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인 명단에 대표 경력이 없는 문선민을 선발한 신태용 감독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서울시청, 한준 기자]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 신태용 대한민국 축구 국가 대표 팀감독은 지난해 11월 처음으로 자신이 원하는 선수들로 구성한 대표 팀으로 4-4-2 포메이션을 실험했다. 손흥민의 활용법으로 투톱을 꺼냈고, 이재성과 권창훈을 측면 미드필더로 기용해 안으로 좁혀 뛰게 하는 전방 4인 블록을 가동했다.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전방 압박이 강해지고, 손흥민의 고립 문제를 해결했다. 수비 전환시 4-4-2 포메이션을 바탕으로 두 줄 수비를 구축해 안정감을 확보했다. 그 뒤로 2017년 동아시안컵, 지난해 1월 터키 전지훈련과 3월 유럽 원정 평가전까지 4-4-2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여러 선수 조합을 테스트했다. 이 과정에서 월드컵 본선에 기용할 선수 80%의 윤곽이 그려졌다.

그래서 신 감독은 35인 예비 엔트리 제출 마감일인 5월 14일 23인의 최종 엔트리를 확정, 21일소집 훈련 첫 날부터 조직력 극대화에 나서려고 했다. 이 계획은 3월 유럽 원정서 다친 김진수의 무릎 부상 정도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차질을 빚었다. 5월 2일에는 센터백 김민재, 5월 9일에는 미드필더 염기훈까지 다쳐 23인에 포함될 선수 중 핵심 세 명이 이탈했다.



"4-4-2로 생각을 했지만 플랜A가 바뀔 수 있다. 그러다보니 선수들의 선발 배경도 거기에 있다. 포메이션이 바뀌면 활용도가 바뀌어 자세히 말할 수 없다. 플랜A가 B로 바뀔 수도 있다. 국내 평가전을 마친 후 출국 전까지 짧은 시간이지만 되돌려보고 가장 좋은 것을 만들어 가겠다."

신 감독은 이 선수들의 역할을 그대로 대신할 선수를 찾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염기훈과 김민재는 아예 예비 명단에서 제외하며 플랜A 자체를 원점에서 고민하기로 했다. 김진수는 28인 명단에 포함시켰지만 14일 명단 발표 현장에서 “지금으로선 가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지난 대회도 부상으로 낙마한 김진수를 배려 차원에서 기다려준다는 속내를 밝혔다.

본선 개막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신 감독은 완벽하게 구현하지 못할 플랜A를 폐기하고 새 판을 짜는 ‘리스트 감수’에 나선다. 센터백을 6명이나 28인 명단에 포함시키며 “스리백을 가져갈 수 있다”고 했다. 공격수는 4명만 선발해 전방 공격 보다 2선과 중원 자원을 늘려 보다 실리적인 전략으로 본선에 대비하겠다는 계획도 넌지시 암시했다.
 
◆ 월드컵 한 달 앞두고 플랜A 폐기 고민…파격인가, 급조인가?

우려는 역시 조직력과 호흡이다. 신 감독 부임 후 매 번 소집됐던 라이트백 최철순이 낙마했고, 미드필더 이창민도 빠졌다. 미드필더 이승우와 문선민, 수비수 오반석 등 대표 발탁 자체가 아예 처음인 선수들이 명단에 들었다. 경기 감각 문제로 소집하지 않던 이청용도 선발됐다. 

이청용은 이미 대표 팀의 정서를 잘 알고 있지만, 대표 팀 적응 자체가 과제이고, 국제 대회 경험이 부족한 이승우와 문선민, 오반석의 발탁은 적지 않은 리스크를 품고 있다. 파주NFC에서 진행될 훈련 과정이나 국내 평가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지만 본선에선 예기치 못한 시행착오를 겪을 수도 있다.

역대 월드컵에 깜짝 발탁 선수, 데뷔 선수가 사고를 치는 경우가 없지 않았지만, 현대 축구는 전술적으로나 분석 측면에서 밀도가 높아졌다. 잘 몰라서 당하는 사례가 줄었다. 이변을 야기하는 변수가 줄었다. 

▲ 신태용 감독 ⓒ곽혜미 기자


신 감독이 스리백을 고민한 것은 풀백 포지션에 적절한 대안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 감독 체제에서 스리백으로 경기했을 때 평가는 대체로 박했다. 2017년 FIFA U-20 월드컵 당시에도 측면에서 문제를 드러냈고, 이란, 우즈베키스탄과 월드컵 최종 예선 경기에서는 무실점에 성공했으나 공격 전개력에 아쉬움이 컸다. 4-4-2 포메이션으로 경기했을 때의 콤팩트함보다 허점이 많이 보였다.

이제 와서 다시 스리백으로 플랜A를 만들고, 새로 합류한 선수, 오랜만에 합류한 선수들로 조직력을 구축하는 것은 무리수가 될 수 있다. 스웨덴은 2016년 여름부터 진행된 월드컵 유럽 예선전에서 일관된 전술과 선수들로 다져진 팀이다. 멕시코는 여러 전술과 선수를 실험했지만, 월드컵 본선을 한 달여 앞두고 기존의 흐름에 큰 변화를 주지 않았다. 독일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클래스다.

객관적 전력에서 열세인 한국은 원팀으로 뭉쳐 강한 정신으로 버티고 기회를 도모해야 한다. 개별 기량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가운데 대회를 앞두고 원점에서 판을 짜는 파격은, 도박과 모험 사이에 있다.

◆ 주축 선수 이탈로 생긴 내부 불안, 신태용호는 ‘새 판’에 도박을 걸었다

취재진의 우려에 신 감독도 “논란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했고, “위험은 분명히 있다”고 했다. “부상자가 나와 플랜A와 B가 바뀔 수 있다. 그런 부분에서 위험을 줄이기 위해 더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며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 최대한 조직력을 만들겠다고 했다. 

방점은 12명이나 소집한 수비 라인이다. 5월 21일 첫 소집일부터, 스웨덴전을 하루 앞둔 6월 17일까지 4주 가량의 시간 동안 대표 팀은 ‘벼락치기’에 나선다.

“수비는 조직력이 중요하다. 일대일 능력이 뛰어나면 최고의 팀이지만 우리 현실적으로 일대일에서 강하지 않아 조직력이 생명이다. 월드컵을 앞두고 두 명이 부상으로 쓰러졌다. 김진수는 국내 훈련을 소화할지 몰라 고민이 많다. 센터백을 많이 뽑은 것도 3백과 4백을 같이 들고가기 위해서다. 경쟁을 하면서 조직력을 끌어 올리면 좋겠다. 4주 정도 안 수비 조직력을 최대한 만들기 위해 준비하겠다.”

▲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대표 팀 코칭 스태프 ⓒ곽혜미 기자


신 감독은 플랜A가 B로 바뀔 수 있다고 했지만, 23인 엔트리 최종 결정과 플랜A 확정 모두 온두라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평가전을 마치고 내린다. 이 과정에서도 혼선이 온다면, 남은 기간은 2주 밖에 되지 않는다. 소기의 성과를 낸 4-4-2 포메이션을 재가동할 수도 있고, 새로 실험할 스리백으로 새 판을 짤 수도 있다.

신 감독은 “내 독단으로 정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스페인 대표 팀 출신 코칭 스태프를 포함한 전체 회의를 통해 28인을 뽑고, 플랜A를 원점에서 고민하는 것이 최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결정권도 책임도 신 감독의 몫이다.

급조와 파격 사이에서, 신 감독의 리스크를 떠안은 도박은 불안해 보이지 않을 수 없다. 신 감독은 “3전 전패라는 비관적인 이야기가 있는데 그런 비관적인 이야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잘 준비하고 있다. 이제는 대표 팀이 3전 전패라는 말 대신 3전 전승을 하기 위해 힘을 실어주길 바란다”며 응원으로 선수단의 사기를 높여달라고 당부했다. 

“통쾌한 반란을 일으키고 팬들에게 환영받고 싶다. 꼭 좋은 성적 내서 돌아오겠다. 통쾌한 반란을 일으키고 돌아올 수 있도록 응원 부탁드린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신태용호는 출항했다. 결국 스포츠는 결과론이다. 신태용호가 예견될 불안을 극복하고 반란에 성공할 수 있을까? 장기 계획이 미비한 한국 축구의 월드컵 도전사는 이번에도 살얼음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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