한국어 학원에 등록했다. 3년간 선수들과 지냈기에 소통 문제는 많이 해결됐다. 그는 "예전보다 소통이 원활하고 영어를 잘하는 조수지 선수가 절 도와주기에 정말 큰 행운이다"고 밝혔다.

머리 감독의 아버지 앤디 머리는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팀인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와 로스앤젤레스 킹스 감독을 맡았던 거물이다. 한국 팀을 지도할 때 가장 든든한 조력자는 바로 아버지다.

"아버지는 저에게 인내심 있고 유연한 코치가 되도록 많은 조언을 해 주셨어요. 가령 '네가 모든 방식을 바꾸려고 한다면 선수들은 네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죠. 이런 식으로 많은 조언을 해 주셨고 전화로 깜짝 퀴즈를 내거나 아이스하키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내년에 열리는 평창 동계 올림픽은 한국 대표 팀은 물론 머리 감독에게도 큰 도전이다. 그는 "개인적인 목표는 선수들과 비슷하다.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했고 모든 것을 해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머리 감독은 최근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남북 단일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지난 3년간 한솥밥을 먹으며 구슬땀을 흘린 선수들이 값진 결실을 보기를 원하는 것은 감독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의 장밋빛 미래를 위해서는 스틱을 잡으려는 어린 소녀들이 늘어나야 한다.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의 새 지평을 연 머리 감독은 어린 선수들에게 애정이 어린 조언을 남겼다.

"우리도 어린 선수들이 아이스하키를 할 기회를 많이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열정이 있다면 계속 노력하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2022년 베이징 올림픽 예선을 통과하고 그 무대에서 함께 뛰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