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이 2018 AFC U-23 챔피언십 조별 리그에서 2승 1무로 8강에 올랐다. ⓒAFC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17일 밤 한국과 베트남이 8강에 합류하면서 2018 AFC U-23 챔피언십(2018년 23세 이하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녹아웃 스테이지 대진표가 완성됐다.

이번 대회 우승 경쟁은 19일과 20일 각각 열리는 카타르-팔레스타인, 이라크-베트남 그리고 일본-우즈베키스탄, 한국-말레이시아 대결로 좁혀졌다.

그런데 왠지 대진표가 낯설다. 그동안 봐 왔던, 아시아 지역에서 열리는 각종 축구 대회 8강 카드와 거리가 멀다. 이번에 3회째인 이 대회 이전 두 차례 대회 8강 대진만 봐도 바로 알 수 있다.

직전 대회인 2016년 카타르 대회에서는 8강 대진이 카타르-북한, 한국-요르단, 일본-이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라크로 짜였다. 상위 3개국인 일본 이라크 한국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 티켓을 차지했고 카타르가 4위에 올랐다.

창설 대회인 2013년 오만 대회에서는 요르단-UAE, 호주-사우디아라비아, 한국-시리아, 이라크-일본이 8강 카드였다. 이 대회에서는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이 1~3위를 차지했고 한국은 3위 결정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요르단에 승부차기 2-3으로 져 4위로 밀렸다.

앞선 두 대회 8강 대진표는 축구 팬들이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그런데 2018년 중국 대회 8강 대진표는 축구 팬들이 고개를 갸웃할 듯하다.

첫 번째 카드인 카타르-팔레스타인부터 그렇다. 이라크-베트남, 두 번째 카드에 이르면 요즘 유행어로 ‘이게 실화냐“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세 번째 카드인 일본-우즈베키스탄은 그렇다 치고, 마지막 카드인 한국-말레이시아에서 한번 더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아시아 지역 연령대별 대회의 강호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북한이 8강에 오르지 못했고 2000년대 중반 OFC(오세아니아축구연맹)에서 AFC(아시아축구연맹)으로 이사 온 호주도 탈락했다. 서아시아를 대표한 시리아 오만 요르단이 일찌감치 짐을 쌌고 카타르만 살아남았다. 팔레스타인도 서아시아 나라이긴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1950~60년대만 해도 아시아 축구의 중심지였다가 이후 잔뜩 움츠려 있던 동남아시아가 기세를 올린 것이다. 베트남 태국에 팔레스타인이 가세해 연령대별 대회이긴 하지만 아시아 축구 판도에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23세 이하 대표 선수들은 곧바로 국가 대표 선수들로 이어진다. 이번 대회 결과, 앞으로 어느 정도 아시아 축구 판도가 바뀌게 될지는 예상하기 어렵지만 한마디로 이제 아시아 축구에서 절대 강자도 절대 약자도 없을 것이라는 전망은 가능하다.

이번 대회에서 8강에 오른 나라 가운데 역시 가장 눈에 띄는 건 팔레스타인이다.

▲ U-23 팔레스타인 대표 팀 ⓒAFC

팔레스타인은 조별 리그 B조 마지막 경기에서 태국을 5-1로 크게 이겨 같은 승점의 북한(1승1무1패)을 골 득실 차로 따돌리고 일본(3승)에 이어 조 2위로 8강에 올랐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이 이스라엘 수도라고 일방적으로 선언하면서 다시 한번 격랑에 휘말린 팔레스타인이기에 이들의 선전은 눈길을 끈다. 팔레스타인은 어수선한 정치·사회적 환경이지만 12개 클럽이 참여하는 ‘웨스트 뱅크 리그’를 운용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이번 대회 선전뿐만 아니라 2019년 UAE에서 열리는 아시안 컵 본선에 올라 있다.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1라운드를 통과했다. 2014년 아시안 컵의 하부 대회 격인 챌린지 컵에서 우승했다. 만만찮은 경기력이다.

국가 대표 팀 가운데에는 스웨덴, 스위스 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있고 23세 이하 대표 팀 가운데에는 독일, 이스라엘, 스웨덴, 그리스 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가 있다. 23세 이하 대표 팀에는 특이하게도 미국 대학 팀 소속 선수가 2명이 들어 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영국령이던 1928년 축구연맹이 조직됐다고 하니 복잡한 지정학적 요인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실력보다 훨씬 더 발전해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할 수 있다. 대한축구협회 전신인 조선축구협회가 창설된 게 1933년이다.

박항서 감독이 사령탑을 맡으면서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 베트남은 1970년대 중반 이전, 남베트남 때부터 한국과 많은 교류를 했다. 한국의 일방적인 우세였지만 2003년 10월 이른바 ‘무스카트 참사’로 불리는 0-1 패배가 이번 대회에서 한국이 거둔 2-1 역전승과 묘하게 겹쳐 보인다. 베트남은 한국과 경기 패배 이후 호주를 1-0으로 잡는 ‘박항서 매직’을 펼쳤고 시리아와 경기에서는 단단한 수비 축구로 이 대회 두 번째 출전만에 8강에 오르는 기쁨을 누렸다.

말레이시아는 이라크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와 겨룬 ‘죽음의 조’에서 살아남는 저력을 보였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올림픽 지역 예선 등 주요 국제 대회에서 번번이 한국 발목을 잡았던, 중·장년 팬들에게는 아시아의 축구 강호로 기억되는 말레이시아가 지난날의 영광을 되찾는 첫걸음이 될지도 모르는 성과였다.

그런데 이번 대회는 예선부터 변화의 조짐이 있었다. 팔레스타인이 요르단을 3-2로 꺾고 E조 1위로 본선에 올랐고 일본과 사우디아라비아는 J조와 B조에서 각각 중국과 이라크에 뒤진 가운데 성적이 좋은 예선 조 2위로 본선에 턱걸이했다. 이란은 A조에서 오만에 밀려 예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 대회는 국가 대표 선수들이 겨루는 무대가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해졌다. 한국이 베트남에 고전했다고 “그게 축구냐“라고 비난할 때는 지났다. 하나 더, 아시아 지역에서 볼 깨나 찬다는 나라들은 이제 모두 앞뒷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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