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집트전 승리가 확정되자 러시아 국기가 경기장에 물결쳤다 ⓒ한준 기자
▲ 러시아 최고의 응원 도구는 국기다 ⓒ한준 기자


[스포티비뉴스=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 한준 기자] 본선 개막 전 까지 7연속 무승(3무 4패). 스리백 전술의 핵심이던 빅토르 바신과 게오르기 지키야의 부상 이탈. 1년 간 준비한 전술을 폐기한 러시아를 두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처럼 개최국의 조별리그 탈락 사례가 추가되리란 전망이 팽배했다.

악몽은 사우디아라비아와 개막전에 알란 자고예프까지 부상으로 쓰러지자 현실화되는 듯 했다. 사우디에 5-0 대승을 거뒀을 때도 상대가 너무 약했던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러시아는 1년 전 여름 월드컵 리허설이었던 2017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도 뉴질랜드와 첫 경기에서 완승을 거둔 뒤 포르투갈, 멕시코에 연패하며 탈락했다.

현지 시간 19일 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치른 이집트과 2차전이야 말로 러시아의 진정한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경기였다. 당초 전통의 강호 우루과이, 모하메드 살라가 이끄는 이집트가 16강 진출 후보로 꼽혔는데, 러시아와 이집트가 2위 싸움을 벌일 것으로 관측됐다.

심리적으로는 홈팀이자 1승을 안고 있는 러시아가 유리했다. 이집트는 1패를 안고 있어 부담이 컸다. 부상에서 갓 회복한 살라를 선발 명단에 넣을 정도로 절박했다. 

▲ 2연승으로 16강 진출이 유력한 러시아 선수단 ⓒ한준 기자


전반전은 팽팽했다. 분명 1차전에서 대승을 거둔 러시아 쪽이 공격적으로는 자신감이 넘쳤다. 특히 멀티골을 넣었던 데니스 체리셰프는 활기찬 플레이로 러시아를 이끌었다. 후반 2분 조브닌의 중거리슛이 육탄방어를 펼치던 파티를 맞고 굴절되어 행운의 자책골이 나오면서 러시아의 사기가 치솟았다. 

러시아는 후반 14분 마리우 페르난데스가 오른쪽 측면을 파고들어 올린 크로스를 체리셰프가 강한 논스톱 슈팅으로 마무리했고, 후반 17분에는 장신 공격수 아르템 주바가 저돌적으로 중앙 전방을 파괴하며 시원한 슈팅으로 세 번째 골까지 넣었다. 살라가 페널티킥으로 한 골을 추가했지만 러시아는 선수 교체로 체력을 보강하고 4-4-2 대형으로 전환해 공간을 봉쇄해 3-1 승리를 지켰다.

러시아는 역동적이고 기계적이었다. 힘있는 플레이, 단결된 플레이로 이길 만한 경기를 했다. 대회 개막 직전까지 갈피를 잡지 못하던 러시아의 선전은 놀랍다. 이 즐거운 놀라움은 대표 팀의 새로운 유니폼을 구입한 이들이 많지 않은 러시아 사람들을 고양시키기 충분했다. 3-1 승리로 2연승을 거두자 러시아 국기를 흔드는 물결이 경기장 전체를 지배했다.

경기 하루 전 폭우가 내렸고, 경기 직전에도 비가 내렸지만 64,468석은 매진됐다. 이집트 원정팬이 많았지만 대부분 러시아 사람들이었다. 가족 단위로, 연인끼리 즐겁게 경기장을 찾았다. 러시아에서 가장 유럽적인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유럽으로 열린 창으로 불린다. 러시아는 이곳에서 유로2008 이후 가장 큰 성공을 이루며 다시 유럽 축구의 중심으로 진입하고 있다.

▲ 월드컵을 즐기는 러시아 사람들 ⓒ한준 기자


러시아 관중들은 ‘슈퍼스타’ 살라의 출전에 환호했지만, 자국 대표 선수들이 입장할 때, 그리고 득점했을 때 그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함성을 질렀다. 3-1 승리로 종료 휘슬이 울렸을 때는 “러! 시! 아!”를 끊어 부르는 응원 구호가 쩌렁쩌렁 울렸다.

러시아의 응원 래퍼토리는 하나다. 국명 러시아를 스타카토식으로 끊어 외치는 것 하나뿐이다. 응원가나 다른 단어를 결합한 구호도 없다. 그저 러시아를 외치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그 단조롭지만 단결된 구호 하나가 러시아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러시아는 축구로 단결했고, 하나로 뭉친 개최국은 예기치 못한 돌풍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는 코스타리카 기자가 “2002년의 한국 같은 느낌이 난다”고 했다. 2연승에도 아직 16강 진출을 확정하지 못했지만, 사실상 예약했고, 8강 진출도 꿈은 아니라는 분위기다. 러시아 기자들은 믹스트존에 선수들이 지나가자 박수를 보냈다.

러시아는 월드컵이 왜 세계 최고의 축구 축제이며, 개최국의 축구 인프라를 끌어올릴 수 있는 지 체득하고 있다. 러시아는 축구로 자부심을 높이고 있다. 개최국의 선전이 월드컵의 성공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느끼고 있는 날들이다. 

▲ 경기가 끝나고 밤 12시가 되어 불을 밝힌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 ⓒ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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