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0년대 태릉선수촌이 세워지기 이전 서울 중구 초동에 있던 한국체육관은 복싱과 레슬링, 역도 등 체급 경기는 물론 펜싱 종목 우수 선수를 배출해 낸 뜻깊은 체육 시설이다. ⓒ대한체육회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펜싱은 일찍이 무기로 사용해 오던 검의 사용법으로 출발해 고대 로마 시대를 거쳐 중세에 전해졌다. 기사도의 확립과 함께 유명한 검객들이 나왔고 높은 수준의 검기(劍技)가 만들어졌다. 검도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16세기 중반 이후 화약의 발달에 따라 고대로부터 쓰였던 두껍고 무거운 검이나 검법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고 양쪽 날이 가늘고 긴 검 등이 생겨났다.

이것을 한손에 쥐고 보조로서 단검 또는 외투를 갖추게 됐다. 이 시대가 오늘날 펜싱의 시초이며 많은 검객이 나타나 여러 종류의 검술이 연구됐다. 검법은 18세기 무렵에는 귀족 계급의 교양의 일부로 꼽혔고, 전투적 검법으로부터 스포츠적인 것으로 변화했다. 마스크를 사용하고, 검 끝에 솜방망이를 달아 안전성을 도모하면서 스포츠화 했으며 현대적인 펜싱 경기가 탄생했다.

펜싱은 1896년 아테네에서 열린 제1회 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돼 남자 플러레(개인·마스터)와 사브르(개인)의 3개 세부 종목 경기가 열렸다. 개최국 그리스와 오스트리아, 덴마크, 프랑스에서 15명의 선수가 출전한 가운데 그리스가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차지했다. 펜싱은 이후 단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올림픽 무대에서 펼쳐졌다.

1900년 제2회 파리 올림픽에서 남자부 에페가 세부 종목으로 추가됐고 1924년 제8회 파리 올림픽에서 여자 플러레(개인)가 세부 종목으로 채택됐다. 1996년 제26회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여자 에페 종목, 2004년 제28회 아테네 올림픽에서 여자 사브르 종목이 추가돼 현재의 세부 종목 체계가 자리를 잡았다. 2016년 제31회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는 남자 에페 개인·단체, 플러레 개인·단체, 사브르 개인과 여자 에페 개인·단체, 플러레 개인, 사브르 개인·단체 등10개 세부 종목 경기가 열렸다.

한국인으로 펜싱을 가장 먼저 익힌 이는 1935년 무렵 일본 유학생 김창환 등이다. 김창환은 메이지대학 주장으로 활약하면서 여러 대회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후 제국주의 일본의 외래 운동 기피증과 증오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펜싱 경기가 금지되면서 국내 보급 기회를 잃었다.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난 뒤인 1946년 4월 김창환 등 몇몇이 모여 고려펜싱구락부를 조직해 펜싱 보급에 나섰으나 경제적 사정과 용구 구입 등 어려운 문제에 부딪혀 답보 상태를 면하지 못했다. 1947년 11월 조선펜싱연맹이 출범했는데 조선송구협회와 조선체조협회, 조선육상경기연맹 등 20여개 단체가 조직을 꾸린 뒤였다.

그해 YMCA 창립 46주년 기념 행사에서 펜싱 시범 대회를 가져 스포츠 애호가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956년 9월 대한펜싱협회로 이름을 바꿨고 1958년 2월 한국체육관에 펜싱부를 두고 펜싱의 본격적인 보급과 양성에 힘썼다.

1960년대 태릉선수촌이 만들어지기 이전 서울 중구 초동에 있던 한국체육관은 복싱과 레슬링, 역도 등 주로 체급 경기 국가 대표 선수를 배출해 낸 뜻깊은 체육 시설이다.

이어 1960년 8월 제17회 로마 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FIE(국제펜싱연맹) 총회에 참가해 회원국으로 가입하면서 국제 무대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1960년 12월 전국남녀개인펜싱선수권대회가 개최된 데 이어 1961년 1월 대한체육회 정식 가맹 단체가 됐고 1962년 대구에서 열린 제43회 전국체육대회 때 정식 종목으로 채택돼 7개 시도에서 출전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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