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준환(왼쪽)과 하뉴 유즈루 ⓒ GettyIimages

[스포티비뉴스=강릉, 조영준 기자] 평창 올림픽 남자 싱글을 가리켜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은 홈페이지에 ‘4회전 점프의 전쟁(The Battle of the quadruple jump)’이라고 명명했습니다. 네 이 말이 맞습니다.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을 전후해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의 기술은 빠른 속도로 높아졌습니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는 쿼드러플(4회전) 점프가 없었던 에반 라이사첵(33, 미국)이 우승했습니다.

그의 우승을 놓고 찬반양론이 많았습니다. 라이사첵과 금메달 경쟁을 펼친 예브게니 플루센코(36, 러시아)는 “남자 싱글에서 4회전 점프 없이 우승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강력하게 불만을 드러냈죠. 이후 남자 싱글에서 4회전 점프는 상위권으로 도약하기 위한 ‘필수 요소’가 됐습니다.

말 그대로 16일 열린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은 ‘4회전 점프의 경연장’이었습니다. 이날 최종 승자는 하뉴 유즈루(24, 일본)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을 경악하게 만든 이는 ‘점프 괴물’ 네이선 천(18, 미국)입니다. 그는 프리스케이팅에서만 쿼드러플 점프를 6번 시도했습니다. 단독 쿼드러플 플립은 착지 도중 빙판에 손을 짚었지만 남은 5개의 점프는 공중을 가르며 도약해 안전하게 착륙했습니다.

천은 프리스케이팅 기술점수(TES)에서만 127.64점이라는 어머어마한 점수를 받았습니다. 프리스케이팅에서 215.08점을 받으며 자신의 개인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죠. 그러나 쇼트프로그램에서 범한 엄청난 실수는 프리스케이팅이 선전으로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천은 하뉴에게 가장 위협적인 경쟁자였습니다. 지난해 2월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천은 하뉴를 꺾고 이 대회 정상에 올랐습니다. 점프와 기술적인 면만 놓고 보면 지구상에서 그를 따라올 스케이터는 현재 없습니다.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천은 하뉴(206.17)를 제치고 1위에 올랐습니다. 만약 천이 쇼트프로그램에서 허무하게 무너지지 않았다면 결과는 어땠을까요? 두 선수의 접전은 쉽게 점치기 어려워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뉴와 천은 분명한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하뉴는 시니어 2년째인 2011~2012 시즌부터 올해까지 자신이 출전한 대회에서 4위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반면 천은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6위에 그쳤습니다. 가장 어려운 기술을 구사하는 천은 한번 무너지면 탈출구를 찾지부 못하는 약점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기복이 있다는 점이죠. 차준환(17, 휘몬고)이 쇼트프로그램에 쿼드러플 점프를 넣지 않은 점은 이유가 있습니다. 만약 이 기술에서 실수할 경우 점프를 세 번 밖에 뛰지 못하는 쇼트프로그램에서는 매우 치명적입니다. 올림픽에 세 번 출전(1988년 캘거리, 1992년 알베르빌, 1994년 릴리함메르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에 나선 정성일(49) 코치는 “네이선 천이 쇼트에서 그렇게 큰 실수를 했어도 프리스케이팅에서는 훨씬 높이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4회전 점프가 워낙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경기를 하고 있는 하뉴 유즈루 ⓒ KPAN
아직 18살인 천과 비교해 하뉴는 산전수전을 겪은 ‘역전의 용사’입니다. 큰 무대에서 자신을 조절하는 법을 하뉴는 알고 있습니다.

하뉴는 평창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뒤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제 장점 가운데 하나는 스스로를 잘 분석한다는 점이다. 점프를 뛰지 못할 때는 이미지 컨트롤로 하지 못하는 연습을 대체한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하뉴의 올림픽 2연패 도전은 쉽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지난해 11월 오른쪽 발목 부상을 입은 하뉴는 한 달간 스케이트를 타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스케이트를 타고 점프를 하는 것보다 어려운 점이 빙판에 제대로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하뉴는 제 기량을 찾고 강릉에 왔습니다. 방상아 SBS 피겨스케이팅 해설위원은 “하뉴 같은 정상급 선수들은 운동을 쉬어도 오랫동안 해온 노하우와 감각이 있기에 자신의 기량을 회복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이 거의 매일 점프를 뛰며 연습하는 것은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한 달간 빙판에 서보지도 못하고 3회전 점프를 3주, 4회전 점프를 2주간 뛰어보고 올림픽에 출전해 좋은 성과를 얻는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뉴는 이것을 이겨냈습니다. 어쩌면 ‘하뉴’이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하뉴는 빙판에서 점프 훈련을 하지 못했지만 이미지 트레이닝과 지상 훈련으로 이를 대체했습니다. 오랫동안 수도 없이 뛰어본 점프 감각은 ‘몸이 기억’하고 있었죠. 여기에 흔들리지 않는 강한 정신력까지 발휘하며 올림픽 2연패에 성공했습니다.

미래가 기대되는 차준환, 4년 뒤에는 어떤 선수로 성장할까.

그럼 차준환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입니다. 차준환은 처음 출전한 올림픽에서 쇼트(83.43점)와 프리스케이팅(165.16점) 그리고 총점(248.59점)에서 모두 자신의 개인 최고 점수를 받았습니다. 차준환은 1994년 릴리함메르 올림픽에서 정성일 코치가 기록한 종전 역대 한국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최고 성적인 17위를 뛰어 넘었습니다.

사실 차준환은 올림픽을 앞두고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부상과 부츠, 여기에 전 소속사에서 나온 문제 및 여러 일들이 그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한 마디로 선수 생활에 큰 고비가 찾아왔죠. 이럴 경우 선수 본인과 가족들이 미래에 희망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면 선수 생활을 접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니어 데뷔 시즌이자 올림픽이 열린 2017~2018 시즌은 차준환에게 가시밭길을 걸어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차준환은 스케이트가 가장 재미있다고 밝혔습니다. 또래 남자 아이들이 축구와 야구, 게임 등에 빠져있을 때 차준환은 스케이트를 탔습니다. 그러나 선수의 길을 선택하고 어느 정도의 궤도에 오르면 스케이트 자체를 즐기는 일은 어려워집니다. 그러나 끝내 이런 시련을 이겨냈죠. 17일 프리스케이팅을 마친 차준환은 "지난해와 올해 굉장히 힘든 일이 많았다. 그런데 항상 엄마가 제 옆에 계셔서 도움이 컸다. 엄마랑 둘이서 있을 때는 서로 안 맞아 티격태격할 때도 있었다"며 "아침에는 아빠와도 통화했는데 투정을 부렸다. 그런데 눈물이 나더라. 부모님이 항상 도와주셔서 고맙고 지금 가장 보고 싶다"고 속내를 털어놓았습니다.

차준환의 경기를 지켜본 방 위원은 "올 시즌 차준환은 어려운 점이 많았는데 매우 훌륭하게 해냈다. 첫 올림픽 출전은 다음 대회(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 발돋움 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프리스케이팅에서 차준환은 쿼드러플(4회전) 살코를 뛰다 빙판에 넘어졌다. 방 위원은 "지금은 성장하는 기간인데 거의 청년이 됐다. 4회전 점프를 하려면 근육이 잡히고 힘도 붙어야 한다. 성장기에 무리하게 되면 오히려 성장에 좋지 않다"고 설명했죠.

이번 평창 올림픽에서 차준환의 성적인 15위는 매우 선전한 결과입니다. 현재 남자 싱글의 국제 대회 경쟁 구도와 여자 싱글을 비슷하게 비교하면 안 됩니다. 남자 싱글은 하루가 다르게 기술의 난이도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4회전 점프를 한 번 시도한 차준환의 앞날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습니다.

문제는 남자 선수들의 전성기는 20대가 넘어야 시작된다는 점이죠. 차준환은 이제 겨우 시니어 데뷔 첫 시즌을 치른 선수입니다. 또한 그가 여전히 성장기에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합니다. 4회전 점프에 대해 차준환은 “서두르지 않고 하나하나 차근차근하게 완성하겠다. 잘 되는 트리플 점프가 있으면 그 점프로 4회전 연습도 하면서 준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방 위원은 "차준환은 충분이 4회전 점프를 해낼 역량이 있는 선수다. 아직 성장하고 있는 중인데 무리할 필요는 없다. 남자 선수는 지금보다 더 힘이 붙어야 한다"며 "하뉴도 시니어 국제 대회에서 금방 우승한 것도 아니고 은메달리스트인 우노 쇼마(20, 일본)도 마찬가지다"고 설명했습니다.

차준환의 등장과 더불어 그의 빠른 성장에 기대를 거는 이들은 적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제 만으로 16살인 선수에게 시니어 정상급 선수들의 기량을 기대하면 안 된다는 점입니다. 차준환의 성장은 같은 동료는 물론 여자 선수와도 다릅니다. 그를 ‘남자 김연아’라고 부르고 있지만 하루아침에 세계 정상권 선수로 발돋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평창 올림픽에서는 마지막 올림픽이라 여기고 온 선수들도 있습니다. 반면 차준환 같이 4년 뒤 베이징 올림픽에 초점을 맞추는 어린 선수들도 경기에 출전했습니다. 5위에 오른 네이선 천과 6위 빈센트 자우(미국) 등의 선수는 앞으로 차준환과 꾸준하게 국제 대회에서 경쟁을 펼칩니다.

이들은 이미 다양한 4회전 점프를 뛰고 있습니다. 그러나 방 위원은 이런 강한 경쟁자가 있는 것이 선수의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는 “오히려 그렇게 잘하는 선수가 많은 점은 선수에게 긍정적인 자극이 된다. 현재 4회전 점프도 많이 뛰고 잘하는 선수들이 있는 점에 차준환이 신경쓸 필요는 없다. 그도 그런데 솔깃할 선수도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부상이 없이 건강한 상태였던 지난해 그는 쿼드러플 살코 성공률이 매우 좋았습니다. 중요한 점은 차준환이 ‘점퍼’보다 ‘올라운드 플레이어’를 꿈꾸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뉴는 현 남자 싱글 최고의 올라운더입니다. 각종 기술은 물론 독창적인 표현력과 표정 연기도 일품이죠. 많은 피겨스케이팅 지도자들은 “끼와 표현력 그리고 표정 연기 등은 선수가 어느 정도 타고나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제 겨우 10대 중반인 차준환은 이 점을 갖췄습니다. 점프 및 기술도 중요하죠. 여기에 부상 관리를 잘하고 4회전 점프의 수를 늘리면 4년 후를 기약할 수 있습니다.

네이선 천이 점퍼라면 하뉴는 '올라운더'입니다. 현재 차준환의 성장 과정을 보면 후자에 가깝습니다. 올림픽을 마친 차준환은 오는 3월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합니다.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