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하기 전인 1948년 2월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열린 제5회 동계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단이 대형 태극기를 들고 개회식장에 들어서고 있다. ⓒ대한체육회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평창은 2011년 7월 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제123차 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에서 뮌헨(독일)과 안시(프랑스)를 1차 투표에서 가볍게 제치고 대회 유치에 성공했다. 삼수 끝에 거둔 성과였다. 이제는 대회를 잘 치르고 대회 이후 경기장 시설 등을 활용해 성공한 올림픽으로 남기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동·하계 올림픽과 축구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 굵직한 스포츠 이벤트가 지난 30년 사이 한반도 남쪽에서 펼쳐진다. 중·장년 스포츠 팬들에게는 감격스러운 일이다. 한국 겨울철 스포츠는 그동안 어떻게 발전해 왔을까. 겨울철 올림픽 출전사로 알아본다. <편집자 주>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1945년 해방과 함께 일제 치하에서 중단됐던 전조선종합경기대회도 부활했다. 1945년 10월 27일 서울운동장에서는 자유 해방 경축 전국종합경기대회가 막을 올렸다. 이 대회가 제26회 전국체육대회로 꼽히게 된다. 개회식에서 태극기를 든 기수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이었다. 이 대회는 육상, 축구, 농구, 야구, 배구, 정구. 럭비, 사이클, 탁구, 승마 등 10개 종목에 걸쳐 치러졌다. 1946년 1월 29일에는 한강에서 이 대회의 동계 대회가 열렸다. 

조선체육회는 1946년 10월 16일부터 닷새 동안 서울운동장에서 ‘조선올림픽대회’를 열었다. 아직 전국체육대회라는 명칭이 정착되지 않았던 때인데다 2년 뒤 런던 올림픽 출전에 대한 열망이 조선올림픽대회라는 대회 명칭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이며 이 대회가 제 27회 전국체육대회다. 이 대회의 동계 대회는 다음 해인 1947년 1월 21일 열렸는데 스피드스케이팅은 한강에서 열렸다.

1947년 10월 13일부터 1주일 동안 조선올림픽대회(제28회 전국체육대회)가 3,000여 명의 선수들이 참가한 가운데 서울운동장에서 열렸다. 이 대회의 동계 대회는 1948년 1월 29일부터 사흘 동안 열렸는데 스피드스케이팅은 한강에서 치러졌다. 그 무렵 한강은 우리나라 겨울철 스포츠의 메카였다.

우리나라가 태극기를 앞세우고 처음으로 출전한 올림픽은 1948년 1월 30일부터 2월 5일까지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열린 제5회 동계 올림픽이다. 이 대회에 한국은 스피드스케이팅에만 이효창과 문동성, 이종국 등 3명의 선수를 파견했다. 일본이 전범국(戰犯國)으로 출전이 금지된 가운데 아시아 나라 가운데에는 한국과 레바논이 출전했다.

이 대회에서 최용진은 500m 공동 21위와 1500m 31위, 이종국은 1500m 공동 36위와 5000m 38위, 이효창은 500m 공동 23위와 1500m 19위, 5000m 25위를 기록했다. 이 대회 500m에42명, 1500m에 45명, 5000m에 40명의 선수가 참가했으니 아주 나쁜 성적은 아니었다.

1952년 오슬로(노르웨이) 대회는 한국전쟁의 와중에 참가하지 못했다. 1956년 코르티나 담페초(이탈리아) 대회에는 스피드스케이팅에만 장영과 조윤식, 김종순, 편창남 등 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500m와 1500m, 5000, 1만m에 나섰으나 가장 좋은 성적이 장영의 5000m 23위였다. 1960년 스쿼밸리(미국) 대회에서는 스키(크로스컨트리·알파인)가 첫발을 내디뎠고, 스피드스케이팅에는 장영과 최영배, 장린원 등 남자 선수에 김경회, 한혜자 두 여자 선수가 첫선을 보였다. 그러나 남녀 모두 모든 세부 종목에서 20위권 밖이었다. 세계 무대의 벽은 높기만 했다.

1964년 인스부르크(오스트리아) 대회에서는 빙상경기 관계자들이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동계 올림픽에 첫 출전한 북한은 한필화가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3000m에서 은메달을 차지했다. 북한은 이 대회 스피드스케이팅에 남자 4명과 여자 5명, 그리고 스키에 남녀 2명씩 등 모두 13명의 선수를 파견했다. 7명(스피드스케이팅 4명 스키 3명)이 출전한 한국보다 선수도 많았고 성적도 좋았다. 북한은 한필화 외에 김성순이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1500m에서 동메달리스트인 소련의 베르타 콜로콜체바에게 0.6초 뒤져 4위를 기록했다. 이후 북한은 2014년 소치(러시아) 대회까지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단 하나의 메달도 따지 못하고 있다.

1968년 그르노블(프랑스) 대회에선 피겨스케이팅에 남자 이익환(이규혁 선수 아버지), 여자 김귀진이 출전했으나 다시 한번 세계 수준과 격차를 실감했다. 처음 출전한 피겨스케이팅 남자 이광영, 여자 이현주와 김혜경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1972년 삿포로(일본) 대회와 1976년 인스부르크,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대회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반복됐다. 레이크플래시드 대회에서는 미국의 에릭 하이든이 스피드스케이팅 남자부 전관왕(500m 1000m 1500m 5000m 1만m)이 되는 장면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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