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 없이 믹스트존을 통과하는 살라
▲ 눈물을 흘리며 믹스트존을 지나간 와르다


[스포티비뉴스=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 한준 기자] 러시아가 이집트를 3-1로 꺾고 2연승을 거뒀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의 믹스트존에 모인 세계 각국의 기자들이 기다린 선수는 이집트 공격수 모하메드 살라(26, 리버풀)였다. 

살라는 개최국 러시아와 이집트의 2018년 러시아 월드컵 A조 2차전에 가장 큰 관심을 모은 선수였다. 2017-18시즌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수상한 살라는, 리버풀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까지 이끌면서 단일 시즌 활약으로만 보자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리오넬 메시와 비견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살라에 대한 관심을 높인 또 다른 배경은 레알마드리드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당한 어깨 부상이다. 살라의 월드컵 출전이 좌절될 것으로 우려됐지만, 결국 최종 엔트리에 들었고, 러시아와 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경기 전 웜업 당시 가벼운 몸놀림을 보였지만, 실전은 달랐다. 어깨가 온전치 않은 살라는 과감하고 저돌적으로 밀집 지역을 파고드는 특유의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했다.

살라는 더 노련해져야 했다. 압박 바깥으로 빠져 나왔다가 직접 경합하지 않고 기회를 포착해야 했다. 수비수들과 직접 싸우는 것은 스트라이커 마르완 모센의 일이었다. 전반전에는 이 방법이 어느 정도 통했다. 이집트는 견고한 수비 조직, 모센의 전방 헌신, 좌우 측면에 배치된 마르무드 트레제게와 살라의 커트인을 통해 경기 주도권을 잡았다.

이집트는 후반전에 무너졌다. 후반 2분 만에 수비수 아흐메드 파티가 기록한 자책골 이후 러시아가 릴레이 골을 넣었다. 살라가 뛰지 못한 우루과이와 첫 경기에 결정력 부족으로 0-1 패배를 당한 이집트는, 살라가 나왔지만 온전하지 않았던 러시아와 2차전에도 마무리가 아쉬웠다. 

살라는 후반 28분 자신이 얻은 페널티킥을 직접 성공시켜 0-3으로 무너져가던 팀의 희망을 살렸지만 거기까지였다. 살라는 ‘파라오’라는 별명에 걸맞지 않은 아슬아슬한 모습으로 이집트의 2연패를 막지 못했다.

▲ 살라를 따라 요동친 취재 인파


경기가 끝난 뒤 믹스트존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개최국 러시아의 취재진, 인근 동유럽 국가 취재진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살라의 퇴장을 보려는 다국적 취재진이 몰렸다. 다들 살라가 언제 나오는지 오매불망 기다렸다.

유리 지르코프가 믹스트존을 가장 먼저 빠져나간 가운데 이집트 선수들이 시간 차를 두고 지나갔다. 산술적으로는 1승 2패로 16강에 오를 가능성이 남아있지만, 사우디아라비아가 우루과이를 꺾는 경우의 수가 발생해야 가능하다. 이집트 선수들은 이미 탈락한 표정으로 믹스트존을 지나갔다. 어느 누구도 인터뷰하지 않았다. 후반 19분 교체로 들어갔던 공격수 아미르 와르다는 눈물을 쏟으며 지나갔다.

살라는 이집트 선수들 중에서도 가장 늦게 나타났다. 살라가 등장하자 이곳 저곳에 흩어져 선수 출입구를 바라보던 기자들이 우르르 몰렸다. 눈을 비비며 등장한 살라는 기자들을 물끄러미 바라봤지만 인터뷰 요청에는 손을 내저었다. 그렇다고 도망치듯 빠른 걸음으로 떠나지는 않았다. 자신을 따라 쏠리는 취재진의 거대인파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으로 믹스트존을 빠져나갔다.

2018년은 이집트 축구 역사에 매우 의미있는 해다.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수상과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을 이룬 초특급 스타의 등장,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한 월드컵 본선 진출 성공. 드라마틱했지만 결말은 좋지 않았다. 살라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패했고, 다쳤으며, 월드컵 본선에서 제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개최국의 쾌승으로 끝난 19일 밤. 살라를 위한 월드컵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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