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소치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에서 우승한 한국 대표팀. 시계 방향으로 박승희 김아랑 조해리 공상정 심석희.

[스포티비뉴스=평창특별취재팀 김건일 기자]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1500m 메달 후보였던 박승희가 훈련 도중 무릎을 다쳤다. 박승희를 대신할 선수가 필요했다. '맏언니' 조해리(당시 28세)가 손을 번쩍 들었다.

여유 있게 예선을 통과한 조해리는 준결승에서 김아랑(당시 19세)의 '호위무사'를 자청했다. 자신보다 더 좋은 기록을 갖고 있는 김아랑을 밀어 주겠다는 생각이었다. 조해리는 시작부터 선두로 치고 올라갔다. 김아랑에게 공간을 터 줬다. 김아랑은 조해리가 열어 준 길을 가뿐히 통과했다. 김아랑이 여유 있게 달리는 동안 뒤로 밀려난 조해리는 치열한 몸싸움을 벌였다. 뒤쪽 선수를 견제하는 과정에서 팔을 썼다는 이유로 실격 처리됐지만, 한국은 그에게 박수를 쳤다.

선수 생활 마지막이 될지도 몰랐던 올림픽 무대에서 조해리는 메달 욕심을 내지 않았다. 그는 "내가 할 일은 맏언니로 후배들을 하나로 뭉치는 것이다. 다행히 후배들이 잘 따른다. 우린 단합력이 최고"라고 만족해했다. 찰떡궁합 대표 팀은 3000m 계주 우승으로 조해리에게 올림픽 첫 메달을 안겼다.

▲ 김아랑 ⓒ연합뉴스

4년 뒤 평창 동계올림픽. 조혜리가 떠난 빈자리는 당시 19세였던 김아랑이 채웠다. 김아랑은 올해 나이 23세에 심석희(21, 한국체대), 최민정(20,성남시청), 김예진(19,평촌고), 이유빈(17, 서현고)로 이루어진 한국 여자 대표 팀 맏언니다.

김아랑은 경기장 안팎에서 동생들을 챙겼다. "계주에서 일을 한 번 내자"며 훈련에서 힘들어하는 선수들을 다독였다. 경기장 밖에선 먼저 고민을 들어주려 애썼다. 생일을 챙기는 것도 김아랑의 몫. 지난달 30일 자신의 SNS에 대표 팀 동생 심석희의 생일에 활짝 웃는 단체 사진을 올렸다. 구타 사건 등으로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심석희에게 그가 남긴 메시지는 "D-10, 힘들어도 힘내기! 흔들리지 말기! +수키 생일 추카추." 올림픽에선 최민정과 같은 방을 쓴다. 최민정은 "아랑이 언니가 너무 큰 의지가 된다"고 했다.

1500m에서 금메달을 딴 최민정이 눈물을 흘릴 때, 4위로 골인한 김아랑이 다가왔다. 올림픽 첫 개인 메달을 놓친 아쉬움은 전혀 없었다. 김아랑은 환하게 웃었다. "괜찮아요. (준결승전에서 떨어진) 석희 몫까지 하려다 보니 마음이 더 무거웠어요. 그런 마음으로 두 명이 올라갔는데 민정이가 1등을 했어요. 민정이가 우리 몫을 다 했어요." 입소 당시 "책임감이 크다"고 부담스러워했던 김아랑이 맞나 싶다.

김아랑은 개인 메달에 욕심이 없었다. 그가 바랐던 것은 3000m 계주 금메달. 소치 올림픽에서 시상대 맨 위에 올랐었던 김아랑은 "5명이서 함께 금메달을 목에 거는 기분이 너무 좋다. 다시 느끼고 싶다. 즐겨서 일 한 번 내겠다"고 말했다.

20일 결승에서 컨디션이 좋지 않은 최민정을 대신해 3번에 배치된 김아랑은 6바퀴를 남기고 아웃코스에서 한 바퀴 반을 질주하며 추월에 성공했다. 김아랑의 스퍼트로 선두권에 오른 한국은 최민정이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해 올림픽 계주 6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대표 팀의 든든한 배경을 자청했던 김아랑은 '킹 메이커'였다.

"다 같이 시상대에 올랐던 기분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는 맏언니 김아랑의 소망이 이루어진 순간. 김아랑은 활짝 웃었다. "동생들 모두 다치지 않고 좋은 결과를 보여 줘서 더 기분이 좋다." 4년 전 조해리처럼 든든한 맏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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