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김건일 기자] 대기록 또는 우승이 달성되는 순간 마운드 위의 투수를 향해 포수가 마스크를 벗고 달려간다. 포수는 투수들 들어 올리며 기쁨을 만끽한다. 지난 2010년 이후 메이저리그 역사에 수 차례 이름을 새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그 순간 가장 먼저 그리고 많이 얼굴을 드러낸 선수는 버스터 포지다.

지난 9일(이하 한국시간) 샌프란시스코 투수 크리스 헤스턴은 뉴욕 메츠를 상대로 생애 첫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역대 17번째 노히트노런이었다. 헤스턴이 루벤 테하다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만들어내자 가장 먼저 마운드로 뛰어간 선수는 포지였다.

이날 헤스턴의 가장 큰 조력자는 포지였다. 영리한 포지는 랍 드레이크 구심의 넓은 스트라이크 존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어려운 브레이킹 볼을 완벽하게 포구하면서 투수를 안정시켰다. 특히 리그 최고로 꼽히는 그의 프레이밍은 통산 9이닝당 삼진률이 7.6인 헤스턴의 개인 최다 11탈삼진을 이끌어냈다. 경기 뒤, 헤스턴은 "포지의 리드가 매우 좋았다. 난 그의 글러브를 향해 공을 집어 넣었을 뿐이다"라며 공을 포지에게 돌렸다.

지난 1958년 뉴욕을 연고로 하는 3개의 구단 가운데 2구단이 연고지 이전을 택했다. 브루클린 다저스는 로스 앤젤레스로, 뉴욕 자이언츠는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라이벌' LA 다저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탄생이었다.

이후 양팀은 상반된 행보를 걸었다. 다저스는 연고지 이전 후 5차례(1959, 1963, 1965, 1981, 1988) 월드시리즈 우승을 거머쥐면서 강호의 이미지를 굳혔다. 반면, 뉴욕 시절 5번의 우승을 했던 샌프란시스코는 지난 1972년부터 1986년까지 15년 연속으로 가을 야구에 초대 받지 못했다. 지난 1989년 내셔널리그를 제패하고 월드시리즈에 진출해 연고지 이전후 첫 우승을 노렸지만, 오클랜드 애슬래틱스에게 패하며 분루를 삼켰다.

자이언츠의 새 전성기는 배리 본즈에 의해 시작됐다. 지난 1993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자유 계약을 통해 샌프란시스코에 입단한 본즈는 거인 군단을 강팀으로 변모시켰다. 본즈의 활약 속에 샌프란시스코는 1997년부터 2003년까지 7년간 4번 가을야구에 진출했으며, 지난 2002년엔 1989년 이후 13년만에 진출한 월드시리즈에서 애너하임 에인절스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준우승을 차지했다.

본즈 효과가 사라지면서 주춤했던 샌프란시스코에게 터닝 포인트가 찾아왔다. 지난 200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샌프란시스코는 1라운드 전체 5번으로 플로리다 주립 대학교 포수 포지를 지명했다. 샌프란시스코는 그에게 구단 역사 최고액인 620만달러를 안기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지난 2010년 5월 30일 샌프란시스코는 마이너에서 맹타를 휘두르던 입단 2년차 포지를 메이저리그에 불러들였다. '딜레이 콜업'은 포지의 서비스 타임을 1년 늘이기 위한 선택이었다. 당시 샌프란시스코엔 주전 포수 벤지 몰리나가 있었기 때문에 포지는 1루 미트를 장착했다. 포지는 7월말까지 0.350이상의 타율로 뛰어난 타격 능력을 선보였다. 그러자 샌프란시스코는 7월 29일, 타격 부진 몰리나를 텍사스 레인저스로 보내고 포지에게 홈 플레이트를 맡겼다.

15년 경력의 포수 제이슨 켄달은 "대졸 포수가 메이저리그 수준의 볼배합 능력을 갖추는데엔 3~4년이 걸린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해 포지의 포수 데뷔는 너무 이른 결정이었다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그러나 포지는 신인 답지 않은 노련한 볼배합을 선보였다. 이와 함께 뛰어난 타격을 선보이면서 4번 타자 자리까지 꿰찼다. 그해 18홈런 65타점을 기록한 포지는 리그 최고의 공격형 포수로 거듭났으며, 공격의 구멍이었던 포수 자리가 타선의 핵으로 변화한 샌프란시스코는 지구 우승을 차지하고 파죽지세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8년만에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샌프란시스코의 상대는 메이저리그 최강 공격력을 자랑하던 텍사스 레인저스였다. 창과 방패의 대결로 관심을 모았다. 포지는 1차전 텍사스 강타선의 혹독한 맛을 봤다. 팀은 11-7로 승리했지만, 포지는 무려 7실점을 내줬다는 사실에 자책했다.

이후 절치부심한 포지는 달라졌다. 한층 영리해진 모습으로 텍사스 타선을 상대했다. 2차전에서 포지는 선발 맷 케인과 함께 4피안타 영봉승을 합작해냈다. 3차전 2-4로 패했지만, 4차전에서 매디슨 범가너과 월드시리즈 두번째 영봉승을 만들어내면서 시리즈 전적 3-1로 팀을 우승의 문턱에 올려놓았다.

5차전 포지는 팀 린스컴과 배터리를 이뤘다. 경기는 린스컴과 텍사스 선발 클리프 리의 엄청난 투수전으로 전개됐다. 0-0의 균형은 7회초 에드가 렌테리아의 3점 홈런으로 무너졌다. 7회말 넬슨 크루즈가 린스컴에게 솔로 홈런을 쳐내면서 추격했지만 역부족이었다. 9회말 경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올라온 브라이언 윌슨이 크루즈를 돌려세우면서 아웃 카운트 세개가 채워졌다. 마운드의 윌슨은 세레모니를 펼쳤고, 포지가 뛰쳐 나와 윌슨을 안아 들었다. 샌프란시스코로 연고지를 옮긴 이후 첫 우승이었다.

생애 첫 월드시리즈 반지를 손에 넣은 포지는 내셔널리그 신인왕까지 거머쥐면서 성공 시대를 열어가는 듯 했다. 그러나 이듬해 5월 26일 그에게 끔찍한 순간이 찾아왔다. 플로리다 말린스와 경기 도중 홈으로 파고 든 스캇 커진스와 충돌하면서 왼쪽 발목 복합골절 부상으로 시즌 아웃됐다.

포지는 이듬해 긴 재활 기간을 거치고 복귀했다. 구단은 포지의 부상 재발을 우려해 1루 전향을 고려했으나, 한층 더 강해지고 성숙해진 포지는 마스크를 내려놓지 않았다. 그해 6월 14일 샌프란시스코의 홈 구장 AT&T 파크에서 열린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경기에서 케인과 배터리를 이룬 포지는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냈다.

케인과 포지는 9회까지 단 한 명의 타자도 출루시키지 않았다. 대기록의 희생양을 원하지 않았던 휴스턴은 아웃 카운트 하나를 남기고 대타 제이슨 카스트로를 내보냈다. 그러나 케인은 카스트로를 3루수 땅볼로 잡아냈다. 메이저리그 역대 22번째 퍼펙트게임이자 샌프란시스코 팀 역사상 최초의 기록이 달성된 순간이었다. 당시 케인을 가장 먼저 들어올린 선수 역시 포지였다. 케인은 경기 뒤 인터뷰에서 "포지에게 특히 고맙다. 그가 요구하는 대로 던졌을 뿐이다"라며 공을 돌렸다.

그해 샌프란시스코는 월드시리즈에서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 맞붙었다. 시리즈 전적 3-0으로 샌프란시스코가 앞서 나갔다. 4차전에서 샌프란시스코는 9회까지 4-3으로 리드하며 우승을 눈 앞에 뒀다. 아웃 카운트 하나가 남은 상황에서 마무리 세르히오 로모가 포지의 사인을 받아 공을 던졌고, 디트로이트 타자 미구엘 카브레라는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며 샌프란시스코의 우승으로 마무리됐다. 포지가 통산 세번째로 마운드 위의 투수를 들어올린 순간이었다.

포지는 그해 타율 0.336 24홈런 103타점으로 리그 MVP와 함께 70년만에 내셔널리그 포수 타격왕에 올랐다. 성장한 것은 타격 뿐만이 아니었다. 포수로서의 능력도 일취월장했다. 2010년부터 2011년까지 포지의 평균 프레이밍(볼을 스트라이크로 만들어내는 능력)은 20.95로 뛰어난 리드에 비해 다소 아쉬웠다. 그러나 2012년 포지의 프레이밍은 149.2(149개의 볼을 스트라이크로 만들어냈다는 의미)로 급성장했다. '미트질의 달인'으로 불리웠던 호세 몰리나-조나단 루크로이-브라이언 맥켄에 이어 메이저리그 4위였다.

이듬해 샌프란시스코는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4위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그러나 당시에도 영광의 순간은 있었다. 7월 13일 펫코 파크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상대로 선발 등판한 린스컴은 자신의 생애 첫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 팀으로선 15번째이자 펫코 파크 역사상 첫 노히트노런이었다. 린스컴이 욘더 알론소에게 던진 148번째 공이 좌익수 뜬공으로 잡히면서 노히트노런이 달성되자 포지는 마운드로 뛰어 올라 영혼의 파트너를 껴안으며 축하했다.

올 시즌 헤스턴의 노히트노런까지 통산 세번의 대기록을 만들어낸 포지다. 이 보다 많은 선수는 4회의 제이슨 베리텍(전 보스턴 레드삭스)이다. 현역 포수 가운데 포지와 같은 선수는 카를로스 루이스(필라델피아 필리스)뿐이다.

지난해 월드시리즈 챔피언에 오른 순간에도 포지가 있었다. 시리즈 전적 3-3으로 맞이한 7차전. 9회 4-3 살얼음판 리드에서 범가너는 2사 3루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최강의 배터리는 위기 상황에서 더욱 빛났다. 살바도르 페레즈를 3루수 파울 플라이로 잡아내면서 통산 11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포지의 등장과 함께 샌프란시스코는 최근 메이저리그 역사에 많은 이름을 새겨가고 있다. 긴 팀으로 기록됐다. 지난 5년간 3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만끽했으며, 4년 연속 노히트노런 투수를 배출했다. 그 순간엔 언제나 포지가 함께했다. 28세 포지는 샌프란시스코의 역사를 함께해온 살아있는 전설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닌 이유다.

[사진] 버스터 포지 ⓒ Gettyimages

[영상] 자이언츠와 함께한 포지의 순간 ⓒ 스포티비뉴스 박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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