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언. ⓒ스포티비뉴스 DB
[스포티비뉴스=정철우 기자]짧았지만 굵고 임팩트 있었다. 현역 연장을 선택한 김경언의 야구 인생이 그랬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한화에서 방출된 김경언은 그동안 이적할 수 있는 팀을 찾아 왔다. 하지만 올 스토브리그를 강타한 베테랑 한파 속에서 결국 살아남지 못했다. 모든 팀들이 전지훈련을 떠난 지금까지 팀을 구하지 못했다.

그러나 취업 한파도 그의 의지까지 꺾지는 못했다. 김경언은 대만이나 미국 마이너리그 진출로 현역 생활을 이어간 뒤 한국 팀들의 부름을 기다리기로 했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임팩트 있는 야구 인생이었다. 길고 긴 시간을 유망주로 보냈고 잊혀지는가 싶었던 순간 화려하게 알을 깨고 나왔다. 그러나 그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김경언은 2001년 해태에 입단해 KIA로 유니폼을 갈아입으며 데뷔했다. 첫해 65경기 출장에 그쳤지만 타율 2할8푼7리를 기록하며 좋은 인상을 남겼다. 타격 재주 하나만은 인정받는 유망주였다.

하지만 오랜 시간 유망주에만 머물러 있었다. 타격 능력은 좀처럼 발전하지 않았고 어설픈 수비 실력은 그의 발목을 강하게 잡아챘다.

어느새 유니폼은 KIA에서 한화로 바뀌어 있었다. 그럼에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늘 수비가 부실한 타격 유망주라는 평가만 받으며 애꿎은 시간만 흘러갔다.

하지만 그 타격 능력이 드디어 한번은 터졌다. FA 자격을 얻은 2014년 시즌 규정 타석엔 모자랐지만 처음 3할 타율을 기록하며 존재감을 보였다.

그럼에도 그는 시장에서 인기 있는 선수는 아니었다. FA 시즌을 앞두고 잠깐 반짝한 것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수비 실력을 뛰어넘을 정도의 타격 능력은 아니라는 평가도 곁들여졌다. 결국 3년 8억5000만 원이라는 상대적인 헐값에 계약하며 한화에 잔류했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대단한 반전이었다. 확실히 타격 능력이 달라졌다는 걸 이듬해 보여 줬다.

타율 3할3푼7리 16홈런 78타점으로 팀의 중심 타자로 자리매김했다. 한화는 그의 활약에 힘입어 한때 포스트시즌 진출을 꿈꿀 수 있을 정도로 도약의 시기를 맞기도 했다. '마리한화'라는 별칭을 얻은 것도 이 즈음이다.

30대 중반에 맞이한 첫 번째 전성기였다. FA 거품 논란이 있던 시대, 팬들은 '혜자 계약'(가성비가 높은 계약)이라며 그를 칭송했다.

하지만 전성기는 길지 못했다. 계속된 부상이 김경언의 발목을 잡았다. 허벅지, 종아리, 발가락 등 부위도 다양하게 잇달아 부상했다. 눈을 뜬 타격 능력을 보여 주기엔 부상의 벽이 너무 높았다.

결국 2016년과 2017년 104경기에 출장하는데 그쳤고 결국 2017년 시즌을 끝으로 팀에서 방출 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짧았지만 화려했던 전성기를 되살려 보기 위해 마지막 도전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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