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화 ⓒ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강릉, 신원철 기자]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강릉 오벌은 10일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3,000m를 시작으로 24일 남녀 매스스타트까지 모두 14개 세부 종목이 열린 곳이다. 한국은 여기서 13일 남자 1,500m에 출전한 김민석의 깜짝 동메달을 시작으로 미래를 향한 희망을 발견했다. 19일 남자 500m 차민규가 은메달, 23일 남자 1,000m 김태윤이 은메달을 추가했다. 

믿고 보는 선수들의 경기력은 여전했다. 이상화가 18일 여자 500m 은메달, 이승훈이 21일 남자 팀추월(이승훈 김민석 정재원 출전)에서 은메달을 딴 뒤 24일에는 남자 매스스타트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같은 날 열린 여자 매스스타트에서는 김보름도 은메달로 시상대에 올랐다. 그러나 이런 반짝이는 순간 뒤에는 그림자도 있었다. 19일 여자 팀추월 예선에서 김보름과 박지우가 페이스를 올리는 사이 노선영이 뒤처졌다. 

◆ 당당한 이상화 "이미 전설적인 선수"

올림픽 정보를 제공하는 '마이인포'는 대회 마지막 날인 25일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15개 종목에서 나온 최고의 순간을 선정했다. 스피드스케이팅에서는 이상화와 고다이라 나오(일본)의 우정을 꼽았다. 여러 면에서 상반된 두 선수는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가장 주목 받은 라이벌 가운데 하나였다. 스포트라이트는 경쟁 관계에서 우정으로 옮겨졌다. 

한국과 일본이라는 국적 말고도 대비되는 점이 많다. 이상화가 2010년 밴쿠버, 2014년 소치에서 500m 금메달을 딴 리빙 레전드라면, 고다이라는 20대 후반에야 빛을 보기 시작한 대기만성형 선수다. 올림픽을 앞두고 페이스를 올린 이상화, 1,500m 노메달에 이어 1,000m에서 은메달로 '최다 3관왕' 기세가 꺾인 고다이라. 500m 결과는 예측 불허로 흘렀다. 결국 고다이라가 금메달, 이상화가 은메달을 땄다. 

부담감을 벗은 이상화는 눈물을 참지 못했고, 고다이라는 이상화를 위로했다. 라이벌 아닌 친구의 얼굴로 돌아와 태극기와 일장기를 들고 링크를 돌았다. 그리고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둘 사이의 우정도 세상 밖으로 전해졌다. 고다이라는 이 장면을 두고 "스포츠는 세상을 하나로 만들 수 있다"고 울림 있는 말을 남겼다. 

이상화는 강릉 선수촌에 입촌한 뒤 매일 같이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며 '#난나야' 라는 해시태그를 단 것에 대해 "주변을 의식하지 않겠다는 메시지였다. 제 갈 길을 가려는 주문이었다"고 털어놨다. 자기 확신은 누구보다 강한 이상화다. 그는 어떤 선수로 남고 싶으냐는 질문에 "전설적인 선수로 남고 싶어요. 이미 남았죠 ,뭐"라며 미소를 지었다. 그 말을 들은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 이승훈(오른쪽)과 정재원 ⓒ 연합뉴스
◆ 장거리의 이승훈, 단거리의 새얼굴

또 다른 전설적인 선수가 탄생했다. 이번에는 장거리에서 이승훈이 아시아 선수로는 가장 많은 동계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메달을 보유한 선수가 됐다. 2010년 밴쿠버 대회 5,000m 은메달과 10,000m 금메달로 시작해 2014년 남자 팀추월 은메달로 2개 대회 연속 메달을 기록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금메달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그가 ISU(국제빙상경기연맹) 세계 랭킹 1위로 있는 매스스타트가 올림픽 정식 종목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승훈은 5,000m 5위와 10,000m 4위로 '건재하다'를 넘어 '회춘했다'는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김민석 정재원과 뭉친 21일 팀추월에서는 은메달을 땄다. 장기인 막판 스퍼트로 뉴질랜드와 준결승을 승리로 이끌었다. 24일 열린 매스스타트는 정재원의 후방 지원에 힘입어 체력을 비축했고, 이번에도 마지막 역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3번의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와 은메달 3개. 그는 여전히 한국 최고의 장거리 선수이고 아시아의 자랑이다.

단거리에서는 반가운 새얼굴이 등장했다. 남자 500m와 1,000m, 1,500m에서 모두 메달이 나왔다. 시작은 1,500m 김민석이었다. 김민석의 동메달에 이어 500m에서 차민규가 0.01초 차 은메달을 땄고, 1,000m에서는 김태윤이 동메달을 얻었다. 장거리에도 새얼굴이 있다. 정재원은 아직 고등학생이다.   

▲ 김보름(왼쪽)과 노선영 ⓒ 연합뉴스
◆ 이것은 메달 때문이 아니다 

김보름에 대한 동정 여론이 일기 시작한 것이 메달 획득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김보름이 노선영, 박지우와 함께 출전한 21일 팀추월 7~8위 결정전에서 홈 팬들의 응원을 받지 못한 것은 맞다. 다른 선수들과 달리 강릉을 찾은 한국 관중들은 그에게 환호를 보내지 않았다. 있더라도 그 열기는 식어 있었다. 그러나 준결승 경기 중간에는 김보름이 페이스를 올릴 때마다 응원 소리가 커졌다. 이건 메달 때문이 아니다.  

19일 팀추월 경기 내용이 공분을 살 만한 빌미를 제공했다는 말은 맞다. 일부 해설위원들은 드러내 놓고 비판하지는 않았지만 조심스럽게 정상적인 경기 운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이들조차도 '가해자'로 낙인찍힌 김보름을 걱정했다. 노선영은 빙상경기연맹의 잘못으로 올림픽 출전이 좌절될 뻔한 말도 안되는 경험을 한 피해자다. 하지만 의견을 내는 방법은 썩 세련되지 못했다. 주장은 했지만 질문은 받지 않았다.  

이건 김보름이 메달을 땄기 때문이 아니다. 선악 구도는 이해하기 쉽고 편하지만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경우는 드물다. 정황 증거가 개인들의 문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고 판단하기도 어렵다. 진실 공방은 끝나지 않은 지금의 상태는 풀어 말하면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확신할 수 없는 단계라는 의미다. 나중에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다고 해도, 지금은 속단할 단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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