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트넘 vs 아스널 선발 포진도 ⓒ김종래 디자이너

[스포티비뉴스=한준기자] 토트넘홋스퍼가 맨체스터유나이티드, 리버풀, 아스널을 차례로 상대한 일정을 2승 1무로 마쳤다. 안방에서 맨유와 아스널을 꺾었고, 안필드에서 리버풀과 비겼다. 이 세 경기에서 손흥민은 전술적으로 매우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이 이끄는 토트넘 공격은 손흥민, 델레 알리, 해리 케인, 크리스티안 에릭센 등 공격 4중주가 이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네 명의 선수가 손흥민의 위치에 따라 전술적으로 전혀 다른 플레이를 펼칠 수 있다는 점이다. 손흥민은 케인과 투톱으로 서거나, 케인이 원톱일 때 왼쪽 측면에 배치될 때 모두 전술적으로 자신의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 



◆ 원톱, 투톱, 스리톱 어디에나 잘 어울리는 손흥민

맨유와 경기에서 손흥민은 왼쪽 측면 공격수로 뛰었다. 안으로 좁혀 들어오며 골문을 직접 위협했다. 경기 시작 11초 만에 나온 크리스티안 에릭센의 선제 골은, 해리 케인의 헤더 패스를 받아 문전 오른쪽을 파고든 손흥민의 1차 침투가 바탕이 됐다.

리버풀과 경기에서 손흥민은 케인과 투톱을 이뤘다. 손흥민은 “상대에게 부담스러운 움직임을 주려 했다”고 설명했다. 리버풀은 마네, 피르미누, 살라의 스리톱과 잔, 밀너 등 두 명 미드필더를 중심으로 공격하고, 좌우 풀백을 높이 올리지 않자 중앙 지역에서 센터백을 직접 위협하도록 한 것이다. 

손흥민과 케인이 투톱으로 나서면서 리버풀의 두 센터백 판데이크와 로브렌은 수적 우위를 점하지 못했고, 조던 헨더슨과 두 풀백 모두 수비 부담을 떨치고 전진하기 어려웠다. 손흥민과 케인 뒤에 알리와 에릭센이 배치되면서 헨더슨이 중앙 지역에서 받는 부담은 더 커졌다.

손흥민은 투톱 중 왼쪽으로 배치되었으나 직접 공을 소유하고 운반하고 슈팅하기 보다 공간을 차출하고 패스를 연결하는 이타적인 플레이에 집중했다. 맨유와 경기에서도 커트인 움직임과 왼쪽 측면에서 오른쪽 측면으로 크게 전환하는 패스로 팀 플레이에 주력한 손흥민은 두 경기 모두 공격 포인트를 올리지 못했으나 전술적으로는 자기 몫을 다 했다.

아스널과 북런던 더비에서는 또 다른 형태로 기여했다. 포체티노 감독은 이 경기에서 비대칭으로 공격진을 운영했다. 케인을 원톱으로 두고 손흥민은 왼쪽 측면에 넓게 뒀다. 알리가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에릭센이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로 섰는데, 알리가 중앙 미드필더 영역까지 넓게 움직이며 중원 플레이에 임하고, 애릭센이 처진 공격술 자리로 진입했다. 

▲ 벨레린의 오버래핑을 제어한 손흥민의 배치 ⓒ게티이미지코리아


◆ 벨레린 묶은 아스널전, 케인의 선제골 뒤에 손흥민이 준 부담 있었다

손흥민이 왼쪽 측면에 넓게 서면서 아스널의 라이트백 엑토르 벨레린은 거의 오버래핑 기회를 잡지 못했다. 손흥민의 돌파에 대비하느라 뒷걸음질을 쳤다. 에릭센이 중앙으로 좁혀오고, 키어런 트리피어가 오버래핑하면서 토트넘은 공격 지역에서 수적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벤 데이비스는 손흥민이 사이드 라인을 타고 움직이자 수비 지역에서 메수트 외질과 잭 윌셔의 공격 전개를 제어할 수 있었다. 

아스널은 벨레린과 몬레알이 올라가지 못하고, 엘네니와 자카가 토트넘 공격 4중주 대응에 신경 쓰느라 공수 간격이 벌어졌다. 토트넘도 전반전에 포백 라인과 중앙 미드필더의 위치를 보수적으로 운영해 오바메양이 힘껏 달릴 공간도 나오지 않았다. 다빈손 산체스는 특히 군더더기 없는 플레이로 헨리크 미키타리안을 꽁꽁 묶었다. 

전술 효과는 연쇄적이다. 시작은 손흥민이 벨레린의 영향력을 묶는 데서 시작했다. 후반 4분 케인이 넣은 선제골에도 손흥민의 전술적 위치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데이비스가 왼쪽 후방 지역에서 아스널의 견제 없이 얼리 크로스를 안정적으로 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손흥민이 그 앞의 왼쪽 사이드 라인에서 벨레린을 상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손흥민을 막기 위해 벨리린이 벌려 나오면서 아스널 수비 공간은 촘촘하게 유지되지 못했다. 데이비스의 크로스를 마무리한 케인의 개인적인 힘과 높이, 헤더 능력이 빛난 골이기도 했으나 손흥민이 경기 내내 측면에서 준 부담이 아스널 수비진에 준 부담도 만만치 않다.

▲ 리버풀과 경기에선 중앙 지역을 공략한 손흥민 ⓒ게티이미지코리아


◆ 토트넘 공격 변환 열쇠는 손흥민, 당당한 주전 공격수

오른발 잡이인 손흥민은 왼쪽 측면에서 중앙으로 치고 들어가며 슈팅하는 플레이를 즐겨왔다. 양발을 잘 쓰는 손흥민은 왼쪽이서 뛰어도 전통적인 윙어 영역을 지배하며 크로스를 올릴 수 있다. 양발을 잘 쓰고 빠르다 보니 스트라이커로 배치되어서 전후좌우로 움직이며 다양한 공격 패턴을 만들 수 있다. 

감독 입장에서 손흥민은 원톱, 투톱, 스리톱 등 공격 형태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도록 해주는 만능 열쇠 같은 선수다. 최근 손흥민이 발전한 부분은 공간을 찾아 움직이고, 빈 공간을 향해 빠른 타이밍의 패스를 보내는 시야가 좋아진 것이다. 공을 잃었을 때 전방 압박의 밀도도 높아졌다. 원래 가진 장점에, 전술 이해력까지 높아지면서 손흥민은 월드클래스 반열에 오르고 있다. 

포체티노 감독은 후반 25분께 에릭 라멜라를 투입하며 손흥민을 첫 번째 교체 아웃 선수로 택했다. 손흥민이 뉴포트카운티와 FA컵 경기까지 소화하면서 최근 주중, 주말 경기 강행군 일정을 소화했기 때문에 체력을 안배했다. 14일 새벽 치를 유벤투스와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경기에도 손흥민을 중용하겠다는 의중을 보인 것이다. 

처음 토트넘에 입성했을 때 손흥민은 라멜라와 경쟁하는 위치였다. 케인, 알리, 에릭센 보다 반 발 정도는 뒤에 있는 로테이션 선수로 여겨졌다. 이제는 이들과 동등한 비중을 갖는 팀의 핵심 선수다. 골이 존재감의 지표는 아니다. 손흥민은 득점 없이도 토트넘이 가장 큰 경기를 치를 때 반드시 필요한 선수로 자리잡았다.

글=한준 (스포티비뉴스 축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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