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강원도 강릉하키센터에서는 '제 2의 우생순'이 상영됐다. 1998년 창단된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 팀은 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전 Ⅱ그룹 A(4부 리그)에서 5전 전승에 성공했다. 한국이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세계선수권대회에 처음 출전한 해는 2004년이다. 짧은 기간 한국은 내년 디비전 Ⅰ그룹 B로 승격됐다. 또한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꿈의 1승'을 향해 달리고 있다. 척박한 환경에서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는 기적 같은 성과를 냈다. 캐나다에서 건너온 젊은 지도자 새러 머리(29) 감독과 열정만으로 스틱을 든 선수들이 만들어 내는 스토리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고 있다. 스포티비뉴스는 내년 겨울을 위해 더운 여름,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을 만나 봤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이들은 평창 올림픽 이후 다가올 '꽃길'을 꿈꾸고 있었다.

① 한수진, "고생한 선수들 목소리도 귀 기울여 주셨으면"

② '영 캡틴' 머리 감독 "한국 팀이 성장할 때 나도 발전"

③ '소녀들이여 스틱을 잡아라' 빙판 여전사들이 꿈꾸는 세상은?

[스포티비뉴스=조영준 기자]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을 7개월여 앞둔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 팀에 '휴식'이라는 말은 없었다. 섭씨 30도가 넘는 더운 여름, 그들은 따뜻한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개미'였다. 낮에는 약점인 체력을 보완하기 위해 웨이트트레이닝에 집중하고 있다. 저녁에는 선진 아이스하키를 경험한 새러 머리(29, 캐나다) 감독의 지도 아래 빙판을 누빈다.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역사는 짧다. 1998년 시작된 걸음마는 짧은 기간 안에 놀라운 움직임으로 성장했다. 지난 4월 강원도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디비전 Ⅱ그룹 A(4부 리그)에서 5전 전승을 기록하며 디비전 Ⅰ그룹 B로 승격했다.

지난 봄의 결실은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안겨 줬다. 남북 단일팀이라는 뜨거운 감자가 거대한 장벽으로 다가왔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 선수 대부분은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없지만 '열정' 하나로 뭉쳐 여기까지 왔다.

그들에게 평창 동계 올림픽은 매우 각별하다. 올림픽을 계기로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앞날과 선수들 삶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열악한 저변, 실전 경험 부족을 이겨 내다

국내에서 여자 아이스하키를 하는 이는 130여 명이다. 동호회를 합하면 200여 명을 넘는다. 2014년 대표 팀 지휘봉을 잡은 머리 감독은 "선수가 130여 명 밖에 안 된다는 점에 놀랐다. 어떻게 스케이트를 타고 패스를 해야 하는지를 알려 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선수들의 기술 수준을 보고 정말 놀랐다"고 덧붙였다.

한국 선수들의 기량은 머리 감독이 생각한 것 이상이었다. 문제는 실전에서 약하다는 점이었다. 경험이 부족한 한국은 실전에 들어가면 경기를 어떻게 풀어 나갈지 모를 때가 많았다.

머리 감독은 "우리 팀은 많은 경기를 치르지 못했다. 선수들이 충분한 기술을 갖추고 있어도 실전에 들어가면 결정을 빨리 내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던 머리 감독은 팀을 조련했다. 자신보다 언니인 선수도 있었다. 머리 감독은 "나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이가 나보다 많아 내 얘기를 잘 들어줄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와 상관없이 모든 선수를 동등하게 대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3년간 동고동락한 선수들과 감독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일을 냈다. 무관심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잡초처럼 성장한 선수들은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수준을 몇 단계 높였다.

열정으로 똘똘 뭉친 여전사,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한국의 목표는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1승을 하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여자 핸드볼 선수들처럼 '우생순 드라마'를 완성하면 이후 팀이 창단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 팀 맏언니 한수진(30)은 "팀 창단은 모든 선수가 원하는 것이다. 앞으로 5년에서 10년까지 이 종목을 하길 원하는 선수들에게 매우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가 남북 단일팀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선수들의 사기는 꺾였다. 오직 올림픽만 바라보고 땀을 흘려 온 선수 절반 가량이 대표 팀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한수진은 "선수들의 목소리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여론 조사에서 국민 여러분의 의견이 우리와 일치해 힘이 된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운동을 하면서 기본적인 생계가 해결되는 세상, 지난 3년간 빙판이 녹아 내릴 정도로 땀을 흘린 동료와 지도자와 평창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 그들이 꿈꾸는 세상이다.

머리 감독은 "개인적인 올림픽 목표는 선수들과 비슷하다. 스스로 확신을 가지는 것보다 팀을 위해 모든 것을 다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다"며 올림픽을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