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시즌 첫 '슈퍼매치'의 관중석. 올 시즌 첫 슈퍼매치가 흥행에서 실패한 것은 지난 1년 동안 기대감이 줄어든 탓이 아닐까.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유현태 기자] 팬들이 외면한다는 K리그에도 '꿀잼 경기'는 나온다. 패배를 피하려는 '소극적'인 경기가 아니라, 승리를 쟁취하려는 '적극적'인 경기. K리그가 지향해야 할 목표가 아닐까.

요즘 K리그는 우울하다. 7라운드까지 마친 가운데 평균 관중은 6256명. 지난 시즌 평균인 6502명에 미치지 못한다. 시즌 초반엔 '개막전 특수'로 일단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가 시즌이 흐를수록 줄어드는 것이 보통인데. 이번 시즌부턴 유료관중만 집계하기로 했다지만 분명 위기라는 말이 과언은 아니다. 분명 K리그가 힘을 잃고 있다.

팬들은 이야기한다. 더 적극적으로 싸우는 축구가 보고 싶다고.

◆ '슈퍼매치' 흥행 실패, 승리가 전부는 아니다

8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이번 시즌 첫 번째 '슈퍼매치'는 현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본보기'였다. '데얀 이슈'가 있었지만 이날 경기장을 찾은 관중은 13122명. 역대 수원월드컵경기장 최다 관중 경기가 2012년 '슈퍼매치'였고 무려 45192명이 찾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처참한 수치다. 

경기 내용은 수심을 더욱 깊어지게 했다. 두 팀은 '안전제일주의', 엉덩이를 뒤로 빼고 경기를 치르다가 득점없이 비겼다. 홈 팀은 안방에서 라이벌에 패할 수 없어 수비에 무게를 뒀고, 원정 팀은 조금 더 당연하게도 홈 팀이 전진하길 기다렸다. 경기 내용은 절대로 '슈퍼'하지 않았다.

팬들은 지루한 경기 내용에 고개를 저었다. 과연 어떤 경기가 즐거운 경기일까. 사실 '승리'라는 열매만 원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승리 자체가 축구의, 그리고 K리그의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수비적 경기를 하면서 꾸역꾸역 승리를 쌓으면 욕은 먹지 않지만 팬들도 분명히 느낀다. 이 팀의 경기는 재미가 없다고.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즐비한 맨체스터유나이티드도 수비적인 경기를 하면 '버스 주차'를 했다는 비난에 시달린다.

◆ 팬들은 싸우는 축구를 보고 싶다

"유럽에선 바이에른뮌헨, FC바르셀로나가 와도 공격 축구를 한다. 백패스하지 않고 과감히 맞서다가 1-4, 0-3으로 패해도 팬들을 박수를 보낸다. 반대로 소극적으로 경기하다가 0-1로 지면 욕먹는다. 사실 유럽에선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 전북 현대 최강희 감독

치열하게 '싸우는 경기'는 결과와 상관없이 환호 받는다. K리그에도 그런 멋진 경기가 없었을까. 아니, 가까이에서도 그런 경기를 찾을 수 있다. 

15일 벌어진 포항스틸러스와 경남FC의 경기가 그랬다. 결과는 2-1로 포항의 승리. 골망은 3번 흔들렸을 뿐이지만 경기는 90분 내내 눈을 뗄 수 없었다. 소극적으로 상대가 실수를 저지르길 기다리지 않았다. 홈 팀 포항도, 원정 팀 경남도 풀백까지 적극적으로 전진하면서 공간을 활용했다. 측면에서 과감한 1대1 돌파도 시도했다. 두 팀은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공을 빼앗기면 곧 위기지만, 다시 공을 빼앗으면 재역습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았다. 두 팀의 짜임새 있는 공격에 양 팀 팬들은 깊은 탄식과 안도의 한숨을 번갈아 뱉어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댓글에선 여론이 읽힌다. "이게 슈퍼매치다.", "양팀 공격적이니까 너무 재밌어.", "오늘 경기 정말 재미있었다. 시원한 공격, 화려한기술… 팬들은 이런 경기를 보길 원하는거야." 이것이 팬들의 속마음이다. 90분 내내 공격하고 또 공격한 경남이 패배했다고 비난의 화살을 돌린 이들은 많지 않다.


포항과 경남은 이번 시즌 가장 적극적인 경기를 펼치는 팀이다. 객관적 전력에서 독보적 '1강'으로 꼽히는 전북을 만나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전북은 5라운드에서 포항(2-0 승), 6라운드에서 경남(4-0 승)을 연속해 만났다. 결과만 보면 전북의 완승이지만 경기 내용은 흥미로웠다. 왜? 포항과 경남이 맞서 싸웠기 때문에!

5라운드 포항전에선 경기 양상은 비등했다. 오히려 전반전은 포항이 주도했다. 다만 마무리가 찍히지 않은 것이 '옥에 티'였다. 교체 투입된 이동국이 선제골을 터뜨린 전북이 승리를 안을 수 있었다. 경남전도 보는 맛이 있었다. 승격 팀 돌풍의 주역이자 뜨거운 공격수 말컹이 '농구화 내기'를 하면서 불이 붙은 경기였다. 경남은 자신감있게 전북과 맞상대를 벌였다. 승격 팀이 지난 시즌 챔피언을 상대로 맞불을 놓으면서 한계를 시험했다. 전북이 자랑하는 최고의 강점인 '전방 압박'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경남이 멋진 맞수가 됐기 때문이다. 사실 경남 김종부 감독이 개막 뒤 4경기를 모두 승리로 장식한 것도 공격의 힘이었다.

전북은 6승 1패, 16득점에 4실점으로 1위. 경남은 4승 1무 2패, 13득점에 10실점으로 3위, 포항도 4승 1무 2패, 12득점 9실점으로 4위다. 공격적인 경기로도 충분히 성적을 낼 수 있다. 수비적인 경기를 한다고 꼭 승리를 하는 것도 아니다.

경남과 맞대결을 했던 최강희 감독은 경남전 뒤 '스포티비뉴스'와 전화 통화에서 경남의 경기력, 그리고 스타일을 칭찬했다. 물론 승리를 위해서라면 공수 밸런스를 어디에 둘지는 달라질 수도 있다. 최 감독은  "(공격 축구를 하는 것이)정말 중요하다. 자기 색을 보이려고 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나도 전북 감독으로 두 번째 경기 때 1-5로 완패했다. (김종부 감독이) 점점 노하우도 생길 것이고, 강팀도 상대할 방법을 알게 될 것"이라면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색깔있는 경기를 하는 경남에 보내는 칭찬이었다.

▲ 팬들은 승자 포항에게도, 패자 경남에게도 박수를 보냈다. 멋진 경기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

◆ 경기가 재밌으면 관중은 늘어난다, 팬들의 목소리에 K리그 현장이여 응답하라

당장의 관중 수는 당장 '오늘의 경기력, 현재의 경기 내용'을 반영하지 않는다. 지난주에 혹은 지난달에 어떤 경기력을 보였는지가 반영된 결과다. 이 팀의 경기는 공격적이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면 팬들은 경기장을 찾을 것이다. 지난 슈퍼매치의 부진은 0-0으로 비긴 경기력이 아니라, 이번 시즌 초반 부진했던 두 팀의 경기력을 반영한 결과였을 것이다.

이번 시즌 평균 관중 수 1위는 '닥공' 전북(12125명)이다. 그 뒤를 잇는 것은 수원이나 서울이 아닌 바로 포항이다. 포항 스틸야드엔 경기당 11719명의 팬이 찾았다. 경남은 3210명으로 아직 9위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난 시즌 K리그2(챌린지)에서 매 경기 승리하면서 선두를 질주하며 기록한 2182명과 비교해도 1000명 이상 증가했다. 특히 지난 11일 전북전에는 평일 저녁인데도 3801명이 경기장을 찾았다. 최근 뛰어난 경기력이 반영된 수치로 해석할 수 있다.

지금 지도자가 된 '왕년의 스타들'도 경기장에 팬들이 가득찼던 시기를 그리워한다. 슈퍼매치 뒤 FC서울 감독은 "관중분들 오신 것 보고 (적어서) 놀라긴 했다. 날씨나 미세 먼지나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리라 본다. 하지만 경기하는 이로서 더 분발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수원 삼성 서정원 감독도 "슈퍼 매치뿐만 아니라, 팬들이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그런 흐름에 따라 줄어든 것 같다. 아쉽다. 기존에 많은 슈퍼 매치 콘텐츠가 유지됐더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다. 선수들이 많이 빠져나가고 해서, 의미가 퇴색해져 가는 것 같다. 그래서 관중도 감소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프로 스포츠는 팬들이 있을 때 살아난다. 이제 K리그가 무엇을 위해 움직일 때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꾸역꾸역 승점을 따내면 팀은 강등을 면하고, 선수들과 지도자들은 자리를 보전할 수 있다. 하지만 팬들은 경기장을 찾지 않을 것이다. 팬이 없는 K리그는 더욱 침체될 것이고 판은 감소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악순환의 시작이다. 팬들은 분명히 '싸우는 축구'를 바라고 있다. 여론은 충분히 읽힌다. 이제 K리그 현장에서 팬들의 소리에 응답해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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