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브라질 월드컵 H조 1차전 포진도, 그래픽=김종래 디자이너

[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한국과 러시아는 모두 실패했다. 16강 진출권은 벨기에와 알제리가 차지했다. 벨기에와 알제리는 최종 성적과 관계없이 잠재력을 표출했으나,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의 기세를 잇고자 했던 한국과, 차기 개최국인 러시아는 성적도 경기 내용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첫 판에서 만난 두 팀은 승점 1점을 나눠 가졌다. 한국에겐 마지막 승점이었고, 러시아도 승리 없이 H조 일정을 마쳤다.

당시와 비교하면 두 팀 모두 감독이 바뀌었고, 방향성도 달라졌다. 한국은 당시 홍명보 감독이 지휘했고, 4-2-3-1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경기했다. 선수 구성면에서는 올림픽 성공을 이루 젊은 선수들이 포진해 현 대표팀에 뛰고 있는 자원이 상당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선발 명단에 박주영을 원톱으로 두고 2선에 손흥민, 구자철, 이청용, 중앙 미드필더로 기성용과 한국영, 수비라인에 윤석영, 홍정호, 김영권, 이용, 골문에 정성룡이 있었다. 해외파로만 구성된 10월 A매치 명단에 합류한 선수로 손흥민, 구자철, 기성용, 이청용, 김영권 등5명이 이번 러시아전도 뛴다. 윤석영은 부상으로 하차했으나, 당시 교체로 들어왔던 김보경도 러시아전 출격 가능성이 있는 선수다.

이번에 소집되지 않은 국내파 이근호, 한국영, 골키퍼 정성룡 등도 내년 본선 무대까지 선발 후보군에 들 수 있는 자원이다. 홍정호도 슈틸리케 감독 지휘 시점까지 대표팀의 일원으로 경기 했다. 이용은 부상으로 이탈했으나 여전히 한국 최고 수준의 라이트백 중 한 명이다. 당시 엔트리에 든 23명 대부분이 현 시점에서도 국가 대표급 기량을 유지하고 있다. 

이탈리아 출신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지휘했던 당시 러시아는 알렉산드르 케르자코프, 세르게이 이그나셰비치, 바실리 베레주츠키 등 이제는 흘러간 선수들이 주축이었다. 4-3-3 포메이션으로 나선 러시아는 지금도 골문을 지키는 이고르 아킨페예프가 골키퍼로 나섰고, 콤바로프-베레주츠키-이그나셰비치-에슈첸코가 포백을 구성했다. 지르코프와 글루샤코프, 파이줄린이 허리를 구성하고 샤토프와 코코린, 사메도프가 스리톱으로 나섰다. 후반전에 자고예프, 케르자코프, 데니소프 등 공격 자원이 차례로 출격했다.

한국은 필드 플레이어 10인 전체가 촘촘한 간격을 유지한 원팀 수비로 러시아를 통제했다.


◆ 3년 전 브라질, 러시아전은 한국이 통제했다

러시아가 후반 14분과 후반 26분, 후반 27분에 연이어 공격 자원 세 명을 투입한 이유는, 한국이 후반 23분 이근호의 선제골로 앞서갔기 때문이다. 한국은 폭발적인 드리블 기술을 갖춘 손흥민까지도 수비 간격에 더 집중하며 수비 조직력에 집중했다. 박주영은 최전선에서 득점 보다 전방 압박의 범위를 신경쓰며 팀 전체가 안정적인 수비 기틀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홍명보 감독은 당시 테크니컬 에어리어에 나와 끊임없이 선수들의 위치를 지시했다. 선수들끼리도 서로 손짓을 통해 공이 없을 때의 위치선정에 신경 썼다. 

당시 경기의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이 수비에 신경 쓴 경기를 하면서도 볼 점유율이 52%로 더 높았던 것이다. 패스 숫자고 전체 550회로, 542회의 러시아 보다 높았다. 이는 한국이 공을 소유한 채 시간을 보내며 경기 전체 흐름을 통제하려 했기 때문이다. 공을 소유한 채 러시아가 도전하게 만들고, 공을 내주더라도 배후에서 공간을 주지 않으며 역습 기회를 포착하려 했다. 경기 전 가나와 치른 마지막 친선 경기에서 당한 0-4 완패로 인해 한국은 더더욱 신중한 경기 운영을 했다.

이근호의 중거리슛은 홍명보호의 집중력이 낳은 결실이었다.


◆ 홍정호 교체 아웃 이전까지 빈틈 없었던 수비 조직

당시 필자는 브라질 현지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알제리와 경기에선 허점을 다수 노출했지만, 러시아전으로 한정한다면 한국은 수비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경기를 했다. 센터백 콤비 김영권과 홍정호는 코코린을 고립시켰고, 지르코프의 공격을 막기 위해 이용은 오버래핑을 시도하지 않았다. 윤석영을 간헐적으로 오버래핑을 시도했고, 한국영이 그 뒷공간을 커버했다. 한국영이 비운 자리는 구자철이 후진해 기성용과 짝을 이뤄 메웠다. 

기성용과 한국영의 역할은 명확하게 나뉜다. 두 선수 모두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지만 공을 중심으로 수행하는 플레이는 전혀 달랐다. 기성용은 김영권과 홍정호 사이의 최종 수비 라인까지 내려가는 경우가 빈번하지만 이는 볼을 소유하고 패스 루트를 개척하기 위해서다. 

기성용이 후진해 수비 숫자를 늘려주면 한국영이 그 앞에서 도전적인 수비를 통해 상대의 공을 빼앗기 위해 달려든다. 물론 이는 기성용과의 간격을 적정선에서 유지한 가운데 이루어졌다. 기성용이 전진할 경우에는 한국영이 기성용의 뒷공간으로 공이 빠지는 일을 막기 위해 좁은 가격을 유지하고 커버했다.

당시 교체 카드를 먼저 꺼내든 쪽은 한국이었다. 홍명보 감독은 후반 11분 전방 수비로 체력을 많이 쓴 박주영을 빼고 이근호를 투입했다. 박주영이 1선과 2선을 오르내리는 움직임을 가져가며 연계와 압박에 집중했다면 이근호는 돌격 대장으로 뛰었다. 측면으로 빠져나가는 새로운 패턴 플레이로 발이 느려지기 시작한 러시아 수비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이근호 투입 이후 손흥민이 투톱처럼 전진하고, 구자철이 공격형 미드필더, 이청용이 우측면으로 이동했다. 경직되어 있던 러시아 수비는 한국의 공격 포지션이 바뀌고, 적극적으로 중거리 슈팅을 시도하자 흔들렸다. 결국 이근호가 시도한 중거리슈팅을 아킨페예프가 잡으려다 빠트리며 선제골이 나왔다.

이근호 카드는 성공적이었지만, 부상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홍정호를 교체해야 하는 상황에 투입된 황석호는 비축된 체력에 비해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김영권과 가장 좋은 호흡을 보이는 홍정호의 몸 상태를 정상화시키고, 홍명보 감독과 함께 한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은 황석호와 곽태휘가 남은 기간 동안 팀 수비 전술 안에 더 확실하게 녹아 들어야 한다.

러시아의 후반 교체 카드도 적절했다. 한국의 터프한 수비에 막혀 집중력을 잃은 샤토프 대신 투입된 자고에프는 탁월한 터치와 볼 배급으로 러시아가 전반전에 보인 창조성 문제를 해결했고, 케르자코프가 지르코프 대신 투입되어 코코린의 고립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했다. 글루샤코프 대신 데니소프가 투입된 이후로는 러시아가 더 많은 공격 기회를 만들어 냈다.

한국 입장에서는 후반 39분에 손흥민 대신 투입된 김보경이 공격적으로 눈에 띄는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한국이 불리한 경기를 할 수 있었겠지만, 케르자코프의 골이 터진 후반 29분까지 한국이 보인 조직력과 집중력은 준수했다. 

홍정호가 부상으로 빠진 이후, 총공세를 편 러시아에 한국 수비 집중력이 흔들렸다.


◆ 첫 경기 이후: 알제리에 무너진 한국, 끈질긴 모습 보인 러시아

애석한 것은 당시 한국 팀이 보인 좋은 모습은 거기까지 였다는 점이다. 러시아전까지는 기대감이 남아있었지만, 알제리전 이후 대표팀은 회복 불가능한 질타와 비난에 휩싸였다.

알제리와 두 번째 경기에서 전반 이른 시간 연이은 실책으로 전반 38분 만에 0-3이 되면서 팀 정신이 무너졌다. 벨기에는 두 경기 만에 2승을 챙겨 후보 선수들을 내세웠으나 한국이 넘기 어려운 상대였다. 0-1로 지면서 1무 2패로 탈락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한국을 잡지 못한 뒤 강호 벨기에를 만난 일정이 불운했다. 러시아는 후반 43분에 디보크 오리기에 결승골을 내줘 0-1로 석패했다. 이후 알제리와는 1-1로 비겨 2무 1패로 탈락했다. 한국이 러시아와 대등한 경기, 혹은 이길 수도 있었던 경기를 했다는 점에서 당시 홍명보호가 받은 평가는 알제리전의 초반 30여분 플레이가 남긴 강렬한 인상으로 인해 더 혹독해진 면이 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뒤로 하고, 한국인 울리 슈틸리케 감독 시대를 거쳐 신태용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다. 한국시간으로 10월 7일 밤 11시 킥오프할 러시아와 리턴 매치에서 신 감독이 결과에 대한 부담 없이 펼칠 첫 번째 실험을 볼 수 있다.

예선전을 치르지 않고 본선에 나설 수 있는 개최국 러시아는 CSKA 모스크바 감독으로 성과를 낸 레오니드 슬러츠키 감독과 나선 유로2016 대회에서의 실패가 이어졌다. 현재 스타니슬라브 체르체소프 감독 체제로 본선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6월 치른 2017년 러시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약체 뉴질랜드와 첫 경기 2-0 승리 이후, 포르투갈, 멕시코에 연패하며 조별리그 A조에서 탈락했다. 

러시아는 스리백에 투톱을 실험하며 3년 전 보다 많이 달라진 경기를 했다. 선수 구성의 변화가 크지 않은 한국 보다 훨씬 극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이번 리턴 매치에서 서로 어떤 변화상을 통해 1년 도 채 남지 않은 월드컵 본선의 청사진을 확인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글=한준 (스포티비뉴스 축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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