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대구의 주장, 한희훈 ⓒ정찬 기자
[스포티비뉴스=유현태 기자] '비 내린 뒤 땅이 굳는다' 그리고 '비 내린 뒤 무지개가 뜬다.' 한희훈의 축구 인생을 압축할 수 있는 말이다.

'비 내린 뒤 땅이 굳는다.' 시련이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뜻. 대구FC에서 가장 든든한 수비수 한희훈은 강등, 승격 실패, 1부 리그 잔류까지 모두 경험했다. 그래서 축구를 대하는 자세가 진지하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비가 내린 뒤엔 무지개가 뜬다.' 궂은 일 뒤엔 보람이 있다는 뜻의 중국 속담. 그래서 2017시즌은 한희훈에게 의미가 깊었다. 꿈에 그리던 1부 리그 팀에 합류해 주전으로 도약했다.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것을 또다시 증명했다. 

대구는 2017 시즌 8위로 K리그1(클래식) 잔류에 성공했다. 2018시즌을 앞두고도 한희훈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준비했다. 이제는 주장으로서 자신뿐 아니라 다른 동료들도 다잡으면서 앞으로 간다. 한희훈은 힘겨웠지만 보람을 발견했던 2017시즌에 이어, 다시 한번 대구의 하늘에 무지개가 뜨길 기다리고 있다.

지난달 19일 대구의 마무리 훈련이 한창인 제주 서귀포에서 한희훈을 만났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프로 정신이 투철한 한희훈의 매력을 흠뻑 느낀 시간이었다.

다음은 한희훈과 일문일답.

▲ 귀여운 포즈, 한희훈의 부천 시절. 그는 부천 시절을 '너무 좋았다'고 표현했다. ⓒ부천FC1995

◆ '비'가 내려 단단해졌던, 한희훈의 축구 인생

곡절이 적잖이 있었던 선수다. J리그 경험도 있고, 강등, 승격 실패, 승격, 잔류까지 두루 겪어봤다. 강등당할 때 기분은 어떤가.
(한희훈은 일본 도치기SC에서 강등을 겪었다.) 강등 위기를 겪을 때는 경기장 나가기가 싫다. 나가는 게 무섭다. 실수할까봐. 경기에서 지면 내 탓 같고, 강등도 나 때문에 당하는 것 같고. 그때는 정말 힘들었다. 그러면 안되는데 운동을 쉰 적도 있다. 도치기 있을 때다. 외국인 선수로 간 거라 내가 좀 했어야 하는데, 감독도 바뀌고 분위기가 도저히 강등권 탈출이 어려운 분위기로 가더라. 그래서 팬 분들에게 정말 미안했다.

승격 실패 경험은?
부천은 그래도 달랐다. 내가 부천에서 뛸 때 역대 최고 성적이라고 들었다. 17경기쯤 이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분위기도 좋았는데, 마지막 1,2분을 못 버텨서 승격을 못했다. 3,4일 잠을 못 잤다. 1,2발만 더 뛰었으면 오프사이드 피해서 결승 골을 넣었을텐데 싶었다. 힘들긴 힘들었다. 그래도 부천은 좋은 기억이 많다.

부천에선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았나.
일단 선수들끼리 관계가 정말 최고였다. 송선호 감독님도 좋았다. 사실 제의가 왔을 때 부천은 안 가겠다고 했다. 부천 이미지가 좋지만은 않았다. 시민 구단이라 살림살이도 넉넉하지 않다고 들었다. 송 감독님이 한 번 보자고 하시더라. 엄청 반겨주시고, 두 손을 잡으면서 1년만 해보자고 하셨다. 너를 주축이라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주겠다고 하시더라. 일본에서 큰 인정을 못 받았는데, 부천에서라면 인정도 받고 승격을 함께 해볼 수 있겠다 싶었다. 운동할 때도, 무릎이 좋지 않은데 몸 관리도 다 잘해주셨다. 그래서 경기력이 나온 것 같다. 부천에서 1년은 인생에서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부천 경기를 지난해에도 3,4경기 직접 가서 봤다. 선수들도 응원하고. 올해는 잘 됐으면 좋겠다.

20대 후반 맞나. 30대 중반은 훌쩍 넘은 느낌이다. 프로 선수를 마치고서 ‘그때 그렇게 할 걸’ 회고하는 사람 같다. 철이 일찍 든 것 아닌가.
철이 든 것도 맞다. 사실 나 스스로를 노력파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대학교, 프로까지 모두 열심히 했다. 일본에서 말도 안 통하는데 통역도 없이 운동했다. 처음에는 선수들이 공을 안 주고 무시하더라. 그걸 혼자 이겨냈고 여기까지 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철이 든 것 같다. 자세가 바뀐 것 같다. 일본 경험은 큰 도움이 됐다. 1년차 땐 말도 못하게 힘들었다. 아침을 굶고 점심을 한 끼에 1500원짜리 먹고, 저녁엔 집에서 보내준 라면을 먹었다. 돈이 없어서. 그렇게 3달을 버틴 것 같다. 그렇게 돈 모아서 집에서 돈도 드리고 했다. 부천에 온 이후 대우가 좋아져서 여유도 생기고 자신감도 생겼다.

▲ 2017시즌 중간부터 주장 완장을 찼던 한희훈 ⓒ대구FC

◆ 대구에 '무지개'가 뜨길 기다리며

대구에선 잔류를 이뤘다. 나름 안정적으로 살아남은 것 아닌가.
하아… 안정적으로 살아남은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위 스플릿에 가서 무패를 했기 때문에 그정도 차이가 났지, 그 전까지는 4연패, 5연패한 적도 있고 10경기 무승을 한 적도 있었다. 팬들에게 너무 죄송해서 진짜 힘들었다. SNS에 글도 쓰고 했다. 도중에 주장이 됐는데 부담감이 밀려오더라. 그땐 경기장 나가는 게 무서울 정도로 경기력이 안 좋았다. 그 위기를 잘 넘겨서 잔류할 수 있었다. 결과는 좋았지만 마냥 쉽지 않았다.

어떤 점이 좋아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나.
감독님이 선수들을 편하게 해주셨다. 브라질 출신이시라 그런 것 같다. 경기장에서 분위기가 안 떨어지도록 파이팅을 많이 불어넣었다. 선수 조합도 좋았다. 외국인 선수들하고도 발이 잘 맞아서 역습도 잘 됐고, 주니오가 들어오면서 힘이 된 것 같다.

그래서 새 외국인 선수 2명이 중요할 것 같다.
이 인터뷰가 개막 전에 나가는 것인가. (아마 그럴 것 같다.) 그러면 못한다고 하겠다. (다른 분들 평가도 비슷하더라. 시간이 필요하다던데.) 그럼 칭찬하겠다.(웃음) 지안은 일단 드리블이 좋다. 아직 완벽하진 않다. 팀플레이도 맞추고 고칠 부분도 있지만 힘과 스피드가 있어 좋은 선수가 될 것 같다. 카이온은 힘, 스피드, 골 결정력이 있고 연계 플레이도 된다. 활동량도 많아서 믿고 볼을 줄 수 있는 선수다. 세징야는 말할 필요가 없다.

시간이 필요할텐데.
맞다. 필요하다. 빨리 오면 좋겠는데 말을 못 하겠다. 선수들마다 특성도 있고. 월드컵 휴식기 전까지는 올라오길 바란다. 그 전에 6,7승만 되면 상위 스플릿 도전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올해 목표는.
전용구장 위치가 엄청 좋다. 내년 개장하는 전용구장에서 K리그1 팀들, 전북 현대, FC서울 이런 팀들과 붙고 싶다. 그래야 팬들도 더 즐겁지 않으시겠나. K리그2에도 좋은 팀은 많지만, 그래도 선수라면 1부 리그를 꿈꿔야 한다.

올해 이겨보고 싶은 팀은.
지난해 전북, 제주, 울산, 인천 못 이긴 것 같다. 인천은 짜증난다. 열심히 하는 팀은 이기가 힘들더라. 하지만 개인적으론 울산을 이기고 싶다. 울산이랑만 하면 못하더라. 실수도 잦아지고. 올해는 울산은 한 번 잡아보고 싶다.

쉽지 않은 시즌일 것이다. 지난해 경험이 있어 낫지 않을까.
분명 지난해 경험이 도움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대구는 항상 위기인 팀이라고 생각한다. 2,3년 후까지도 그럴 것이다. 항상 도전하는 팀일 것이다. 팀 목표는 상위 스플릿이라고 하지만, 개인적으론 잔류를 목표로 꼽고 싶다. K리그1에 잔류해서 새 전용구장에서 팬들을 만나고 싶다. 강등되면 정말 올라오기 힘들다. 죽기살기로 해야 할 것 같다. 다른 팀들도 위기인 팀들이 많으니 잡아먹으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모든 훈련에 진지한 한희훈.

◆ '수비수' 한희훈

경기장에선 '허슬 플레이'가 눈에 띄지만, 훈련장에서 보니 말이 또한 많은 선수더라. 본인은 어떤 수비수인가.
카를레스 푸욜을 좋아한다. 수비수가 열정이 없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주장으로서 말을 많이 한다. 지난해에는 지금처럼 말을 많이 하진 않았다. 연습 경기에서 패해서 말이 더 많이 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다치지 않으려다 보니 몸을 사리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더 강하게 요구했다. 수비수로서는 말을 많이 하고, 열심히 하고, 가장 강점인 부분은 생각이 조금 빠른 선수라고 생각한다. 상대를 읽는 부분이 잘 맞아서 인터셉트도 많이 하고 커버도 자주 갈 수 있다. 신체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그게 내 강점이다.

20대 후반이다. 수비수로서 신체 능력과 경험이 맞아 떨어져 ‘전성기’를 맞는다는 말이 많다. 올해가 전성기가 될 수 있을까.
내 전성기는 작년이었던 것 같다. 사실 매년 바뀐다. 부천에서 뛰던 2016년엔 그때가 전성기 같았다. 지금 마음은 나이가 있어서 쉽진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지난해처럼 뛸 수 있을까 싶지만, 열심히 하다 보면 올해도 전성기가 되지 않을까.

조광래 대표 이사님 덕분에 많이 성장했나.
시즌 초반 실수가 많았는데,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조 대표님의 공이 컸다고 생각한다. 거칠게는 말 안하신다. 조목조목 심장을 찌르는 말을 해주신다. 발보다, 공보다, 생각이 먼저라고 하셨다. 아직도 혼은 많이 나지만, 생각을 먼저 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래도 좋아해주시는 것 같다.

대표 팀 욕심은 나지 않나.
아이고, 선수로서 대표 팀 욕심 없는 선수가 어디있겠나. 당연히 기회가 되면 가고 싶다. 하지만 잘하는 선수가 가야지, 열심히 하는 선수가 가는 곳은 아니다. 나는 열심히 하는 것이지, 잘하는 선수는 아닌 것 같다. 친선 경기나 이럴 땐 한 번 가보고 싶긴 한다. 지금은 중요한 시기고, 축구 팬으로서 응원하고 싶다. 지금은 일단 관심은 없다. 대구가 살아남아야 나도 살지 않겠나.

주장으로서, 또 수비가 중요한 대구에서 핵심 수비수로서 부담감은?
작년 초반엔 수비 틀이 좀 잡혀있었다. 올해는 센터백이 많이 없다. 어린 선수들을 양쪽에 두고 경기해야 한다. 올해는 내가 더 뛰어야 할 것 같다. 선수들이 적응하고 자신감을 얻을 때까진 말도 많이하고 의지가 돼야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희생할 준비가 됐다.

▲ 대구FC의 2018년은 어떨까. ⓒ대구FC

◆ '주장' 한희훈

세징야가 에너지가 가장 많은 선수, 키플레이어로 꼽혔는데, 본인은 어떤 주장인 것 같나.
에너지가 많은 주장도 좋지만 잘하는 선수가 되고 싶은데 아직 실력은 부족한 것 같다. 사실 좋은 말보단 쓴소리를 많이 하는 주장이라 감독님도, 사장님도 걱정이 많으시다. 좋은 말도 좀 해야 할텐데. 일단 운동장에서는 누굴 시키기 전에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함께 구호를 외치거나 몸싸움을 강하게 하는 것도 나 스스로가 하지 않으면 선수들도 하지 않고 시킬 명분도 없다. 운동장에서 먼저 하려고 한다.

쓴 소리하는 주장 필요하지 않나.
어린 선수들이 많다 보니 말 한 마디에 심리적으로, 컨디션적으로, 경기 내에서도 변화가 올 수 있기 때문에 걱정하시는 것 같다.

리더십이 강한 것 같다. 좋아하는 후배들이 많더라.
운동장에선 장난을 많이 친다. 후배들하고 자주 어울리고 게임도 한다. 부천의 (임)동혁이와 경기는 많이 뛰지 못했지만, 안 좋은 점들이 좀 보이더라. 전화를 할 때도 있고 받을 때도 있는데, 잘못된 점들을 고쳐주고 했다. 그런 점을 잘 받아주는 선수는 친하게 지내는 것 같고, 그렇지 않으면 연락을 안하는 것 같다.(웃음) 내 말 만이 아니라 감독님, 코치님 말씀 잘 듣는 선수가 좋은 선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팀에 어린 선수들이 많다. 주장으로서, 선배로서 어린 선수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점이 있나. 조언을 하나 부탁한다.
대구 와서 느낀 것은 외국인 선수, 유망주 선발은 확실히 잘한다. 올해 (임)재혁이, (고)재현이도 좋고, 그 위에 (김)대원이, (박)한빈이, (홍)승현이 모두 잘한다. 이 선수들이 성장해야 한다. 조언하고 싶은 것은, 운동장에서 시키면 하는 것. 자기 스스로 할 줄 모른다. 몸에 배어야 하는데 그게 되질 않아서 화를 내면서 선수를 다잡는 것도 있다. 자기가 성장하려면 스스로 뭘 해야 할까 스스로 생각하고 해야 한다. 시키는 것 같아서 막 하는 것 같다. 부족한 것 같으면 개인 운동도 하고. 여기가 끝이 아니니까.  나야 어렵게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다 왔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프로 팀에 와서 절실한 마음, 간절한 마음을 모를 나이다. 한 달에 80만원씩 받으면서 세 끼 라면만 먹으면서 버텨본 적은 없을 것이다. 최고라는 생각을 버리고 배우려는 자세를 갖고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를 하다보니 뭔가 선수가 아니라 지도자와 이야기하는 느낌이 난다. 은퇴 후엔 지도자 생각은 하고 있는가.
당연히 할 거다. 조광래 대표님 밑에서 여러가지 배우고 있다. 일단 한다면 제대로 된 지도자가 되고 싶다. 조 대표님 같은 지도자가 되고 싶다. 안드레 감독님은 운동할 땐 자유롭게 하시는 점도 있지만, 내가 지도자면 선수들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운동량 지금보다 더 많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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