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근호 ⓒ한준 기자


[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공격수 이근호(32, 강원FC)는 2007년에 처음으로 K리그 베스트11 공격수 부문에 선정됐다. 인천유나이티드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했으나 2군 생활을 전전했던 이근호는 2007년 대구FC 이적 이후 전성 시대를 열었다. 2008년에 2년 연속 베스트11 공격수로 뽑혔다. 그해 윈저어워즈 한국축구대상에서는 대상을 받아 최고의 선수로 꼽히기도 했다. 10년 만에, 이근호는 한국 프로축구 최고 공격수로 이름을 올렸다. 

20일 오후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KEB하나은행 K리그 어워즈 2017에서 베스트11 공격수에 뽑혔다. 이재성이 선정된 MVP에도 최종 후보 3인 안에 들었다. 2017시즌 강원에 입단한 이근호는 37경기에서 8득점 9도움을 올렸다. 총 17개 공격 포인트 기록은 9년 전인 2008시즌 11골 6도움을 올린 이후 다시 올린 그의 K리그 한 시즌 최다 기록과 동률이다. 시상식 현장에서 만난 이근호는 이 기록을 묻자 “몰랐다”며 웃었다.

J리그 진출 이후 유럽 무대 도전이 무위로 돌아갔고, 군 복무를 위해 2012년 울산현대로 이적한 이근호는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며 또 한번의 전성시대를 맞았다. 그해 AFC 올해의 선수상을 받으며 아시아 최고 선수로 공인 받았다. 그럼에도 2013년에 K리그챌린지에 있던 상주상무에서 뛰어야 했고, 군 팀 소속으로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 출전해 러시아전에 득점했다. 

월드컵을 마치고 군 복무를 마친 이근호는 거액의 연봉을 제시한 카타르 무대로 떠났다. 그 이후 이근호는 저니맨이 됐다. 엘자이시에서 밀려 나온 뒤 2015년 전북현대, 2016년 제주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이적 과정에서 모두 팀의 프리시즌 훈련을 함께 하지 못했다. 이근호는 시즌 내내 최고의 몸 상태를 유지하지 못했다. 잘 뛰어야 빛나는 이근호에겐 좋은 여건이 아니었다.

강원서 제2의 전성기 맞은 '대관령 테베스'
K리그 통산 100호 포인트, 40-40클럽 달성
한 시즌 1부리그 개인 최다 공격 포인트 '17'



특급 대우를 약속 받고 과감하게 투자하는 팀 강원에 입단한 2017년. 우려가 적지 않았으나 이근호는 자신이 흘러간 스타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그는 함께 강원 유니폼을 입은 정조국을 득점왕으로 만들어 주고 싶다고 했으나, 정조국이 시즌 내내 부상으로 고생하면서 그 자신이 더 골대에 가까이 움직이며 해결사를 자처했다.

“나보다는 조국이 형이 많이 공격 포인트할거라고 예상했는데, 부득이하게 내가 더 많이 했다.” 웃으며 말을 이어간 이근호는 “올해 다른 때보다는 더 자신 있었던 건, 준비를 올 초부터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몸이 작년 보다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올 시즌 자신의 기대만큼 경기했다고 했다. “생각했던 것 보다 좋았다”는 이근호는 지난 11월 A매치 기간 펼친 활약을 통해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 나설 국가 대표 팀의 중심 공격수로 부상했다.

▲ 2017 K리그클래식 베스트11 공격수 부문 수상자 이근호 ⓒ한희재 기자


어느덧 만 32세. 2018시즌에는 만 33세가 되는 이근호지만, 대표 팀에서도 그렇고 K리그클래식에서도 이근호는 여전히 투지 있게 많이 뛰는 스타일로 경기를 지배한다. 힘있게 달려들고, 거침없이 파고든다. 그 운동량을 보이면서도 슈팅과 크로스가 날카롭다. 이근호는 “(나이가 있지만)몸 상태는 괜찮다. 많이 못 뛰면 그때가 은퇴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내 장점이기도 하고. 아직까지는 큰 어려움이 없다고 느낀다”고 했다. 이근호는 자신의 무기가 사라지면 그만둬야 한다고 했다. 30대 중반으로 향하지만, 이근호의 무기는 유효하다.

제주 시절 득점 과정에서 무력했던 또 다른 이유는 포지션에 있다. 이근호는 당시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면서 수비 부담이 더 컸다. 전방 압박뿐 아니라 뒤로 내려오는 일과 중앙 지역 압박 플레이에 가담하는 과정에서 공격성이 둔화됐다. 강원에서는 그가 잘하는 플레이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스트라이커와 윙포워드 위치에서 부담 없이 뛰었다.

“제주에 있을 때와 역할이 많이 달랐다. 공격 쪽에 최윤겸 감독님이 힘을 쏟게 편하게 해주셨다. 강원에서는 그런게 복합적으로 잘 맞았다.” 이근호가 많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그저 시즌 준비를 잘하고, 그가 잘하는 위치에서 잘하는 플레이를 하도록 했다. 

선수는 팀과 궁합이 잘 맞아야 한다. 팀 전술을 설계하는 이는 감독이다. 이근호는 베스트11 공격수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도 최윤겸 감독의 이름을 이야기했다. 강원이 끝내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이라는 목표를 이루지 못한 이유 중 하나로 최 감독의 중도하차를 꼽기도 했다. 

“가장 안타까운 건, 최윤겸 감독님이 도중에 안 계시면서 선수단이 많이 흔들린 것이다. 가장 큰 아쉬움이었다.”

▲ 콜롬비아전에 선발 출전한 이근호 ⓒ한희재 기자


이근호에게 2017시즌은 절반의 성공이다. 본인은 녹슬지 않은 기량을 보여주며 개인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국가 대표 팀에도 선발됐다. 성공을 먼저 말하자면 대표 팀의 복귀다. 

2015년 아시안컵 이후, 이근호는 대표 팀과 2년 가까이 인연을 맺지 못했다. 강원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신태용 감독이 부임하면서 호출됐고, 11월 A매치에서 손흥민 활용법을 찾기 위한 투톱 실험의 성공적 파트너로 기능했다. 연초 인터뷰에서 이근호는 대표 팀에 대한 미련, 월드컵에 대한 열망이 없다고 했다. 그저 순리대로 자기 자리에서 축구를 할 뿐이라고 했다. 이근호는 기대하지 않았던 기회 앞에 섰다.

“와이프가 그랬는데, ‘마음 비우고 하자.’ 그런 얘기를 많이 했다. 나 역시도 팀에서만 열심히 했는데, 그러다 보니 기회가 온 것 같다. 앞으로도 그런 생각하고 뛸 생각이다. 예전의 경험이 지금 축구 생활을 하면서 많은 영향 미치고 있다. 멀리 월드컵을 바라보고, ‘잘해야겠다.’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렇게 준비하면 결과가 안 좋더라. 순간 순간 최선 다하면 좋은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한다. 주변에서 얘기를 많이 하는데, 그럴수록 자제하려고 한다. 거기 취하다 보면 기본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자꾸 나오는 기사나 주변 얘기에 너무 빠져들지 않으려고 한다.”

이근호는 이날 K리그 어워즈에서의 수상에 대해서도 덤덤한 모습이었다. 본인의 수상 경쟁력을 묻자 “그냥 내가 사회생활을 잘했다?”라며 농담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왜 거기(공격수 부문)에 있을까 싶기도 하고. 내가 왜 거기 있을까 싶기도 하고, 살짝 오른쪽으로 빠지면 더 경쟁력 있었겠다 싶기도 한데”라며 은근히 수상에 대한 욕심을 꺼내 보이기도 했다. 

이근호는 2012년에 울산에서 뛸 때 베스트11 미드필더 부문에서 수상했다. 조나탄, 양동현 등과 경쟁하는 공격수 부문 보다 이승기와 마그노가 경합한 오른쪽 미드필더 자리가 더 쉽다고 여겼다. “올해는 모르겠다. 주면 좋고, 안주면 안주는 대로. 그런 마음으로 왔다.” 이근호는 결국 조나탄과 K리그베스크11의 투톱으로 꼽혔다. 

이근호는 자신이 MVP 후보에 오른 것에 대해서도 “그 자리도 내가 왜 거기에 있나 싶다”며 웃었다. 시상식 현장인만큼 이근호는 평소보다 여유롭고 밝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축구해준다는 마음으로 왔다.” 이근호는 우승팀 전북의 이재성, 득점왕을 한 수원의 조나탄을 제치고 리그 6위에 그친 강원 소속인 자신이 선정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실제로 최종 후보 3인 중 득표가 가장 적었다. 말을 하면서 이근호는 다시금 숨기려 한 욕심과 의지를 조금 그러냈다.

“참 아이러니한 게 많다. 좀 아쉽다. 좀 더 열심히 할 걸. ACL에 진출했으면 그래도 조금 가능성 있지 않았을까.” 이근호는 2017시즌에 40호 도움을 채워 40-40클럽에 가입했다. 통산 67득점 40도움으로 100호 공격 포인트도 돌파했다. 그런 기록 모두 “몰랐다”는 이근호는 “이번에 알게 되어서 의식이 된다. 이렇게 많이 한 줄 몰랐다”고 했다. 2골 1도움만 더 했으면 한 시즌 10-10클럽 달성도 가능했다. 그러면 도움왕에 도전할 수도 있었다.

“올해도 좀 더 많이 넣었으면 충분히 가능했는데, 많이 놓쳤다. 내년에는 더 생각하고 해야 할 것 같다. 내년에는 골과 도움 모두 두 자릿수로 해보고 싶다.” 마음을 비워서 좋은 경기를 했지만, 조금 더 욕심을 냈어야 할 필요도 있었다. 2017시즌을 보내며 이근호가 새로 배운 것이다. 

역시 이근호가 2017시즌에 개인이 이룬 성취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이유는 팀 성적에 있다. 강원이 선수단 강화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 이유는 곧바로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따기 위해서였다. 강원은 미션을 이루지 못했다. 이근호는 흐름을 살리지 못한 게 문제였다고 했다. 그 흐름 안에 최 감독의 중도 하차도 있다. 선수들도 집중력을 잃었다. 후반기 뒷심에 문제가 생긴 이유다.

“아무래도 좋은 흐름을, 분위기를 타지 못했던 게 아쉽다. 5연승이 어떻게 보면 우리한테 좋은 기회였지만, 선수들이 안일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도 있지 않았나 싶다. 고참으로 그런 역할 잘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그 안일함이라는 게, 큰 건 아닌데. 작은 거 하나 하나에서 정성이 부족했던 것이다.”

▲ 강원에서 대관령 테베스라는 별명을 얻은 이근호 ⓒ한희재 기자


이근호는 2018시즌에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 목표에 다시 도전한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선 더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부상이라는 악재도, 피할 수 있다면 피하도록 준비해야 한다. 

“디에고 말고 다른 용병도 갖춰진다면 좀 더 탄탄해질 것이다. 올해 가장 큰 문제는 조국이 형도 그렇고 중간에 발렌티노스도 그렇고. 주요 선수들의 부상이 컸다. 그런 부상 없이 잘 마칠 수 있도록 잘 준비해야 한다.”

시즌 시작 전부터 AFC챔피언스리그 진출권으로 설정한 큰 목표가 선수들을 심적으로 압박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근호는 그 점에 대해선 부인했다. “오히려 그런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좀 더 간절하게 했다. 상위 스플릿, 강등권 탈출 목표였으면 어느 정도 만족하고 말았을텐데… 아쉬움을 느낀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목표를 위해 열심히 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내년에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대구를 떠난 이후 빅클럽에서만 뛰어온 이근호에게 강원행은 도박이자 모험이었다. 이근호는 “결과적으로는 좋았다”며 좋은 선택이었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살기도 나쁘지 않았고 와이프도 좋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2018시즌 이근호는 올해 이루지 못한 미션에 도전한다.

“무조건 올해보다 좋은 성적 내고 싶다. 어떻게 보면 눈앞에 보인 ACL인데, 못 잡았다. 조금만 구단에서 힘을 써준다면 할 수 있을 거라는 어느 정도 가능성 볼 수 있었던 거 같다. 그 목표를 세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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