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우승을 다투는 알리나 자기토바(왼쪽)와 예브게니아 메드베데바 ⓒ GettyIimages

[스포티비뉴스=강릉, 조영준 기자] 21일 강원도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는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이 진행됐습니다.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은 동계 올림픽의 '꽃'으로 불립니다. 전통적으로 남자 아이스하키와 올림픽 대미를 장식하는 종목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번 평창 올림픽은 여자 싱글보다 남자 싱글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았습니다. 다양한 4회전 점프를 뛰는 선수들의 기술에 관중들은 탄성을 내질렀죠. 여자 싱글도 남자처럼 '예술'보다 '기술'에 치우친 경향이 강합니다.

애초 평창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은 예브게니아 메드베데바(18, 러시아)가 가져갈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기록적인 면을 볼 때 메드베데바는 김연아(28) 이후 가장 독보적인 스케이터입니다. 그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주니어 무대에서 활약했습니다. 2년간 국제 대회에서 9번 출전해 7번 우승했습니다. 2015년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 정상에 오른 그는 2015~2016 시즌부터 시니어 무대에 도전합니다.

메드베데바의 시니어 성적은 경이로울 정도입니다. 2015~2016 시즌부터 올해까지 총 15번의 국제 대회에 출전했습니다. 13번은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섰고 두 번은 2위를 했습니다. 이 정도면 감히 '천하의 메드베데바'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범한 재능을 가진 '천재 소녀'가 불쑥 등장했습니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인 알리나 자기토바(15, 러시아)는 지난달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유럽선수권대회에서 메드베데바를 이겼습니다. 메드베데바는 올림픽 시즌 부상으로 한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했습니다. 발목 부상으로 그는 지난해 12월 그랑프리 파이널 출전을 포기했습니다. 러시아 선수권대회 무대에도 서지 못하게 됐죠.

▲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경기를 마친 뒤 환하게 웃는 알리나 자기토바 ⓒ GettyIimages

유럽선수권대회에서 복귀했지만 무섭게 치고 올라온 자기토바의 열풍에 고개를 떨궜습니다. 이 대회에서 1위 자기토바는 238.24점, 2위 메드베데바는 232.86점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운명의 올림픽 무대에 섰습니다. 개인전 쇼트프로그램에서 먼저 빙판에 나선 이는 메드베데바였습니다. 그는 트리플 플립 + 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와 트리플 루프, 더블 악셀을 깨끗하게 뛰었습니다. 트리플 루프는 1.8점의 높은 수행점수(GOE)를 챙겼습니다. 세 가지 스핀(플라잉 카멜 스핀, 체인지 콤비네이션 스핀, 레이백 스핀)은 모두 최고 등급인 레벨4를 받았습니다.

클린 경기에 성공한 그는 팀 이벤트(단체전)에서 자신이 기록한 역대 최고 점수인 81.06점을 넘어섰습니다. 그런데 이후 빙판에 선 자기토바는 메드베데바의 아성을 뛰어넘었습니다.

자기토바는 기술점수(TES) 45.3점 예술점수(PCS) 37.62점을 합친 82.92점을 받았습니다. 메드베데바의 점수보다 1.31점 높은 점수입니다. 러시아에서 온 두 소녀는 세계 기록을 연이어 갈아치우며 금메달 경쟁에 나섰습니다.

자기토바와 메드베데바의 차이점은 '러츠'에 있습니다. 트리플 러츠(기초점수 : 6점)를 제대로 뛰는 자기토바는 메드베데바가 구사하는 트리플 플립(기초점수 : 5.3점) + 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보다 점수가 높은 트리플 러츠 + 트리플 루프를 뜁니다. 자기토바는 단독으로 트리플 플립을 뛰고 그 다음 더블 악셀을 구사합니다.

▲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경기를 마친 뒤 팬들이 던진 인형을 들고 환하게 웃는 예브게니아 메드베데바 ⓒ GettyIimages

반면 메드베데바는 콤비네이션 점프에서 트리플 플립을 뛰었기 때문에 단독 점프로 트리플 플립보다 기초 점수가 낮은 트리플 루프(기초점수 : 5.1점)를 뛴다. 이렇다 보니 기술적인 면에서는 자기토바가 앞섭니다.

예술적인 면에서는 시니어 겸험이 많은 메드베데바가 우위에 있죠.

쇼트프로그램을 마친 이들은 공식 기자회견장에 참석했습니다. 다음은 자기토바와 메드베데바의 기자회견 중 일부입니다.

Q 23일 열리는 프리스케이팅에서 당신들 가운데 누구 한 명이 우승하면 러시아의 첫 올림픽 금메달이 된다.

메드베데바 - 그런 생각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전 깨끗한 경기를 보여주고 싶어요. 스스로 만족하면서 스케이트를 타고 싶습니다.

자기토바 - 저도 예브게니아(메드베데바)의 말에 동의합니다. 심판들과 관중들 그리고 제가 만족하는 무대를 보여주고 싶어요.

▲ 평창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프리 조 추첨식이 끝난 뒤 자리에서 일어나는 알리나 자기토바(앞) 뒤에 앉은 메드베데바는 뱃지 교환을 하고 있다. ⓒ 강릉, 스포티비뉴스

Q 두 선수는 경쟁심이 치열할 것 같은데 어떤가?

자기토바 - 오직 저 자신에 대해서만 생각합니다. 스스로 어떻게 경기를 할지에 대해서요.

메드베데바 - 알리나(자기토바)의 경기를 보면서 저도 많은 것을 배우려고 합니다. 프리스케이팅에서는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Q 팀 이벤트가 끝난 뒤 일본으로 건너가 훈련했는데?

자기토바 - 일본에서 잘 대해줬고 훈련에 몰두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준비해줬어요.

Q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은 러시아 선수들이 점령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메드베데바 - 저는 매일 알리나가 열심히 훈련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들은 피겨스케이팅 자체를 좋아해요. 코치들도 그렇게 조언해주시죠.

자기토바 - 저는 피겨스케이팅을 진심으로 좋아합니다. 그래서 매일 훈련하고 똑같은 것을 반복할 수 있어요. 전 거의 매일 아이스링크에 가서 훈련합니다.

이들은 아이스링크를 벗어나면 평범한 10대 소녀입니다. 쇼트프로그램이 끝난 뒤 자기토바와 메드베데바는 프리스케이팅 순서표를 뽑기 위해 기자회견장에 도착했습니다. 자기토바는 프리스케이팅 출전 선수 가운데 22번째로 무대에 나섭니다. 메드베데바는 가장 마지막 순서인 24번째에 경기를 펼치게 됐습니다.

프리스케이팅 조 추첨이 끝나자 이들은 자원봉사자 및 경기 운영 요원들과 핀 트레이딩(기념 뱃지 교환)를 했습니다. 또한 셀카도 찍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올림픽 금메달에 욕심을 내지 않고 자신의 경기에 집중한다고 밝혔습니다. 두 선수의 공통점은 실전 경기에서 좀처럼 실수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들의 재능과 실력은 분명 대단하지만 프로그램이 심심하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습니다.

기술과 안무는 처음부터 끝까지 섞여서 가야 보는 맛이 있습니다. 미국의 애슐리 와그너(26)는 미국 올림픽 선발로 발탁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러시아 선수들의 경기에 대해 "많은 점수를 받기 위해 점프를 후반에 몰아넣는 것은 피겨스케이팅이 아니다"라고 꼬집었습니다.

프로그램 절반이 지난 후에 뛰는 점프에는 기초 점수에서 가산점이 주어집니다. 이런 점을 노리기 위해 러시아 선수들은 이런 전술로 각종 국제 대회에 출전했습니다. 프로그램 후반부에 점프를 몰아서 뛰기는 여간 쉽지 않습니다. 이런 일을 한다는 점도 대단하지만 극적인 요소가 필요한 부분에서 점프를 뛰는 장면은 어째서 아쉬운 느낌이 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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