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다빈이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7위에 올랐다.
[스포티비뉴스=올림픽특별취재팀 신명철 기자] 2010년 밴쿠버 대회 금메달에 이어 2014년 소치 대회에서 금메달이나 다름없는 은메달에 빛나는 김연아에 이어 최다빈이 한국 여자 피겨스케이팅의 진면목을 다시 한번 전 세계 겨울철 스포츠 팬들에게 자랑했다.

최다빈은 23일 강원도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기술 점수(TES) 68.74점 예술 점수(PCS) 62.75점을 합친 131.49점을 받았다. 21일 열린 쇼트프로그램 점수 67.77점과 합친 총점 199.26점을 기록한 최다빈은 7위에 올랐다

김연아 이전 남녀를 막론하고 한국 선수 가운데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싱글 10위 안에 든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반세기 전만 해도 한국 피겨스케이팅 여건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1964년 동대문 밖 창신동 사거리에 문을 연 동대문 아이스 링크는 이제는 어디에 있었는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그 무렵 동대문 아이스 링크에서는 스케이팅 동호인과 아이스하키,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이 시간을 나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얼음판을 누볐다. 전진과 후진은 물론 급회전을 수시로 하는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빙판을 누더기로 만들어 놓았다.

원로 체육인들은 김연아의 선배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이 고개를 들지 못하고 훈련해 기술이 크게 늘 수 없었다고 증언한다. 이곳저곳에 파인 얼음에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단 것이다. 꽤 그럴 듯해 보이는 설명이다.

이런 일화도 있다.

춘천의 유명 유원지 공지천은 1960년대 후반에는 전국동계체육대회의 개최지로 이름을 알렸다. 피겨스케이팅 경기가 벌어지는 공지천 링크에는 구름 관중이 몰려 손을 호호 불어 가며 선수들의 묘기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여자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은 살을 에는 듯한 강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저마다 갈고닦은 실력을 뽐냈다. 서울 동신초등학교 6학년 때 국가 대표로 뽑힌 뒤 1969년 봄 경희여중에 진학할 예정이었던 이인숙은 그해 1월 벌어진 제50회 전국동계체육대회에서 선배들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얼음판을 누볐다.

“허허벌판에 만든 경기장이니까 바람을 막을 시설이 있을 리 없잖아요. 컴펄서리(규정 종목) 연기를 하는데 바람 때문에 가다가 서는 일도 있었답니다.”

8자를 그리거나 동심원을 돌거나 하는 컴펄서리는 세밀한 움직임이 필요하고 느린 속도로 연기하기 때문에 그러한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요즘 선수들이나 스포츠 팬들은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때는 그렇게 열악한 환경이었다.

그래도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는 이현주, 이인숙, 장명수, 홍혜경, 김영희, 김혜경 등 우수 선수들이 끊임없이 나오며 불을 뿜는 라이벌전을 펼쳐 나름대로 전성기를 누렸다. 1960년대 후반 장명수는 미국 콜로라도 스프링스로 피겨스케이팅 유학을 떠나기도 했다.

그 무렵 거의 모든 동계 종목 선수들과 청소년들이 그랬지만 이인숙도 7살 때 아버지가 사다 준 빨간 피겨(스케이트)를 신고 동네 얼음판은 물론 창경원(창경궁)에서 얼음을 지쳤다. 하루가 다르게 기량이 늘어난 이인숙은 1968년 그르노블 동계 올림픽 국내 선발전에서 선배 이현주에게 밀려 2위를 기록하며 아쉽게 세계 무대에 설 기회를 놓쳤다.

대한빙상경기연맹에서는 자비로 출전하면 보내 주겠다고 했지만 그 시절 유럽으로 가는 돈을 마련하기는 요즘 서울 시내에 30평대 아파트를 사는 일만큼이나 어려웠다.

“1980년대 이후에도 피겨스케이팅은 나름대로 발전했습니다. 상위 수준의 성적을 내지 못해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각종 국제 대회에서 꾸준히 중위권의 성적을 올렸습니다. 국제 무대에서 약소국이기 때문에 받았던 심판 판정의 불리도 이젠 없잖아요. 한국 여자 피겨도 이젠 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인숙이 2006년 인터뷰에서 글쓴이에게 한 말이다.

대한체육회 70년사에 따르면 1972년 한국을 찾은 윌리스라는 이름의 피겨스케이팅 국제 심판은 특별한 코멘트를 남겼다. 윌리스는 “한국인의 음악과 예술에 대한 소질 그리고 표현력의 장점을 살리고 외국의 기술과 훈련 방법을 도입한다면 상위권 진입이 가능하다”고 전망하면서 “국제 경기, 특히 세계선수권대회에 해마다 출전해 한국에서도 스케이팅 열기가 크다는 것을 알리는 게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는 선행 조건”이라고 조언했다.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김연아가 압도적인 실력으로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금메달을 따기 38년 전 일이다.

불모지를 개척한 선배들에 이어 김연아와 최다빈, 그리고 4년 뒤인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 때 10대 후반이 되는 ‘꿈나무’ 유영과 임은수, 김예림에 이르기까지 한국 여자 피겨스케이팅은 이들에 의해 끊임없이 발전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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