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수들은 뜨거웠지만 관중들은 뜨겁지 않았던 슈퍼 매치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수원, 한준 기자] 슈퍼 매치라는 단어가 수원 삼성과 FC 서울의 라이벌전을 수식한 지 10년. 이미 여러 차례 두 팀이 무력한 경기를 펼치고, 우승권에서 멀어지면서 ‘그냥 매치’라는 조롱이 나왔지만, 꾸준히 2만 이상의 관중을 모으며 기대를 받았던 슈퍼 매치의 유효기간이 이제는 정말 끝난 것 같다.

8일 오후 2시 수원월드컵경기장. 2018년 시즌 수원과 서울의 첫 대결은, 8년간 서울을 대표해온 레전드 데얀이 수원으로 이적하는 역대급 스토리 등장에도 1만 3,122명으로 슈퍼 매치 사상 최소 관중이 모인 가운데 득점 없는 무승부로 끝났다. 관심도 경기력도, 두 팀의 상황도 모두 ‘슈퍼’와 거리가 멀다.

한동안 포근하던 봄 날씨는 4월 첫 주말을 맞아 급격히 기온이 떨어졌다 수원 관계자는 서서히 오르던 예매율이 경기 하루 전 찾아온 강풍과 비 소식으로 멈췄다고 했다. 황선홍 서울 감독도 “날씨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이라고 단서를 달며 이날의 저조한 관심에 추운 날씨가 한 몫했다고 했다.

◆ 홈 성적 저조한 수원, 황선홍 퇴진론 나온 서울…관중 ‘반 토막’

하지만 또 다른 수원 구단 관계자는 “사실 날씨 영향도 없지 않지만 핑계일 뿐이다. 최근 홈경기 승률과 득점이 저조했던 것이 최근 홈 관중 부진에 영향을 미친 게 맞다”고 인정했다.

수원은 지난 1월 30일 베트남 클럽 타인호아와 치른 2018년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에서 5-1 대승을 거둔 이후 홈에서 승리가 없다. 

가시마 앤틀러스와 AFC 챔피언스리그 본선 첫 경기, 전남 드래곤즈와 리그 개막전 홈경기에 연이어 1-2로 졌다. 이후 상하이 선화, 포항 스틸러스와 1-1로 비겼고, 서울전을 앞둔 3일 시드니 FC와 챔피언스리그에서 1-4로 참패했다. 서울전 무득점 무승부까지 최근 6번의 홈경기에서 3무 3패, 5득점에 그쳤다.

이날 수원월드컵경기장을 찾은 유료 관중은 정확히 1만 3,122명인데, 서울 원정 팬이 1,262명. 수원을 응원하러 온 팬이 1만 2,000명 가량이다. 많은 수치가 아니다. 당장 지난해 슈퍼 매치에 찾아온 수원 홈 팬만 2만여명 대. 수원 관계자는 홈 관중이 반 토막 난 것을 인정했다.

슈퍼 매치의 관중이 줄어든 것은 서울 원정 팬의 급감도 한몫했다. 1,262명의 서울 원정 팬 수치도 역대 최소다. 수원 관계자는 “수원 팬들이 서울 원정을 더 많이 가는 편이긴 하다. 4~5,000여명이 간다. 교통편 등 문제가 있기도 해서다. 하지만 서울 팬도 슈퍼 매치에 2~3,000명은 왔었다”고 했다.

서울 원정 팬이 적었던 이유도 서울의 올 시즌 부진 때문이다. 서울 팬들이 사랑하던 외국인 공격수 데얀이 수원으로 갔고, 오스마르는 J리그로 임대 이적했다 윤일록 등 국내파 주축 선수도 팀을 떠났다.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하면서 떨어진 기대감에 황 감독의 리빌딩에 의문을 품은 팬들이 많았다. 

개막 후 마수걸이 승리를 못하며 부진하자 ‘황새 OUT’이 서울 팬들의 구호가 됐다. 슈퍼 매치 종료 휘슬이 울리고 서울 팬들은 ‘황새 OUT’을 여러 차례 연호했다.

◆ 스토리는 있는데 부진한 경기력, 스타 없는 K리그

수원도 서울도 경기력과 성적에서 난조를 겪으면서 관중이 떨어졌다. 서정원 수원 감독은 “팬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황선홍 서울 감독은 “관중분들이 오신 걸 보고 놀랐다. 경기하는 처지에서 분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기력 부진 비판에) 공감한다. 박진감 있게 경기 못한 것이 팬들에게 죄송하다”고 했다.

서 감독은 “예전에 슈퍼 매치 콘텐츠가 좋았다. 양 쪽 모두 좋은 선수로 이뤄져 있으면서 경기 퍼포먼스도 많이 나왔다. 그런 것들이 유지가 됐더라면 상당히 좋지 않았나 생각한다. 양 팀 다 그런 면에서 환경상 많이 퇴색했다”며 수원과 서울이 동시에 선수단 투자를 줄인 것이 슈퍼 매치 수준을 떨어트렸다고 했다. 

서 감독은 “슈퍼 매치뿐 아니라 K리그 팬들이 많이 감소하고 있다”며 K리그가 전반에 걸쳐 위축되고 있다고 했다. 

K리그 구단 고위 관계자는 “월드컵이 열리는 해라 일정이 빡빡하다. 챔피언스리그를 치르는 팀들은 사정이 더 힘들다. 많은 선수를 기용해야 하는데, 사실 수준 높은 선수가 많지 않다. 대체로 수비 위주 축구를 하는데, 그런 수비를 뚫을 수 있는 능력의 선수가 부족하고, 경기수는 많다 보니 저조한 경기력이 나오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반전은 체력을 안배하며 탐색전을 하고, 후반전에 가서야 발동이 걸린다. 그마저도 치밀한 전술이나 화려한 개인 능력을 찾아보기 어렵다. 전북 현대가 몇 년간 K리그 1강으로 군림하는 것은 전북이 강하기도 하지만 다른 팀이 약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K리그도 경기장에 가서 보면 재미있다’는 말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경기 수준과 내용이 떨어졌다. 프로 구단의 관중 몰이는 지역 연고 밀착 등 경기력 외적 요소도 중요하지만, 경기 자체의 재미가 떨어지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득점도 없고, 골이 나올 만한 상황도 많지 않고, 몸과 몸만 부딪히다가 패스 미스가 남발되는 경기에 열광할 관중은 없다. 후반 막판 잠깐 경기가 뜨거워졌던 슈퍼 매치는 수원 수비진의 패스  미스를 낚아챈 서울 공격진의 패스 미스가 연속된 허무한 플레이가 빈발하다 끝났다. 슈퍼 매치라는 기대감을 배신한 실망스런 경기 내용에 빅버드는 봄을 맞이하지 못했다. 2층 통천을 거뒀지만 1층에도 빈자리가 눈에 띄었던 관중석은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했다. 

유니폼을 바꿔 입은 데얀과 이상호라는 스토리에도 슈퍼 매치에는 슈퍼스타가 없었다. 데얀은 30대 후반을 향하고, 이상호도 전성기가 지났다. 

K리그의 현실은 냉엄하다. 잘하는 선수는 유럽 또는 아시아의 다른 리그로 떠난다. 유소년 선수들도 해외 무대를 먼저 노크한다. 여전히 K리그 최고의 스타는 1998년에 데뷔한 이동국이다. 이동국이 여전히 스타인 게 문제가 아니라, 이동국만한 스타를 K리그가 새로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과 미래가 문제다. 이날 슈퍼 매치도 수원의 염기훈, 서울의 박주영 정도가 전국구 스타다. 두 선수는 이제 30대 중반의 노장이다.

◆ 수원에 자리 잡은 프로 야구, kt위즈 매 경기 관중이 슈퍼 매치보다 많다

수원의 경우 프로 야구단 kt 위즈의 인기가 해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슈퍼 매치가 열린 날 같은 시간에 수원종합운동자 야구장에서 kt와 한화 이글스 경기가 열렸다. 

수원에서 열린 2018년 시즌 KBO 리그는 3월 30일과 31일, 4월 1일 이어진 두산전에 각각 1만3,562명, 1만6,852명, 1만6,137명의 관중이 모였다. 4월 7일과 8일 한화전에 각각 1만4,746명,1만2,840명이 찾았다. 거의 모든 경기에 슈퍼 매치보다 많은 관중이 몰렸다.

이제 수원과 서울 맞대결을 슈퍼 매치로 부르는 게 부끄러울 지경에 이르렀다. K리그가 위기라는 말은 하루이틀 이야기가 아니지만, 상황은 해마다 심각해지고 있다. 수원과 서울은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쌓아 올리기는 힘들어도,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슈퍼 매 치가 이름값을 회복할 수 있을지 우려가 깊어진 하루다.

글=한준 (스포티비뉴스 축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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